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05 19:26 수정 : 2020.01.06 02:38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는 그간 글과 말을 통해 소소하게나마 평온의 전도사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말 어쭙잖은 일이었지만, 제 나름대로는 작은 뜻이 있었지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 많은 국민이 편을 갈라 벌이는 증오의 싸움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평온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온에 대한 거부감이 만만치 않더군요. 노인이나 무기력한 사람들이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거나 배부른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실 평온은 그간 한국에선 전혀 환영받지 못한 개념이었지요. 아니 의도적으로 평온을 방해하기 위한 국가·사회적 차원의 ‘음모’가 있었다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 최빈곤 국가 중 하나였던 한국이 불과 반세기 만에 오늘의 번영을 이루는 데엔 평온을 적으로 여기는 정신 상태가 필요했습니다. 가난해도 평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전쟁하듯이 치열하게 살 리는 만무하지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역동성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 평온은 현실에 안주하는 게으름이나 무기력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이치라는 게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는 법입니다.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일지라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선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법이지요. 집단적으로 전쟁하듯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평온의 휴전’을 누려야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것도 바로 그런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문제는 평온하게 살기 어려운 삶의 물질적 조건일 텐데, 이마저도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온의 핵심은 ‘나를 위한 삶’입니다. 누구는 ‘나를 위한 삶’을 살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남들 눈치를 보고, 남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치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갖거나 누리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남을 의식하는 삶을 진정 ‘나를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 정치가 국민적 원성의 대상이 된 것도 평온의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욕망과 열정은 들끓지만, 소통과 상생은 없습니다. 소통과 상생은 평온의 차분함이 줄 수 있는 역지사지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예 평온을 죽이려는 제도와 관행도 있는데, 그게 바로 ‘승자 독식’이지요. 싸움에서 질 경우 모든 걸 다 잃는다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지지요. 누가 이겨도 다 갖진 못하고 반대편보다 조금 더 갖는 수준에서 나눠 먹어야 한다면, 싸움의 욕망과 열정이 좀 누그러들지 않을까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여태까지 수많은 정치적 혈투가 있었지만, 승자건 패자건 ‘승자 독식’ 자체를 바꾸자는 말은 하질 않으니 말입니다. 다 자기편이 이길 걸로, 아니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정치판에 침을 뱉길 주저하지 않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주변을 잘 둘러보세요. 정치가 위대하다는 걸 절감할 겁니다. 고등실업자가 될 사람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대규모로 마련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정치뿐이랍니다.

어떤 이는 “정치는 원칙의 경쟁으로 위장하는 밥그릇 싸움”이라고 했지요. 그대로 다 믿을 말은 아니지만, 선거를 전후로 전국이 밥그릇 배분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는 게 현실 아닌가요. 그래서 정치를 욕하면서도 ‘정치 과잉’인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지요. 저는 밥그릇 지명권의 상당 부분을 시민사회에 돌려줌으로써 정치의 타락한 권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선거 논공행상의 도구로 전락한 모든 공기업 임원진 구성을 시민사회의 힘을 빌려 투명하고 공명정대하게 한다면, 정치가 이권 투쟁과 지대추구의 도박판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변화를 위해 가져야 할 정신 상태가 바로 평온입니다. 욕망과 열정으로만 치닫다 보면 ‘자기편’만 생각할 뿐 ‘우리 모두’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불평등 완화도 영영 기대하기 어렵지요. ‘승자 독식’이 ‘승자의 저주’가 되는 국가적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 저는 이걸 평온의 기술이라고 이르고 싶네요. 평온 덕분에 ‘전쟁 같은 삶’이 좀 달라진다면, 다시 욕망과 열정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준만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