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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7 18:16 수정 : 2020.01.08 02:08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020.1.1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020.1.1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새해 북한 매체의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를 보면, 격세지감을 감출 수 없다. 불과 1년 전 신년사에서 보였던 밝고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번엔 뭔가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맘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무실 소파에 앉아 자연스럽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조건 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나, 이번엔 전원회의 보도 뒤에 숨어 신년사를 건너뛰고 말았다. 내용을 보더라도 “정면돌파전”나 “자력갱생”의 구호와 “새로운 전략무기” 위협,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는 결의에서, 오히려 상처받고 잔뜩 웅크린 듯한 모습이 먼저 연상된다.

딱히 이런 정도를 내놓으려고 연말 이례적으로 나흘씩이나 마라톤회의를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상황은 엄중한데 앞이 잘 안 보이면 회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 못 할 건 없다. ‘핵무력·경제건설 병진’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갈아탄 지 2년도 안 돼 다시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 곤궁한 처지를 김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당 전체 집단의 책임과 결정으로 넘기려는 모습을 연출한 것도, ‘수령 무오류론’의 나라에서 불가피했으리라.

북한의 결론은 뭐라고 포장해도 결국 ‘적대적인 외부세력에 맞서 장기전을 각오하고 어떻게든 버텨나가자’로 압축되는 것 같다. 이제 올 한해 한반도 정세가 만만찮을 것이란 점이 명백해진 셈이지만, 이런 결론은 실상 지난해 북-미 협상에서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면서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미 간 비핵화를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그동안 북한은 “새로운 길”을 공언해 오지 않았던가.

지난해 북·미가 접점을 못 찾은 건 유감이지만 기회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한반도 정세에 분수령이 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을 제재의 예외조치로 고려하는 문제에 한-미 간 어느 정도 공감이 이뤄졌는데, 북한에서 거부했다고 한다. 북한은 예외조치가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제재가 완화되길 원했던 것 같다. 당시 북한이 일단 예외조치를 받아들이는 융통성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이 재개됐다면 한반도 정세의 진전에 새로운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는 대목이다.

더 아쉬운 건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5년 6자회담의 ‘9·19 합의’ 직후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이 미국에 의해 ‘돈세탁 우려 은행’으로 지정돼 거래가 정지됐을 때도, 예외조치가 아닌 정상적인 금융 시스템에 의해 예금을 돌려받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엔 은행에 묶인 돈 몇푼보다 정상적인 국제 금융망 접근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9·19 합의 이행이 1년 넘게 지체됐고, 이때 잃어버린 시간은 부시 행정부 말 협상 시간 부족 등으로 되돌아왔다.[

김 위원장이 그래도 협상 중단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아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대화 복원은 지난해보다 더 어려워진 게 현실인 것 같다. 우선 미국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북-미 대화에 전력하기 어려운 구조다. 북한도 어쩌면 미국의 정권이 교체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지켜보자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돌연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미국의 정치권과 여론이 중동 문제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남북관계가 이런 상황에서 우회로가 될 수 있지만, 김 위원장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애초 2년 전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끌어낸 것도 남북대화였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증진해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충언을 흘려듣지 말았으면 좋겠다.

박병수 ㅣ 논설위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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