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2 17:59
수정 : 2020.01.13 12:58
진징이 ㅣ 베이징대 교수
북한은 “새로운 길”로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그 “새로운 길” 이전에는 어떤 길을 걸어왔던 것일까?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협상의 길을 선택해 싱가포르에 갔고, 하노이에 갔다. 그 결과를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말을 빌려 “미국과의 대화탁에서 1년 반이나 넘게 속히우고(속고) 시간을 잃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지나온 길”과 가고자 하는 “새로운 길”의 목적지는 다른 것일까? 북한이 이번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내놓은 첫째 의정에 대한 결정서의 첫번째 결정은 “나라의 경제 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 잠재력을 총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할 것”이었다. 여섯째 결정이 “혁명의 참모부인 당을 강화하고 그 령도력을 비상히 높여나갈 것”이었다.
북한은 올해 ‘국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막을 내리면, 내년쯤 노동당 8차 당대회와 함께 새로운 10대 전망 목표를 시작할 수도 있다. 결국 북한의 “새로운 길”은 ‘길’을 달리할 뿐, 경제발전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려 세번이나 만나면서 ‘톱다운 방식’으로 핵 정국을 돌파하려 시도했다. 북-미 관계 개선에 ‘올인’한 것은 김 위원장만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미 관계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은 그런 문재인 정부를 북-미 관계에 “주제넘게 끼어든다”고 비난하지만, 북한이 북-미 관계에 모든 것을 건 것이 “실책”이었다면 문재인 정부 역시 모든 것을 북-미 관계에 걸었던 것이 실책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 “굴종”하다시피 하며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주기를 바랐다. 하노이 회담이 성공하였다면 남북관계의 향방은 달라졌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조건 없는 재개도 하노이 회담이 풀리면 ‘수도거성’(조건이 성숙되면 일은 자연히 이뤄진다)으로 풀린다고 보았다. 결국 북-미 관계에 모든 것을 걸었던 남과 북이 함께 미국에 당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김 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 대화를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불순한 목적’은 트럼프의 재선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디테일’에서가 아니라 큰 전략에서다. 이제 금방 미-중 무역전쟁의 장작에 불을 지핀 미국이 ‘부저추신’(솥 밑 장작을 뺀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할 리는 만무할 것이다.
북한은, 북-미 대결은 지금 자력갱생과 제재의 대결로 압축돼 명백한 대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미국도 이를 대결로 보는지 여부다. 미국은 사실 북한과 대결을 벌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자력갱생하든 개혁·개방하든 미국엔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에는 ‘사달’을 일으키는 북한이 오히려 더 반가울 수 있다. 미국은 “핵 문제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 것”(김정은 위원장)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미국과 손을 떼고 한국과 등을 지며 고군분투하는 것일까? 북한은 비록 미국의 본심을 파헤쳐보았다고 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더러 주제넘게 중재자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트럼프의 재선에 영향을 미치며 ‘트럼프 2기’를 기대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굴종”한다고 비난하지만 미국과 줄기차게 투쟁해온 북한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도 아니다. 남북한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나려면 함께 협력하는 길밖에 없다. 한국이 사즉생의 결단력으로 남북관계의 매듭을 풀려 하면 판세는 금방 뒤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