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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7 19:29 수정 : 2005.01.07 19:29

이번 인도양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은 말 그대로 천재지변이다. 그러나 천재지변으로 1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자연의 탓만은 아니다. 이것은 ‘세상이 거꾸로 됐기’ 때문에 불거진 인재이기도 하다.

왜 인도양은 지진해일 경보체제 없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고 말았을까? 태평양에는 지진해일 탐지기가 6기 설치되어 있고 이 탐지기들은 하와이와 알래스카의 경보센터에 연결되어 있다. 이 탐지기들은 수압의 변화를 탐지하여 자동적으로 경보센터에 전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지진해일이 발생하면 즉각적인 경보와 대응이 가능하다. 지난해 6월 유엔 해양위원회 회의에서도 인도양은 지진해일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에 이러한 탐지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전문가들이 권고한 대로 50만달러를 들여 탐지기 2대만 설치했더라면 많은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이런 ‘거금’을 투자할 용의가 없었다. 이에 비해 지난해 세계가 기꺼이 군사비에 지출한 액수는 1조달러였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국방비 지출은 어쩔 수 없다는 각 나라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우선순위는 ‘살림’보다 ‘죽임’에 있다. 이번 지진해일은 이를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우선순위가 뒤집힌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또다른 모순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해일은 진도 9의 강진이 야기했다. 이 정도의 강진이 있기 전에는 지각의 흔들림이 나타나고 하와이 등에 있는 지진관측소는 이를 관측했을 뿐만 아니라 지진해일을 미리 경고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사고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통고를 받은 대상이 디에고 가르시아에 있는 미군부대였다는 점이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해저지형의 특성 때문에 해일의 위협이 미미한데도 군대가 있다는 이유로 우선적으로 통보를 받았다. 반면, 숱한 민간인들이 해일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지역에는 이런 위험통보 체제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군대를 보호하는 것이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보다 우선인 세상인 것이다. 인도양 한가운데 있는 디에고 가르시아에 주둔한 군대가 미군이고 피해에 노출된 민간인은 제3세계 국민들이라는 데서 위계적 국제질서는 또다시 확인된다.

피해복구를 위해 각국이 원조를 보내고 있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그러나 피해복구에도 여지없이 전쟁의 논리가 개입한다. 미국은 태평양사령부에 긴급구호의 책임을 맡겼고 오키나와에 있는 해병부대 사령관 블랙맨이 이 지역에 파견된 미군 1만3천여명의 구호활동을 선두지휘하고 있다.

마침내 군대가 민간 보호의 일선에 나선 것일까? 이 지역을 방문한 파월 국무장관은 미군 ‘구호활동’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한다. “이러한 활동은 모슬렘 사회가 미국의 관대함, 행동하는 미국의 가치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과 인권학대 전력 때문에 미국은 그간 인도네시아군과 거리를 두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인도네시아군에 무기 등을 공급했던 것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지진해일 이전에 미국 항공모함이 인도네시아에 기항하고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공동작전을 펼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관대함’을 명분으로. ‘행동하는 미국의 가치’는 이제 월남전 이래 아시아에서 펼쳐지는 가장 거대한 군사작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가 ‘죽임’에 쏟아붓는 돈의 일부만이라도 ‘살림’에 돌렸더라도 이번 피해는 극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것도 모자라 인도주의 명분으로 또다른 ‘죽임’ 놀이를 하고 있다. 이번 지진해일 피해자들은 “세상이 거꾸로 됐다”고 죽음으로 항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이번에 요행히도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몫일 터이다.


서재정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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