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지난달 31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합의에 항의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
|
[분석] 4대입법 실패 속사정…국민·당원없는 개혁정치의 파산 김원기 국회의장은 17대국회 출범에 맞춰 ‘개혁국회’와 ‘상생정치’를 내걸었다.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새 국회 출범에 앞서 “16대 국회의 아수라 정치를 넘어서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펼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천금같은 발언과 약속의 실제 무게는 먼지보다 가벼웠다. 17대국회 첫 해의 아이콘은 ‘극심한 정쟁’과 ‘색깔논쟁’이었다. 정당한 의사진행도 무시한 생떼와,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무질서와 혼돈 속에, 2004년 의회정치는 마침표를 찍었다. 의회정치는 전체가 파탄났지만, 그 안에서도 손익은 뚜렷하게 갈렸다. 국지전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는 명백했다. 과반을 넘어서는 150석을 확보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121석을 가진 한나라당과의 전투에서 무너졌다.
전투 패배의 결과는 전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4대개혁법안 연내처리에 실패하면서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등 혹독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실은 더욱 컸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탈당과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150 대 121의 전투에서 패한 건 통념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불가사의는 아니다. 싸움에서 맷집과 근력, 근성은 몸무게보다 중요하다. 더 중요한 건 조지 포먼을 쓰러뜨린 무하마드 알리의 전략이다. 4대입법 추진 자체가 열린우리당에 독배였는지는 잘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허약체질이 4대입법 추진과정에서 여과없이 드러난 것만큼은 분명하다. 열린우리당은 왜 패배했을까? 4대입법 추진과정에서 보여준 열린우리당의 행태를 되짚어보면, 우연한 패배가 아닌,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읽힌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
||||
‘탄핵 후폭풍’은 눈치못채더니 ‘4대입법 후폭풍’은 장담
직권상정 포기는 정치적 색약증…기성정치 물든 인식의 한계 “4·15총선 이전과 이후는 시대가 다르다. 그런데 지도부는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권위주의 정권의 날치기와 같이 인식하는 등 너무 몸을 사렸다.”(열린우리당 개혁파 중진의원) 국가보안법 연내처리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240시간 연속 의총’ 소속 의원들의 마지막 요구는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4대개혁법안을 의장이 직권상정해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의장의 직권상정은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의회주의자임을 자처한 김 의장을 압박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26일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단식농성을 벌였던 시민단체들도 “역사의 배신자로 남을 것인가, 민주와 인권의 수호자로 다시 설 것인가”라며 김 의장의 직권상정을 간절하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여권 지도부와 김 의장은 칼집을 만지작거리기만 했을 뿐, 끝내 꺼내들지 않았다. 그들은 “경호권 발동하고 직권상정하고 했으면 탄핵 때처럼 거센 후폭풍이 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두려움은 초록과 빨강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약증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탄핵과, 개혁을 위한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4대법안을 직권상정하는 것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넌센스라는 것이다. 정치학을 하는 한 대학교수는 “우리나라는 대체로 의회보다 시민사회가 더 현명하다”며 “탄핵 때는 대부분 시민들이 반대했는데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강행한 것이고, 4대입법은 찬반이 팽팽한 국가보안법을 빼면 국민의 지지가 60∼70%가 넘었다”고 말했다. 탄핵과 4대입법의 처리는 서로 다른 정치적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통령의 지지도가 20%대인 상황에서 법안에 대한 지지도가 70%가 넘어간 것은 놀라운 일로, 언론개혁과 사학개혁법은 국민적 합의에 가까운 여론이 형성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탄핵과 같은 후폭풍을 우려한 것은 기성 정치권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인식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4대입법 직권상정의 후폭풍을 우려하며 공식 협상대표까지 배제한 채 우회적인 타협을 시도했던 이들이 지난 3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 추진을 앞두고는 역사를 바꿀 탄핵 후폭풍을 내다보지 못한 채 대통령더러 탄핵추진세력에게 머리를 숙일 것을 요구했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이들의 ‘노회한’ 정치읽기가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은 손바닥 만하다”며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는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
||||
“여야 합의처리는 민주주의 필요조건인가 충분조건인가?”
한나라당 ‘비논리’에 ‘무논리’ 편승한 우리당 지도부 4대법안의 직권상정에 대한 한나라당의 ‘날치기’주장과 군사정권 시절에 수도 없이 반복됐던 날치기는 어떻게 다를까? 한나라당이 상생의 정치를 언급하며 ‘법안을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어떤 법적인 효력이 있는가? 상생의 정치를 내세우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그토록 강조하기에 앞서 ‘절차’가 의회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인지 충분조건인지 먼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여야가 타협하지 못하고 표결처리로 가면 언론은 ‘상생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데, 국회는 타협하고 상생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하나의 도그마일 수 있다”며 “타협하고 상생하지 못하는 것보다 의사진행도 못하고 표결처리도 못하는 국회가 훨씬 반의회적인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보안법 폐지안을 놓고 상임위에서 여야가 함께 논의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국회법 자체를 심각하게 어긴 것”이라고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도 “한나라당은 의회주의의 출발 자체를 막았다”며 “국회의장 직권상정 논란은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법사위와 본회의장을 점거해 스스로 국회를 마비시킨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놓고 날치기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얘기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사안의 핵심은 직권상정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직권상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에 있다”며 “상임위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에 합의해놓고 표결 과정에서 쏙 빠진 뒤 ‘날치기 처리’라고 비난했던 한나라당은 절차 문제를 따질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여야 합의로 반드시 법률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은 법에도 없고, 상식에도 없고,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가공된 다수(인위적인 다수)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소수의 의견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합의가 필요했던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수의 형성과정이 달라졌다.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건 민주적 형성과정을 거친 다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선 의미가 없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주문한 한 정치학 교수는 “모든 법을 합의해야 입법할 수 있다면 민주노동당 등 소수정당은 단 한 건도 의원입법을 할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가능하면 합의하는 것이 좋지만, 합의가 안 된다고 법을 만들지 못한다는 논리는 더 우스꽝스럽다”고 비꼬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김원기 국회의장이 한나라당의 ‘비논리’를 적극적으로 돌파하는 대신 ‘무논리’로 동조했다고 일갈했다.
|
||||
“높으신 분들 애초 연내처리 의지가 없었다”
보스없다는 정당에 대통령 한 마디로 오락가락 여권 전체가 4대입법을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개혁성향 중진의원은 “당의장, 원내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나 청와대, 국회의장이나 이런 분들이 무리하게 (4대입법을) 관철시켜 데모가 일어나는 등 시끄럽게 분란을 일으키기보다는 한나라당과 합의 속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던 것 같다”고 여권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국회에서 4대입법을 놓고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12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청와대 만찬에서 보안법 논란에 대해 “몇십년 된 어려운 법인데 하루아침에 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해 보안법 논쟁을 폭발시킨 주인공이었다. 이런 노 대통령의 태도변화로 김원기 국회의장과 여권 지도부가 직권상정 등 강행처리를 끝까지 주저한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노 대통령의 발언 뒤 온건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보안법을 연내에 폐지할 방법이 없으니, 대통령의 말을 활용해 다른 길을 찾아보자”거나 “당론 변경을 추진한다” 등의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열린우리당 중진의원들이 한나라당과 막후 협상라인을 가동하며 보안법의 대체입법안을 마련하는데 분주하게 나섰던 이유도 여권의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천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천 대표는 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일 생각이었으나, 김원기 국회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반대와 더불어 노 대통령의 신중한 태도도 (연내처리를 양보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
||||
진짜 후폭풍은 따로…당원과 지지자들이 떠나간다
“우리당 개혁엔 한나라만 있고 국민·당원은 없다” 열린우리당의 결정적인 패배 요인은 개혁을 위해 자신들을 과반수로 만들어준 당원과 국민들에 대한 정치적 신뢰가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 그들은 당원과 국민들을 정치의 주체가 아닌 이미지 연출을 통해 끌고가야 할 정치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4대입법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개혁 속에 국민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들의 참여정치는 참여의 주체가 없는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 이부영 의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 인터뷰에서 “한나라당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한나라당과 보안법을 철폐한 뒤 대체입법하기로 의견접근을 본 뒤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뒤짚은 것을 놓고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의장은 보안법 폐지를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20여일 동안 단식을 벌인 농성단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또 4대입법의 연내처리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한나라당에만 매달린 ‘양생’의 정치로 열린우리당이 목숨 걸고 달려들었던 4대법안 처리는 끝내 무산됐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후폭풍을 만났다. 인터넷에서 불기 시작한 탈당과 지지철회는 앞으로 어느 선까지 이어질지 내다보기 어렵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열린우리당과 개혁을 하나로 묶어주기는 더이상 어렵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은 처음부터 한나라당과 타협하기보다는 한나라당의 생떼정치에 맞서 싸워야 했다. 당내에서도 의장실을 점거한 당원이나 240시간 의총을 진행했던 의원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기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키워내 보안법 폐지의 명분으로 활용해야 했다. 또 한나라당과의 협상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등과 연대해 한나라당을 압박하면서 직권상정이라는 최악의 시니리오를 준비하며 명분을 쌓아야 했다. 그것이 ‘우리당스러운’ 전술이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보안법 등 4대법안 입법에 성공하려면 열린우리당이 협상해야 할 대상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당원과 국민,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이었다고 지적했다. 4대입법 가운데 보안법, 과거사법, 사립학교법은 2월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졌다. 열린우리당이 이들 개혁법안을 놓고 2월 임시국회에서 혼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당권경쟁에 매몰되기 보다 누구와 정치적으로 연대해야 하는지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