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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6 14:59 수정 : 2005.01.06 14:59

노대통령 ‘선진’제시에 한나라 불쾌…
여 “특허내지 그랬나”

‘선진한국’은 한나라당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 국정지표로 제시한 “선진한국”에 한나라당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와 김형오 사무총장이 직간접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데 이어, 이정현 부대변인은 공식 성명까지 내어 ‘정책 도둑맞기’라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도 가세해 일찍이 전두환씨가 쿠데타로 집권한 뒤 '선진조국 창조’를 내세웠다며 전두환에게 저작권이 있는 '짝퉁선진' 논쟁을 비판했다.

‘족발집’도 아닌데 정초부터 때아닌 ‘원조다툼’을 벌이고 있는, 한국 의회정치의 수준을 보여준 삽화를 소개한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우리는 당이름도 ‘선진한국당’으로 거론하고 있다. 양해도 받지 않고 선진을 쓰다니... 선진한국은 우리가 먼저 주창한 것이다.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선진 운운하는 것은 내용 없는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얘기다. 70년대 총화단결에서 한치도 나아간 것이 없다.”(열린우리당)


정초부터 정치권의 입씨름이 심상치 않다. 여야는 이미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의 ‘불타는 지옥철’ 논평으로 한차례 입씨름을 주고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새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올해에는 대한민국의 목표를 그야말로 선진한국으로 세워서 바로 선진국을 달성하는 그런 야심 찬 자세로 국정을 운영해 갔으면 좋겠다”며 ‘선진한국’과 ‘선진경제’를 올 한해 국정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선진’을 강조하자 저작권 문제까지 들먹이며 은근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최근 당 쇄신을 위해 네티즌과 시민을 상대로 당명을 공모한 결과 ‘선진한국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선진’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또 지난 7월 박근혜 대표가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선진화를 위한 4대 개혁과제’를 제시했고 연말에는 ‘경제선진화 7대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명까지 ‘선진한국당’으로 정하려 하는데
기분좋은 정책도둑맞기로 받아들이겠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알려지자 이날 이정현 부대변인이 ‘기분 좋은 정책 도둑맞기’라는 논평을 내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논평에서 “(한나라당은) 선진한국당을 당명으로 정하려고 할 정도”라며 자신들이 ‘원조 선진’임을 은근히 강조했다.

이 부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올해 국정기조인 ‘선진한국’과 한나라당이 오래전부터 국정비전의 목표로 삼고 준비해온 ‘국가 선진화’와 일치한다”며 “‘대통령의 야당 아젠다 훔치기’라는 불만보다는 오히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기분좋은 정책 도둑맞기’로 받아들이겠다”고 논평했다.

이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국가선진화’외에도 한나라당이 요구해온 ‘실용노선’ ‘경제 우선’ ‘성장 위주 경제정책’ 등을 뒤늦게 받아들인 것은 다행”이라며 “문제는 온갖 형용사가 동원된 또다른 로드맵 만들기가 아니라 ‘행동에 옮겨지는 동사형 구체적 실천’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원조 선진화 타령은 대변인 성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도부도 직접 ‘원조 선진’의 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6일 오전 상임운영위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김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이 박 대표를 중심으로 ‘국가선진화 계획'을 발표하고 비전을 제시했다”면서 “양해도 받지 않고 ‘선진’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선진’이라는 말의 타당성은 입증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는 말의 성찬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내용을 같이하고 말을 실어담은 용기(그릇)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며 “선진경제, 선진한국이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제대로 된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표 “우리가 먼저 썼으니 대통령도 동참하라”

5일 상공회의서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을 만난 박 대표도 “우리가 선진화를 앞서 주창할 때는 법치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대통령과 정부가 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이 이것을 믿게 될 때 경제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선진화를 먼저 주창했기 때문에 대통령도 우리와 인식을 같이하고 계시리라 믿고 싶고, 이런 선진화 노력에 대통령도 동참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미 대변인 “차라리 특허라도 내지 그랬냐”
“한나라 선진은 앙상한 뼈대, 총화단결 구호와 같은 것”

열린우리당은 김현미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원조 선진 한나라당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 대변인은 “차라리 한나라당이 (선진이라는 말에) 특허라도 내지 그랬냐. 연초부터 ‘선진’이라는 용어를 누가 먼저 썼느냐를 가지고 싸우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며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는 내용과 실천이다”고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의 수구적 행태와 의회주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볼때 한나라당에게 선진정치, 선진한국 기대는 요원한 것 같다”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태도와 실천이 담보될 때 선진이 이뤄진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박근혜 대표를 겨냥해 “박근혜 대표로부터 한번도 21세기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보지 못했다”며 “박 대표와 한나라당이 말하는 선진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김 대변인은 또 “경제적 양극화 문제, 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어떻게 만들지, 사회 안전망을 풍부하게 구축하는 문제 등 선진의 구체적 내용을 이야기해야 한다”며 “내용없는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이야기를 한다면 70년대 총화단결을 구호로 내걸었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실천없는 ‘짝퉁선진’ 전두환에 저작권 지불하라”

한편, 민주노동당도 6일 “실천없는 ‘짝퉁 선진’, 저작권은 전두환 정권에 있다”는 논평을 내어 “두 당의 ‘선진’ 논쟁은 낯 뜨거운 논란”이라고 일축했다.

김성희 부대변인은 “전두환 독재정권은 이미 국가목표로 ‘선진조국 창조’를 제시한 바 있다”며 “지금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구체적 실천과 비전 없이 저작권 시비까지 벌이고 있는 ‘선진’은 기실 전두환표 선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작권료를 전두환 정권에 지불해야 할 판”이라고 논평했다.

김 부대변인은 “국민들이 ‘선진’이라는 단어에 불신과 냉소를 보내고 있다”며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유리되고 진정한 개혁 의지가 담기지 않는 선진화는 억압과 통제의 정치적 역설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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