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오른쪽부터) 등이 21일 서울 효창동 대한노인회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건배를 외치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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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등 잇단 문서공개로 ‘압박감’
"누구의 딸인지 잊어달라"홀로서기 비쳐
과거사법 논의 새달 임시국회가‘시험대’ 과거의 ‘늪’에 빠질 것인가, 과거의 ‘벽’을 넘을 것인가? 과거사 대응 문제를 놓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일협정과 문세광 사건 등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역사가 한꺼풀씩 실체를 드러내면서, 과거사가 피해갈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탓이다. 한나라당이 느끼는 중압감 또한 만만치 않다. 박 대표는 그동안 아버지 시대의 어두웠던 역사를 가급적이면 비켜가려 했다. 지난해 말 ‘4대 법안’의 대치정국 속에서 여야 합의대상의 1순위로 꼽히던 과거사규명법이 불발된 것은 박 대표의 ‘고집’이 직접 원인이었다. 당시 그는 ‘친북 이적 활동’을 조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이런 박 대표가 조금씩 ‘정면승부’를 생각하는 것같다. 그는 문세광 사건과 연관된 외교문서가 공개된 지난 20일 당 상임운영위에서 “박근혜가 누구의 딸이라는 것을 잊어달라”고 말했다. 문서공개 정국의 대응과정에서 ‘박정희의 딸’인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라는 주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당 관계자는 “박 대표가 과거사 정국을 정면돌파하고,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박 대표에겐 과거사 문제를 피해갈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도 국가정보원(옛 중앙정보부)과 군, 경찰 등 박정희 시대에 정권안보 도구로 동원된 기관들의 ‘자기 고백’ 작업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과거사의 긴 터널을 지나야만 하는 셈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박 대표가 과거사와 정면으로 맞닥뜨릴 것인지를 놓고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하다. 한 소장파 의원은 21일 “‘정치인 박근혜’ 이미지의 상당 부분을 박정희에게 기대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표가 60∼70년대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는 것을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당내 비주류 중진인 이재오 의원도 “말이 좋아 산업화를 이뤄냈다고 하지만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며 “현대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자기 반성 위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사에 대한 박 대표의 ‘대결 의지’는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이 과거사법을 다시 주요 의제로 꺼내 들 경우,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소장파 쪽 관계자는 “박 대표에게 과거사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칠 수록 더욱 깊숙이 빠져드는 늪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다음달 열리는 정수장학회 이사회에서 박 대표가 이사장직을 사퇴할지 여부도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가늠하는 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정재권 기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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