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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4 18:34 수정 : 2019.11.25 02:40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인터뷰]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뭐 이런 의결이 다 있어!”

2018년 2월 25일 새벽 2시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결정된 뒤 회의실 복도에서 고성이 터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환노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산입범위 확대에 반대했던 이용득 의원(비례·초선)이었다. 번번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왔던 이 의원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한국노총 위원장과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지내고 노동계 몫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 22일 이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만나 민주당의 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은 ‘힘없는 노동자를 도와야지’라는 온정적 마음만 있을 뿐 의지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나에게 ‘노동 분야의 정치인 동지 하나만 있었다면’ 싶었다”고 토로했다. “솔직히 문재인 정부랑 이명박 정부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강한 비판도 나왔다. 최저임금 큰 폭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민주당이 경영계의 반발에 속절없이 떠밀릴 때도 환노위 ‘소수의견’을 도맡아온 이 의원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추진되어 온 과정은 민주당의 노동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시금석이었다. 이 의원은 “정말 탄력근로제가 영세상인 경영난의 원인이면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민주당은 아무것도 안 해보고 ‘노동이 죄인’이라고 뒤집어씌운다. 2년도 안 된 주 52시간제를 누더기 만드는 자세부터 틀려먹었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주요 과제로 삼고 야당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의 평생 숙원 ‘노동회의소’가 지난 20대 국회 임기 동안 아무런 진전을 만들지 못한 점도 불출마 의사를 굳히게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일부 사업장에서 임금·노동조건 등 단체협약을 놓고 투쟁하는 노동조합과 달리, 노동회의소는 전문가 그룹이 모여 총노동을 대변하는 조직이다. 이 의원은 “당내 의원들과 싸워가며 노동회의소를 대선 공약에 넣었지만 당은 관심이 없다. 문 대통령도 자기 공약인데도 ‘노동회의소 어떻게 추진되고 있냐’는 말 한마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의 노동에 대한 철학 부재를 정책 후퇴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 의원은 “2013년에는 민주당이 중복할증에 찬성했지만 여당이 된 뒤에는 (반대로) 바뀌었다. 당에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며 “다들 노동계 탓을 하는데 대통령마저 거기에 일조하며 노동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한다. 청와대는 표만 보고 여당은 청와대 눈치만 본다”고 했다.

20대 국회의원 임기 뒤 이 의원의 계획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다만 노동회의소를 위해선 뭐든 한다는 태도다. 이 의원은 “공직에 나서거나 당과 함께 일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노동회의소를 만들기 위한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 불출마 선언을 한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이 자꾸 해법 아닌 걸 해법이라고 하니까. 예를 들면 지금 민주당은 주 52시간제를 보완하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늘리자고 한다. 정말 영세상인들의 경영난이 무엇 때문인지 찾아보고 만일 탄력근로제가 원인 가운데 하나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해보고 노동이 죄인인 것처럼 모든 걸 뒤집어씌우는 꼴이다. 2년도 안 된 주 52시간제를 누더기 만드는 자세부터 틀려먹었다.

게다가 남들이 ‘노동이 죄인’이라고 말하니까 대통령마저 ‘맞아, 노동이 죄인이야’ 하며 일조한다.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노동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하는 셈이다. 그러니 내가 무슨 정치를 더 한다고 남아 있겠나. 청와대는 표만 쳐다보고 여당 의원은 청와대 눈치만 본다. 여당 의원이 청와대 눈치 보는 사람인가? 이건 정치도 아니다.”

- 불출마 선언문 곳곳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났다. 지난 3년 반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당의 결정은 무엇이었나?

“너무 많다. 최저임금이든 노동시간 단축이든 우리가 야당일 때랑 여당일 때랑 기조가 다르다. 2013년에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할 때 민주당은 ‘중복할증’(주말근무를 할 때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중복으로 적용해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제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여당이 된 뒤에 묵시적으로 바뀌었다.

지금 정부·여당의 태도는 꼭 이솝우화에 나오는 ‘당나귀 팔러 가는 부자’와 같다. 남들이 수군수군하니까 나귀에 아들이 탔다가 아버지가 탔다가 둘이 같이 탔다가 다 내렸다가, 왔다 갔다 하는 거다.”

- 민주당이 여당이 되면서 그런 입장 변화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은 ‘힘없는 노동자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겠다’는 온정적이고 우호적인 마음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 의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도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정도다. ‘확실히 이것만은 해야 한다’는 게 없다. 솔직히 문재인 정부랑 이명박 정부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철학의 부재다. 당에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아예 없다. 와보니까 다들 다음에 또 (국회의원) 배지 다는 것만 생각하더라고. 전태일 열사가 살아생전에 ‘내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했던 것처럼 나한테도 ‘정치인 동지 하나만 있었으면’ 싶더라. 노동 분야에 대한 확실한 정치인 동지 딱 하나.”

- 노동계 역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큰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나야말로 누구보다 희망과 꿈에 부풀어 이 정부를 믿었던 사람이다. 래리 바텔스 프린스턴 대학교수의 저서 <불평등 민주주의>를 보면, 지난 60여년 동안 미국 하위 20% 계층의 소득 향상률을 집계해놨다. 민주당 집권기 저소득층의 소득 향상률이 공화당 집권기보다 6배가 높게 나타난다. 바텔스 교수는 이를 ‘정치의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취약계층은 자기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에 미국 민주당의 지지세력이 되는 거다. 그러면 정치와 노동은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

한국에선 더불어민주당이 그런 희망이 있는 정당이라 생각해서 선택했다. 민주당도 노동계를 자기 세력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하는데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저쪽(야당)을 보면 거기는 ‘아이고, 아니올시다’다.”

- 처음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사관계’라는 걸 만들어 보고 싶었다. 노조 조직률만으로 뭐가 되든 시대는 갔다. 이미 기술발전으로 인해 공장식의 집약 노동이 줄고 플랫폼 노동 같은 개별 노동이 늘고 있다. 노사관계를 되찾는 게 해답인데, 한국은 노사관계가 없는 나라다. 영국의 노사가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논의하는데 우리 노사는 사업장 내 분배 문제 말고는 같이 하는 게 없다. 진짜 노사관계를 이야기하려면, 현대차 노사만 만나는 게 아니라 총노동과 총자본이 만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노동회의소’라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우리 노사도 노동회의소와 경제회의소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관여하면서 이 사회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난 오로지 노동회의소 하나 만들고 싶어서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당도 관심이 없고 대통령도 자기 공약인데 ‘노동회의소 어떻게 추진되고 있냐’는 말 한마디가 없다. 오히려 내가 노동회의소를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넣기까지 당내 어느 의원과 4번이나 싸워야 했다.”

- 노동회의소는 노동조합과 어떻게 다른가?

“나도 산업은행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지만, 지금 노동계 인사들은 특정 사업장 출신 활동가들이 많다. 자기 사업장에서 봉급과 노동조건만 가지고 싸우고 몇 년에 한 번씩 조합원 선거를 통해 재평가를 받아야만 노동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대립과 투쟁밖에 할 수 없고, 노사 신뢰가 쌓일 리 만무하다. 심지어 양대 노총끼리도 서로 1노총 되려고만 싸운다. 그걸 욕할 수가 없다. 그게 지금 우리 시스템의 한계다.

현재 체제의 노동조합이 사업장 단위의 봉급 등 단체협약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라면, 노동회의소는 전문가 그룹이 모여 총노동을 대변하는 조직이다. 지금의 노동조합이 10% 노동만 대변한다면 노동회의소로 총노동을 완성하는 거다. 조합원 선거를 치르지 않는 전문가들이 모여 지금의 노동조합과 별도의 시스템에서 논의하기 시작하면, 분명 노사가 ‘윈윈(Win-Win)’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면서 차츰 노사 간 신뢰를 만들어 보자는 거다.”

- 앞으로의 계획은?

“나는 노동회의소 관련된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아직 구체적인 생각은 없지만 노동회의소를 만들기 위한 일에 매진하고 싶다. 공직에 나서거나 당과 함께 일할 생각은 없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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