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대북 강경자세 무마 노력에 찬물
6자회담 재개 관련국 행보 재촉 계기로 정부는 북한의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 인출 완료’ 발표가 조만간 재처리 돌입이나 재처리 완료 선언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2일 “북한이 지난 3월 말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로부터 40여일 만에 폐연료봉을 모두 꺼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신속하게 일을 진행한 것 같다”며 “이대로 가면 재처리까지 간다고 보는 게 정상적”이라고 말했다.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기 위해선 통상 두어달 정도 수조에 넣어 냉각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의 인출 속도를 감안하면 이것 또한 빨리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폐연료봉을 순차적으로 꺼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맨 처음 꺼낸 것은 다음달 초면 재처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하루에 폐연료봉을 0.8t씩 재처리한다고 가정할 경우 60여일이면 재처리를 완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북한의 이번 발표가 6자 회담 재개를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설이나 미사일 실험설이 도는 와중에 그보다는 충격의 강도가 낮은 ‘폐연료봉 카드’를 꺼낸 점을 보면, 협상의 문을 닫는 상황은 일부러 피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이미 플루토늄을 확보한 상황에서 그 양을 늘리는 게 핵무기 보유라는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도 “북한이 조용히 할 수도 있는 것을 자꾸 공개하는 것은 결국 들으라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반면,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북한의 이번 조처는 단순한 협상용이라기보다 핵 보유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 입장에선 대북 제재 등 미·일의 강경자세를 무마할 수 있는 설득력이 이 때문에 떨어지는 결과도 예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정부는 북한의 이번 조처가 6자 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이번 조처를 어떻게 보겠느냐”며 “정부로선 북한의 이번 조처가 2003년에 이미 한 것을 재탕한 것이라고 해도 대단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북핵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고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조처는 한반도 비핵화에 역행할 뿐아니라,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노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신 북한의 폐연료봉 인출 완료 발표로 6자 회담 재개의 시급함이 다시 확인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수행 중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너무 비관하거나 낙관할 것 없이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관련국 정상들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풀기 위한 관련국들의 협의가 진행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강문 정인환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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