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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6 19:20 수정 : 2005.01.16 19:20

‘교시 통치’ 에서 ‘법치’ 로

북한이 형사소송법, 상속법 등 112개 법률이 실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전>(대중용)을 지난해 8월 발간한 것으로 16일 밝혀졌다.

1990년대 이후 제정·개정된 대부분의 북한 법률이 담긴 전체 1095쪽 분량의 이 법전에 대해 전문가들은 처음으로 북한 법전이 발간·공개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법을 만든 뒤 공표하는 절차를 생략해 외부에서는 법률 제정이나 개정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었다. 북한 안에서도 법전은 제한된 장소에 비치돼 당 간부나 법률 전문가만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승용차·화폐 등 소유·상속 인정
호주제 없고 이혼은 재판으로만 가능
장애인보호 차질땐 개인도 책임물어

북한법연구회학회 회장인 장명봉 국민대 법대 교수는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법은 ‘수령의 정치적 보위’나 ‘온 사회 주체사상화’를 내세웠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이념적 요소가 퇴색하고 객관적 규범 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고지도자의 교시나 노동당 정책 중심이던 북한의 통치방식이 법제를 바탕으로 한 법치로 가고 있다”며 “인권과 재산권 보호, 경제 개혁 등 경제개혁에 따른 사회변화를 반영한 실용주의적인 자세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 재산권 개념 확대 =2002년 3월 제정된 상속법(4장 58조)은 개인소유권과 이를 대물림하는 것을 법으로 보장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북한은 상속이라는 말 자체를 자본주의적 요소로 여겨 부정해왔다. 북한은 상속 대상에 주택과 승용차, 화폐, 저축, 도서, 가정용품, 문화용품, 생활용품 등 개인소비재를 포함시켜 북한 체제에서 개인 소유개념이 확대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북한에서 대부분 주택은 국가가 장기임대형식으로 주민에게 공급하고 있어, 주택 상속은 국가소유 주택의 임대권 상속이 가능해졌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손해보상법 제정도 눈에 띈다. 이 법에서는 재산·인신 침해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과 배상액 산정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2003년 6월 제정된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에서는 소프트웨어 저작권 등록제를 실시하고 저작권 보호를 크게 강화했다. 법 가운데 인격권(공표권·성명표시권·동일성유지권)은 무기한, 재산권(복제권·전시배포권·이용허가권·양도권·손해보상청구권)은 30년 동안 우선 보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20년을 연장해 최고 50년까지 보호하고 있다.




◇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보호 강화 =지난해 5월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공개재판 원칙을 밝히고 ‘재판소는 재판에서 독자적이며 그것을 법에 의거하여 수행한다’(제272조)고 밝혀 처음으로 재판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다.

2003년 6월 만들어진 장애자보호법은 장애인의 재활·생활·노동·교육 등을 담고 있다. 장애인 보호사업에 지장을 초래했을 경우 기관 및 단체의 책임자급 간부는 물론 개인에게도 형사적·행정적 책임을 묻는 처벌조항을 마련했다. 한 탈북자는 “상이군인을 제외한 장애인을 도시에서 추방하던 북한이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우하겠다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고 말했다.

◇ 호주제 없고 협의이혼 불가 =북한에는 호적법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북한 <조선대백과사전>에도 호적법이라는 단어도 올라 있지 않다. 사전은 “호적은 낡은 사회에서 호주와 호주에 속한 가족을 등록한 문건으로, 호적계는 일제 때 관청에서 호적을 맡은 부서로, 호적등본은 낡은 사회에서 한 집안의 호적을 베낀 문건”으로 설명하고 있다.

북한 가족법은 또 당사자간 합의에 따른 협의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부부가 갈라서려면 반드시 재판소의 판결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가족법은 20조에서 “이혼은 재판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식량을 마련해오지 못하는 남편을 밥만 축낸다는 의미에서 ‘멍멍이’로 부르면서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 경제개혁 법제화=사회주의상업법 개정 내용을 보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처 이후 북한에서 실리사회주의가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상업법이 상점·봉사소·식당 등 서비스 업종에 대한 ‘승인’ 규정 대신 ‘영업허가’ 개념과 무허가 영업에 대한 처벌조항을 도입하고, 수매상점이 주민의 잉여물품을 수매할 때 신분 및 출처 확인을 금지한 것은 시장 활성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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