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관이 전한 ‘김위원장 발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7일 나흘간의 북한 방문을 마친 뒤 인천공항에 도착해 노무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나눈 면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공항/이종근 기자 [e-mail]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5시간여에 걸친 면담을 하고 돌아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저녁 곧바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한 뒤,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 사무국 3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을 ‘시원시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상히 밝혔다. 정 장관의 발언을 요약했다.

◇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와 회담 분위기

김정일 위원장은 시원시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였다. 즉석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는 바로 결단을 내리고 지시했다. 분위기는 매우 진지하고 솔직했다.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관계 발전과 핵문제 해결에 대한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고,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특별한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거듭거듭 요청했다. 또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해 주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핵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북은 핵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북은 6자 회담을 포기한 적도 거부한 적도 없으며, 미국이 업수이 보기에 자위적 차원에서 맞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북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또 이런 입장이 확고하다면, 7월 중이라도 6자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좀더 협의해 봐야겠다. 미국의 입장이 확고하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 이후의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핵 문제가 해결되면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할 것이며, 국제원자력기구 등의 국제사찰을 모두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와서 다 봐라. 한 알도 남길 이유가 없다. 이 모든 사항을 공개해도 좋다”고 말했다.

북이 원하고 있는 체제 안전보장과 관련해 ‘북-미 간 안전보장보다는 다자 안전보장이 낫다’는 점을 강조했더니, 김 위원장은 “일리가 있다.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또 내가 6자 회담이 재개되면 회담만 거듭할 것이 아니라고 말한 뒤 우리 정부가 구상한 중대제안을 설명했더니, 김 위원장은 “중대제안은 신중히 검토해서 답을 주겠다”고 답변했다.

◇ 북-미 관계에 대한 긍정적 평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께서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한 호칭을 미스터로 불러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또 한-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다시한번 미스터를 사용한 것에 대해 ‘최고 지도자 간의 인정과 존경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부시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부시 대통령 각하라고 할까요?”라고 반문하면서, “부시 각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부시 대통령이 대화하기 좋은 상대다. 대화하면 흥미를 가질 것이다’라고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만나 이야기할 때도 같은 취지로 이야기했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부터 미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협상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좋다. 나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혀도 좋다”고 말했다.

◇ 남북관계 개선 흔쾌히 응해

김 위원장은 6·15 공동선언 5돌 행사가 민간·정부 대표단이 함께 참여해 이뤄진 것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8·15 행사를 북쪽의 비중 있는 인사로 꾸며 보내겠다고 말했다. 6·15에 이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8·15는 광복 60년이 되는 뜻깊은 자리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더니, 김 위원장이 흔쾌하게 “그간 중단된 상봉이 8·15를 계기로 금강산에서 이뤄지도록 하라”고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에게 지시했다. 또 내가 ‘이산가족 상봉도 중요하지만, 적십자에서 등록한 이산가족이 12만명인데 해마다 5천여명씩 세상을 등지고 있다. 이들이 모두 금강산에서 만나는 데는 10년, 20년 걸린다. 정보화 시대에 화상상봉을 통해 화면을 통해서라도 음성을 듣고 얼굴을 보면 한을 풀 것’이라고 제안했더니, 김 위원장은 “매우 흥미있고 흥분되는 제안이다. 정보화 시대에 좋은 아이디어다. 남북이 지금부터 준비해서 8·15에 첫 화상상봉을 실시하자”고 말했다. 또 “남북이 경쟁적으로 준비해서 화상상봉이 되도록 하자”고 했다.

아울러 ‘다음주에 15차 장관급 회담이 열리게 되는데 남북한 간에 회담의 문화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그동안은 5분 정도 덕담이 이뤄지고 나면 서로 주먹질하고 말씨름하는 소모적인 회담이었다. 회담 분위기를 남북 협력 방안이 이뤄지는 자리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실질적인 남북 협력 방안을 논의하자”고 화답했다.

작년 장성급 회담에서 실질적 성과를 이뤘고, 정치·군사 면에서도 남북이 장성급 회담을 통해 만들어 낸 것에 대해 국민들이 좋아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이를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다음주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하고, 장성급 회담에서 정 장관이 이야기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서해에서의 긴장 완화를 이뤄내자”고 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육지에서는 길도 내고 개성공단도 이뤄지는데, 경계선도 불분명한 바다에서 총질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장성급 회담과 동시에 ‘수상(남북 어업) 회담’을 통해 공동어로를 이루고 공동이익을 낚아 올리자는 데 대해 김 위원장과 의견을 같이했다.

◇ 남북 직항로 문제 개선

끝으로 돌아오는 항로에 대해 김 위원장이 질문을 해서, ‘서해상으로 우회해서 디귿자 항로로 오니 5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랬더니 “서해가 아니라 육로로 오는 방안을 이야기해서 실천하자”고 얘기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이태희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