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3 22:31
수정 : 2005.07.13 22:33
외부공표땐 중대→중요 낮춰 연막술 ‘송전 현실성 검토’ 자문때도 거짓말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남쪽 전력을 직접 보낸다는 ‘중대 제안’은 ‘안중근 계획’이라는 암호명으로 지난 6개월 동안 극비리에 추진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관계자 등의 말을 들어보면, 중대 제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일본이 모두 경수로 사업을 끝낼 것을 요구해 그 대안을 찾아야 하고, 북한의 핵폐기를 끌어내기 위한 대체 에너지 문제를 풀어야 하는 두가지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종석 사무차장을 중심으로 한 안보회의는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다, 1월 중순 두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으로 전력 공급을 떠올렸다. 이 때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안중근 계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중근 의사가 남북이 모두 존경하는 위인이기도 하지만, 안중근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전력 공급이라는 방식을 연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위장이었다고 한다.
이후 안보회의는 송전의 현실성을 검토하기 위해 한전의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송전선로와 변환시설 등에 대한 기술적 자문을 구하면서도, “경수로에서 나올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연막을 칠 정도로 철저히 대외비에 부쳤다.
이렇게 마련된 중대 제안은 지난 2월15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그 뒤 안보회의 고위전략회의에서 한 차례 논의되면서 비밀 공유자가 늘기 시작했으나, 마지막까지도 그 범위는 이해찬 총리를 포함해 10여명에 그쳤다고 한다.
중대 제안이 처음으로 외부에 공표된 것은 5월16일 남북차관급 회담 때 이봉조 통일부 차관이 “중요 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다. 그러나 이때도 언론의 관심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중대’라는 표현 대신 ‘중요’라는 말로 표현을 누그러뜨렸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예 북쪽에 알리지 않았다. 정동영 장관이 6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비로소 전력공급의 방식을 자세히 설명했으나, 그마저도 면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얘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미국에도 6월18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했을 때 이종석 차장이 처음으로 제안을 설명했다. 1주일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노 대통령은 중대 제안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통보한 것도 12일 공식발표 몇시간 전이었다. 여당쪽도 한나라당쪽과 비슷한 때 알게 된 셈이다.
정부는 애초 중대 제안을 6자 회담이 열려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경우 밝힐 생각이었으나, 언론 유출 가능성 때문에 발표를 앞당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9일 ‘대규모 종합 에너지 지원방책 제안’이라고 비슷하게 맞춰 보도하자,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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