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4차 6자 회담에 이르기까지의 경과에 대한 평가와 전망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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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전략적 결단 필요성…정부 역할 더 커져야
대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권만학 경희대 교수 북한 핵문제 해법의 핵심은 북한의 에너지 부족과 안전보장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는 직접 송전에 의한 전력 지원 방안을 담은 ‘중대 제안’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안전보장과 관련해선 ‘6·17 면담’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다자 안전보장’ 언급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리가 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26일 개막하는 4차 6자 회담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요인들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나 이번 회담의 쟁점과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권만학 교수(이하 권)=이번 회담 전망을 어떻게 하느냐가 우선 궁금하다. 정세현 전 장관(이하 정)=전망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열쇠는 미국이 가지고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를 미국이 회담 초반부터 끄집어내느냐, 아니면 좀 참고 플루토늄 문제부터 다뤄 문제 해결의 얼개를 만들어놓고 그 다음 차례에 우라늄 문제를 꺼내느냐에 회담 운명이 걸려 있다고 본다. 우라늄 농축 문제가 나오면 북한은 이미 선언한 대로 군축회담 얘기를 꺼낼 것이다. 결국 미국에 달렸다. 권=조심스런 얘기지만, 북한이 ‘벼랑 끝 협상’을 지속하는 가운데 이번 회담을 계기로 극적인 타결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북이 핵 개발에 나선 것을 두고 크게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른바 ‘생존전략설’인데,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다른 하나는 ‘협상전략설’로 안전보장과 함께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방도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북으로선 현재 상황을 더 끌고 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는 북도 전략적 결단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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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늄만도 먼 길 우라늄 접어둬야 정=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전략적 결단이 있느냐가 문제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4년 반 동안 북핵 문제를 제기해 놓고 ‘북한 때리기’만 했지, 문제를 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4차 회담이 열리게 됐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보다는 콘돌리자 라이스 현 장관의 정부 내 입지가 강하고 넓은 것 같다.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부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어 재량권이 있으리라 본다. 이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의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제대로 자리잡고 해결 쪽으로 나갈 수 있게 하려면 미국도, 북한도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회담 시작하기 전부터 ‘한달짜리’ 운운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회담이 지리멸렬할 가능성이 높다. 1주일 정도 안에 원칙적 합의를 하고, 남은 사안은 다음 단계로 넘기고, 이른 시일 안에 회담이 재개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잘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북이 회담장 밖으로 걸어 나가지 않도록 붙들어두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권=미국이 북핵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북핵 ‘본질설’인데,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핵 확산을 용납할 수 없고, 북핵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핵 ‘수단설’인데, 미국이 북핵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이를 활용해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어떤 협상전술을 갖고 나오느냐를 보면, 북핵을 해결하려는 것인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현실적으로 미국이 동북아까지 전선을 확장하는 걸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는 과도정부까지 들어섰는데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 이란에선 강경보수파가 집권에 성공해 핵 개발을 공언하고 있다. ‘악의 축’이라고 지목했던 나라들 가운데 적어도 북한과의 관계에서라도 숨통이 트여야만, 여력을 중동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현실적 필요가 북에 대한 유연한 자세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미국이 ‘공개적으로 밝힌 정책’은 대화로 문제를 푼다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고 본다. 중동전선이 복잡하게 꼬이면서 동북아에서 미국이 ‘진정한 의도’를 잠시 접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정책’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북한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한·미·일 3자는 이번 회담을 쟁점별 실무위원회 방식으로 쪼갠다고 했는데, 이는 북한이 강경책을 쓰기 어렵게 하는 구조다. 북한이 만약 전체회의 외에 동결 대 보상, 사찰, 에너지를 포함한 경제지원 등 소그룹으로 회담틀을 쪼개는 방식에 동의한다면 처음부터 타협점을 찾아가는 징조로 볼 수 있다. 권=북한이 6자 회담 복귀의 마지막 조건으로 내세운 게 ‘체면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의 강경태세로 보면 상당히 누그러진 모습이다. 정=북쪽 표현으로 “조성된 정세를 어떻게 료해하고, 문제해결 방도를 찾을 것인가”를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 회담 복귀를 통보한 것 아닌가 싶다. 북한이 정세를 어떻게 판독하느냐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6·17 면담’을 통해 정세 판독을 같이 한 것이 북한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중대 제안’이 북에 굉장히 매력적일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북한이 핵 카드로 미국과 힘겨루기를 계속해 온 이유는 궁극적으로 체제보장에 대한 확답을 듣기 위한 것이다. 대북 중대 제안이 핵 문제 해결 또는 핵 폐기를 끌어내는 데서 중요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미국에서 나와야 한다. 미국이 좀더 유연하고 넉넉한 자세로 나와야 한다.
권만학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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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체제보장 기본공식에 충실해야 권=예전에는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 자체를 미국이 반대했는데, 이번에는 라이스 장관이 ‘유용하고 창의적인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미래에 우리가 북한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은 현재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이번 회담 재개 과정은 한국이 자신의 능력을 재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불안한 것은 회담장 밖에서 미국이 북한 인권이나 미사일·마약 문제를 거론하고, 일본이 납치 문제를 얘기하겠다고 벼른다는 점이다. 이번 회담에선 당분간 농축 우라늄 문제는 접어둬야 한다. 플루토늄만 가지고도 갈 길이 멀다. 덧붙여 러시아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북한 핵 문제의 발원지는 러시아다. 철도 연결이나, 사할린 가스 공급 문제 등 남·북·러가 협력해야 할 대목이 많다. 핵 문제 해결 이후 동북아의 다자안보와 경제협력 체제로 나아가는 데서도 러시아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권=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공식은 핵 포기·폐기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종식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 탈냉전은 완성될 수 있다. 칠 건 치고, 문제를 정리해 이런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북·미 양쪽이 받아들일 만한 해결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이번 회담에선 가지고 있다고 본다. 정=북한도 좀더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결정하고 나왔다고 본다. 북한의 진정성을 선의로 해석하고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태도를 정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치권에서 정부와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북-미 신뢰조성 과정에서 한국이 다리 구실을 하라는 국회 차원의 결의안이 나와준다면, 미국도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50년 동맹이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진행 강태호 기자, 정리 정인환 기자 사진 이정아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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