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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8:21 수정 : 2005.07.29 02:21

2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제4차 6자 회담의 남북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왼쪽에서 두번째)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맨 오른쪽 위)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베이징 6자회담…평화공존·핵심원칙은 공감


북한과 미국의 이견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이를 좁히기 위한 협상도 밀도를 더하고 있다. 28일 북-미 접촉에선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 대북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 등 이른바 ‘말 대 말’의 핵심을 해부하는 데 논의가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쟁점은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계시킬 것인가이다. 북한은 핵폐기를 북-미 관계 정상화와 직접 연계해 북-미 관계 정상화는 ‘양자 문제’라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둘을 분리하고,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을 강조하는 등 북-미 관계 정상화가 ‘다자 문제’라는 접근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북-미 관계 정상화 과정에 인권과 미사일 문제 등 다양한 현안이 존재한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북 : 남한 핵철폐 비핵지대화 | 핵폐기 관계정상화 연계
미 : 북한만 핵폐기 | 관계정상화 별개처리

공통점 재확인=북한은 전날 기조연설에서 이번 회담의 구체적 성과물로서 ‘말 대 말’에 합의하자고 제안했다. 미국도 이번 회담의 ‘핵심 원칙’을 바구니에 담는 방안에 합의하자고 제의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이번 회담에서 공동의 합의를 남기자는 데는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북-미는 이날 접촉에서도 이런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는 또 평화공존의 의지를 강조하는 데도 비중을 뒀다. 북한은 연설문 곳곳에서 △평화공존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구축 △신뢰 조성 등을 언급했다. 미국은 북-미 관계를 평화적 기초 위에 두겠다는 것이 단순히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며,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다자적·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고 환기시켰다.


‘바구니에 뭘 담을 것인가’=문제는 바구니에 담을 내용이다. 북한은 △북-미 신뢰 조성의 법적·제도적 장치 구축 문제 △북한의 핵폐기 △한반도 비핵지대화(남한의 핵무기 철폐 및 외부 반입 금지와 미국의 핵우산 제공 철폐) △비핵화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 보상 문제 등을 ‘의무사항’으로서 바구니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비핵지대화’까지 요구한 의도와 북-미 신뢰 조성의 법적·제도적 장치 구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쟁점이다.

미국은 △북한에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폐기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교역 및 투자를 포함한 경제협력을 바구니에 담을 중요 내용으로 거론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의 핵폐기로 좁혀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사일·인권 등은 ‘양자 내지 다자 현안’으로 처리해 나간다고 밝혀, 북한 핵폐기와 별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쟁점 우회’인가= 숨은 쟁점 드러나나=북-미는 핵폐기의 대상과 범위, 사찰과 검증 등 이행 과정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세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협의하기 시작했다. 평화적 핵활동,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 등 그간 숨겨졌던 쟁점들이 드디어 도마에 올랐다. 이번 회담의 목표가 큰 틀의 원칙을 세우는 데 있지만, 이들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전날 연설에서 밝힌 폐기 대상은 ‘핵무기와 핵무기 계획’이다. 평화적 핵동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핵 관련 시설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미국은 ‘북한에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폐기 대상으로 밝혔다. ‘모든’이란 말 속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이 들어가는 것은 분명한데, ‘현존하는’이란 수식어를 보면 모호해진다.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이 평화적 핵시설 및 활동까지 포괄하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북-미 모두 전날 연설에서 검증을 얘기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검증의 문제로 돌리는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의 대북 전력지원을 담은 ‘중대 제안’에 대해선 북-미 간에 본격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폐기에 대한 안전보장을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설에서 중대 제안을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공동문건’ 빈종이는 준비했지만…

무얼 어떻게 담을지 고민…한국 주도적 역할 시험대

주최국인 중국은 공동문건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6자 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28일 “우리가 원하는 만큼 컵에 물이 차오를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며 “더 해봐야 구체적으로 전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회담이 다음주로 넘어갈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의 <인테르팍스통신>을 보면 북한의 회담 관계자도 “원칙적으로 북한은 이번 회담을 결산하는 최종문서를 채택하는 구상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 문서가 정확히 무엇을 담을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담을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국면은 공동문건이라는 지향점을 두고 27일 기조연설에서 밝힌 내용을 놓고 말을 맞춰 가는 단계다. 다만,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지는 상황으로 보인다.

다이빙궈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은 이날 각국 수석대표들과의 오찬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나름대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 어려운 과제부터 이견을 좁혀나가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에는 조어대에서 ‘대어’를 잡을 수 있도록 하자”고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도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 대표단은 27일 기조연설 직후 미국-북한-미국 차례로 잇따라 양자접촉을 해, 연설의 숨은 뜻을 확인하고 전달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물론 북-미간 이견을 보이는 쟁점에서 한국의 중대 제안이 빛을 발하긴 어려운 국면이다. 그러나 북쪽 회담 관계자가 북한의 접근방식과 관심사항들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를 보이고 있는 나라가 남한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북-미 간에 상대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혼란이 있을 수도 있어, 한국의 가교 역할이 요구된다.

이번 회담의 일정을 전망하는 데는 일단 29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말을 이용해 휴회한 뒤 본국과의 협의를 거쳐 주초에 다시 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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