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회의에서 탈북자 출신의 기자 강철환씨가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
언론들 탈북자 증언만 주목…원인 및 바른 접근태도 외면
‘탈북자 75% “공개처형 목격했다”’‘북, 4명 중 3명 “공개처형 직접 본 적 있다”’
‘약 없어 임산부에 발길짓 강제유산,공개처형 봤다 75%…짓밟힌 인권’ 8~9일 이른바 ‘북한인권실태조사’ 관련 주요 언론의 보도 제목이다. 동국대 북한학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를 받아 만든 이 보고서를 둘러싸고 일부 언론은 사설까지 쓰며 인권위 비판에 나섰다. 보고서 공개를 미루고 있던 인권위에 대해 한 보수언론은 “누가 인권위더러 남북관계 걱정하랬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에 휩싸인 보고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언론들은 보고서 내용 가운데 탈북자의 증언만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언론보도가 집중된 증언내용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의 원인과 북한 인권문제에 접근하는 한국사회의 바람직한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간추리면, 지금 언론이 보도하듯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170쪽짜리 보고서의 결론이다.
지난 4월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김문수(오른쪽 아래) 한나라당 의원이 질의시간을 이용해 지난 3월초 북한에서 있었던 공개처형장면으로 추정되는 비디오를 상영하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
북한인권문제의 핵심은 식량난…북핵문제 평화해결이 첫 단추 이 보고서가 북한 인권문제의 본질과 접근방법을 매우 신중하면서도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에 닿아 있다. 보고서는 북한 인권문제의 본질과 관련해, 인권문제 해결과 북핵문제를 떼어내서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북한 인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난에 뒤따른 굶주림이며, 이 인권침해의 근본 해결책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이에 따른 북한의 개방·개혁을 통한 경제난 해소와 민주화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결론에서 “가장 중요한 탈북원인은 여전히 식량문제다”고 전제했다. 설문조사에서 탈북자의 62%는 북한에서 생활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식량 문제로 꼽았다. 보고서는 “북한의 경제난 악화가 주민들의 기본적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식량을 포함한 경제문제는 북한 인권상황을 다루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북한 인권상황의 근본적 원인은 ‘굶주림’에 있다”며 “따라서 북한 내부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이 시급한 과제이고,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민족의 생존권이 담보돼야 북한주민의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며 “‘이라크전쟁’에서 확인했듯이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지 못하고 전쟁의 참화가 한반도에 불어 닥치면, 우리민족 상당수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입장에서 북한 인권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전략적 사고’는 먼저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북한의 개혁·개방 환경을 조성해서 경제난 해소와 민주화를 추구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문제제기하면 남북관계 경색…비정부기구가 다뤄야” 이 보고서의 연구책임자인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9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북한 최고의 인권문제인 식량난은 외부세계와의 갈등, 곧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에 따른 경제난 등에 원인이 있다”며 “이런 면에서 인권문제와 북핵문제는 떼어내서 보기 어렵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따른 민족의 생존권 확보가 우선순위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법으로 ‘역할분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북한은 미국이 앞장서서 제기하는 북한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체제전복을 위한 ‘고립압살정책의 2개의 기둥’으로 인식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할 경우 남북관계는 ‘경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 단계에서 북한 인권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 교수는 “북한 인권문제는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공식제기할 경우 북한 표현대로 ‘파탄’날 수밖에 없다”며 “인권단체 등의 문제제기를 반대할 필요는 없지만 정부차원에서는 통일부 같은 기관보다는 인권위 정도가 적절한 시기에 의견을 표시하는 정도가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9월 30일 오전 김창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앞줄 오른쪽 두번째) 등이 서울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 상원의 북한 인권법안 통과에 항의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탈북자들은 북한인권의 최극단…전체 인권상황으로 보기 어려워” 한편, 보고서는 50명의 탈북자에 대한 인터뷰와 탈북자 교육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한계’를 도입부에 명확히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서론에서 “연구대상에 대한 접근의 한계로 인해 탈북자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며 “탈북자 증언에만 의존한 조사방법과 조사대상이 된 탈북자들이 특정지역(함경북도 출신)에 편중되어 있어, 본 조사결과는 북한의 인권상황 전반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음을 밝혀둔다. 따라서 본 조사결과는 매우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고 교수는 “보고서 조사에 응한 이들은 북한 체제를 거부한 탈북자들로, 북한인권상황에서도 가장 극단에 있었던 사람들이어서 최악의 증언이라고 볼 수 있고,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 들은 것들도 많다”며 “참고자료는 할 수 있지만, 북한 주민 전체의 인권상황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