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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5 13:48 수정 : 2005.08.15 13:53

아쉬운 이별 54년만에 북측에 있는 가족들을 만난 김동활(95)씨 15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에서 화상을 통해 딸 금옥(68)씨와 아들 경묵(60), 진묵(56)씨와 상봉하고 적십자사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면회장을 나서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남측 아버지.북측 자녀 54년만에 화상상봉


"북에 있든 남에 있든 나라에 충성하고 예의바르게 살자고 했지"

54년만에 북측에 있는 가족들을 만난 김동활(95.전북 전주시 완산구)씨에게는 환갑을 훌쩍 넘긴 자녀들도 어린아이만 같았다.

1951년 1.4 후퇴때 혼자 남쪽으로 내려온 김씨는 15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에서 화상을 통해 딸 금옥(68)씨와 아들 경묵(60), 진묵(56)씨와 상봉했다.

김씨는 당시 14살이던 큰 딸이 중학교를 졸업했는지부터 물었다.

김씨는 "김정일 위원장 덕분에 학교를 제대로 졸업했다"고 금옥씨가 답하자 안도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금세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친지들의 안부를 물었다.

김씨의 아내 차귀인씨는 90년대 81세의 나이로 숨지면서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생일(음력 7월 2일)에 제사를 지내라'고 당부했고 자녀들은 그 뒤로 해마다 김씨의 제사를 지내왔다.

김씨는 젊은 시절 모습과 고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나와 "아버지가 심어놓은 백살구 나무에 열매가 열려 잘 먹고 있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북측 자녀들은 시종 눈물을 보였지만 김씨는 침착하게 대화를 진행했으며 양 측 가족들은 '화상상봉을 성사시킨 정부와 적십자사에 고맙다'며 손뼉을 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상봉을 마쳤다.

1시간 35분간 짧은 상봉을 마친 김씨는 "5년전 물만 마셔도 속이 쓰려 죽을 줄 알았는데 이런 날이 왔다"며 " 동방예의지국에서 살면서 예의를 지키고 나라에 충성하면 통일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아들과 딸에게 당부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100살이 되기 전 자동차를 타고 북으로 갈 날이 있을 것"이라며 "통일되는 날 음악에 소질이 있는 딸의 연주를 듣고 싶다"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김씨는 남측으로 내려와 아내 이모(81)씨 사이에 딸 3명을 낳았으며 이날 상봉에는 막내 딸 부부가 함께 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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