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5 17:05
수정 : 2005.08.15 17:14
"어머니께 비보 전할수 없다" 아들사망 상봉장서 들어
100세 최고령 이령 할머니 `무반응'… 안타까움 더해
`이보다 더 안타까울 수 있을까.'
어느 이산가족의 사연이 안타깝지 않겠느냐 만은 화상상봉이 한창인 서울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상봉장 한 켠에서는 눈물 찡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번 화상상봉 가족중 최고령자로 거동도 불편하고 의식도 가물가물한 남측의 이령(100) 할머니가 그간 생존한 것으로 알고 있던 큰 아들 서갑석(97년 사망)씨의 사망 소식을 상봉장에서야 전해들은 것.
가족들은 이미 화상상봉 신청 과정에서 갑석씨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차마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날 상봉장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막내아들 항석(67)씨는 "어머니 큰 형님 보러 가는 거예요"라며 이를 악물고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대신 나오는 손자를 아들로 속일 수 밖에 없어요. 평생을 살아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오신 분에게 차마 비보를 전할 수는 없었어요."
이 할머니를 여태껏 정성스레 모시고 있는 큰 손자며느리인 이희구(45)씨는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항석씨는 "형과 헤어진 지 오래된 데다 조카도 형과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봉이 시작되면서 아들 갑석씨 대신 손자 강훈(47)씨가 부인과 함께 나왔고, 이 할머니는 함께 참석했던 다른 가족들이 갑석씨의 소식을 물어보던 과정에서 큰 아들에 대한 비보를 전해듣게 됐다.
하지만 기력이 이미 쇠해진 이 할머니는 이를 알아듣는 지 모르는 지 상봉내내 아무 표정이 없었고, 아무 반응도 없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경기도 양평이 고향이던 갑석씨는 손기술이 훌륭해 서울로 올라가 한국전력의 전신인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전차 정비사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전쟁이 터졌고 갑석씨는 수십명의 동료들과 함께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항석씨는 "형의 기술을 봤을 때 아마 북한에서도 전차 운전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할머니는 큰 아들을 가졌을 때 `여닫이 문으로 연결된 두 방 중 한 쪽에 갑석씨가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문이 닫히는' 태몽을 꾼 것이 아들을 이북으로 올려보낼 것을 암시했던 것이라고 항상 말해왔다고 한다.
졸지에 집안의 기둥을 잃어버린 이 할머니는 낙담속에서도 반세기 동안 매일매일 식사를 하기 전에 부뚜막에 따뜻한 흰 쌀밥을 올려놓았고, 기력이 쇠한 뒤에도 며느리들 보고 밥상에 밥 한 공기를 더 차리라고 다그치곤 했다.
그렇게 희망을 갖고 살던 이 할머니는 둘째 아들로 교회 장로였던 인석(74)씨가 작년 사망한 뒤 기력이 크게 쇠해졌다고 한다.
큰 아들의 사망 소식을 더더욱이 못 전하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이날 이 할머니는 비록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아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하늘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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