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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5 20:16 수정 : 2005.08.15 20:27

15일 서울 적십자사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장을 찾은 이령(100세) 할머니가 아들 서갑석(사진,78)씨의 사진을 들고 화상 앞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화상상봉] 최고령 이령 할머니 둘째아들 잃고 기력·쇠해져
장남 사망 소식에도 무반응 손자들끼리만 어색한 대화


아들을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15일 오후 4시 서울 대한적십자사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첫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 현장. 남북 통틀어 226명의 상봉자 가운데 최고령자인 이령(100) 할머니는 화면 속에 등장한 북한의 손자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다만 초점 흐린 눈을 끔벅였다.

난생 처음 남의 할머니를 보게 된 북의 손자 서강훈(47)씨는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아버지 사진을 보이며 “할머니, 이게 큰 아드님입니다. 알아보시겠어요?”라고 연신 물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물론, 이 할머니는 큰아들에 대한 희미한 기억의 끈만은 놓고 있지 않았다. 상봉 전 대기실에서 “뭐하러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앙상한 입으로 “큰아들”, “갑석이”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며느리와 손자가 계속해서 “(죽은) 큰아들 대신 손자가 나온대요”라고 말해줬을 때도, 화면 속 손자가 “큰아드님은 1997년에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무표정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이씨는 상봉장에 나오기 전만 해도 큰아들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가족들은 이번 상봉 신청 과정에서 이씨 큰아들의 사망 사실을 알았지만, 평생 큰아들이 살아있는 줄 알고 산 이씨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이 할머니가 큰 아들과 헤어진 것은 55년 전이다. 경기도 양평 본가를 떠나 서울에서 한전의 전신인 경성전기에 다니던 큰아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마자 행방불명이 됐다. 이씨는 당시 아들 걱정에 한달음에 서울을 찾았지만, 숙소인 관사 전체가 휑하니 비어 있어 허망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 군포시에서 이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손자 서일원(49)씨는 “4층 옥상을 올라다니며 손수 심은 상추를 돌보는 등 정정했던 할머니가 지난해 5월 둘째 아들을 잃은 뒤로 부쩍 기력을 잃었다”며 “딱 1년만 앞서 상봉이 이뤄졌어도 할머니가 북의 손자들을 알아보고 좋아하셨을 것인데…”라고 아쉬워했다.


정신이 희미하거나 세상을 뜬 ‘이산 1세대’들을 대신해 ‘이산 2세대’인 손자들끼리의 대화가 시작됐다.

“아버님 성함이 갑자, 원자 맞습니까?”

“맞습네다.”

남쪽의 손자 일원씨가 먼저 운을 떼자, 북쪽의 사촌 강훈씨가 답했다.

“집안 고향이 경기도 양평인 것은 아시죠?”

“예 아버님한테서 말씀 들었습니다. 그쪽 자식들은 모두 몇입니까? 이름 좀 알려주세요.”

“예, 이쪽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 할머니가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어색한 남북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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