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7 19:51
수정 : 2005.08.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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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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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돌을 맞은 8·15의 며칠 동안 한반도에는 ‘격변’이 있었다. 평범한 생활인은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할 만큼 조용히 진행된 몇 분간이었지만, 그 파장은 넓고 깊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비롯한 북쪽 대표단 일행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현충탑을 향해 걸어가 ‘호국영령’에 대한 예의의 표시로 고개를 숙인 그 몇 분의 시간을, 훗날 통일시대의 역사가들은 분단 60년 남과 북의 냉전체제가 본격적으로 무너진 신호가 되었다고 기록하게 될 것이다.
북의 대표단이 예를 표시한 ‘호국영령’은 누구인가. 현충원에서 안식을 구하고 있는 수많은 사자들은 대부분 북의 ‘애국자’들과 정 반대편에 서서 총을 들었던 사람이 아닌가. 북의 입장에서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증오’의 대상에게 내민 이 화해의 손길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피냄새가 가시지 않고 있는 한반도에 환한 촛불이 켜졌음을 느낀다.
북쪽 대표단은 대한민국 국회를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자리에는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 등 여러 정당 인사들이 고루 참여했다. 오찬장에서 남과 북의 정치인들이 웃으며 나누는 인사말을 지켜보면서 남북관계만큼은 정파적 이해득실을 떠나 범국민적인 이해와 협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8·15 민족대축전에는 그동안 냉전체제의 피해자로 입국이 거절되어온 해외 인사들과 함께, 그동안 북쪽이 거리를 두어온 재일거류민단과 각국의 한인회 사람들도 상당수 참여했다. 이 점도 북쪽이 이번 8·15 행사에서 보여준 큰 태도 변화이다. 북쪽 대표단이 오가던 길가에는 8·15를 맞아 수많은 태극기들이 나부꼈지만 이를 문제 삼는 북쪽 인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8·15 민족대축전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냉전주의자들의 시위와 돌발사고도 한두 건 있긴 했다. 일부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과 폄하도 단골손님처럼 반복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이제 서로 총칼을 겨누며 으르렁거리던 ‘남북국 시대’, ‘6·25 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6·15 체제’로 본격적으로 전환되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는 냉전체제보다 훨씬 더 가혹한 6·25 체제 아래 살았다. 냉전체제가 민족구성이 전혀 다른 국가와 국가 간에 작용된 것에 비해 6·25 체제는 동족 간에 작용되었고, 같은 혈연집단 간의 상쟁의 결과로 심장에 새겨진 증오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천년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 같던 증오의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하고 술잔을 부딪히며, 적대자의 무덤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수십년의 세월이 아프게 흘러가고 나서 그 길고 어두웠던 6·25 체제의 주술에서 하나 둘 풀려나면서, 이제서야 우리는 아무런 가식 없이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이번 8·15를 지나면서 우리 민족이 진정한 화해와 포옹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섣부른 낙관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역사가 일러주듯 아직도 마음을 놓지 않고 긴장하며 넘어야 할 ‘아리랑 고개’가 적지 않다. 적지 않은 우회와 또 다른 어려움도 마주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낙관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이야말로 6·15 공동선언이 가져온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광복 60년을 기념해 열린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은 그런 점에서 ‘화해와 협력의 기념비적인 축전’이었다. 정도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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