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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가까이 이뤄진 인터뷰에서 강철환씨는 시종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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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미국 유력인사들 만나고 온 탈북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씨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는 곳은 늘 미국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곳에는 초청받아 간 북한이탈주민이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인 강철환씨에 대한 초청이 훨씬 활발하다.
미국에서 강씨는 갑자기 명사가 됐다. 최근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내로라하는 유력인사를 잇달아 만났다. 미국정부에 중동정책을 자문하는 나탄 샤란스키 전 이스라엘 이주담당 장관도 만났다.
그가 유명세를 탄 건 그의 책 <평양의 어항>을 부시 대통령이 출간 5년 만에 읽고 지난 6월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하면서부터다. 지난 7월 중순 미국 프리덤하우스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대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며칠 전 돌아온 그를 17일 만났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대화로만 해결될 수 없는 나라로 보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탈북자 수기를 읽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분노에 차 있다. 미국은 핵문제뿐 아니라 인권문제도 북한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 같다.”
“부시는 북한을 대화로만 해결될 수 없는 나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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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백악관에서 미국 부시 대통령과 만나고 있는 강철환씨.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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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에서 유력인사들을 만나고 온 강씨의 소감이다. 그는 “물론 미국이 북한을 동구권 식으로 개편하려는 등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겠지만 그런 자그마한 의도가 있다고 해서 미국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 인권문제를 아예 제기하지도 않는 한국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샤란스키 전 이스라엘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핵문제와 연계해, 북한이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지원도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씨는 <한겨레>를 만나서도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다.
“인권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북한에 이를 인식시켜야 한다. 이것이 평화적인 방식이고 올바른 지적이므로, 이 때문에 남북관계가 냉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을 도와주기만 하면 자유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니다. 압력밖에 없다.”
그는 “북한은 경제 사정이 나빠서 외국 원조가 없으면 흔들린다. 지원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지원에 앞서 북한 인민들의 편에 서서 정권을 압박하는 조건을 내걸자는 것”이라며 “정부가 김정일 정권에 대놓고 물러나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북한 인민들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북한에 대고 올바른 지적만 하면 관계냉각은 없을 거라는 논리는 매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경제 풀리면 인권 풀리나?…핵무기 자체가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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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회의에서 강철환씨가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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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이 재개된 가운데 북핵문제는 한반도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뜨거운 현안이다. 남한 지식인 사회에서는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강씨는 “북한 최대 인권문제는 식량난이고, 식량난의 원인인 (경제봉쇄에 따른) 경제난을 풀려면 외부와의 갈등요인인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경제가 풀리면 인권문제가 풀리나? 박정희 때 고속성장했지만, 인권문제가 풀렸나? 북한 주민은 개나 돼지가 아니다. 북한 주민은 자유가 없다. 굶주림의 근본 원인은 수령독재다. 인간의 재앙인 것이다. 또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모순, 체제 비효율성의 문제이지 외부와의 갈등이 원인이 아니다.”
강씨는 “핵무기 자체가 북한이고, 핵무기 없는 북한은 존재할 수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며 “핵문제를 고리로 인권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핵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고, 핵문제가 풀린다고 인권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결국 강씨는 어떤 주장을 펼치든간에,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려야만 북한의 인권문제도, 핵문제도 풀릴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강씨는 북한 인권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꼽았고, 북한 체제에 대한 그의 불신은 깊었다.
“남쪽 돈으로 김정일 체제 유지”
“김정일 정권은 인민들의 자유화를 바라지 않는다. 이제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김정일은 외부의 지원을 받아서 전체주의 시스템을 버텨보려고만 한다. 지금까지 퍼다준 쌀이 얼마인가? 김정일은 변화할 의지가 없다. 자기 가족이 반세기 넘게 통치했으면 물러날 때도 됐다. 인민의 나라를 개인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번에 북한대표들이 현충원을 참배했는데, 이것도 북한 지원을 주장하는 남쪽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보자면, 그가 ‘햇볕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지난달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계승하고 있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가장 참담하게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성과가 없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지난 8년동안의 대북지원은 북한 인민의 생활향상이 아니라 붕괴된 북한 체제 재건에 이용됐다. 또 98년 이후 북한이 개방을 해왔나? 북한에 돈만 보내는 게 남북 교류였다.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었지만, 준비된 요원을 만나고 돈만 내는 게 교류가 아니다. 남쪽에서 돈을 뜯어 북한 체제를 유지하려는 얄팍한 술책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는 위험하다’는 기조의 햇볕정책을 부인하기에, 강씨가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우려하지 않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김정일 체제 갑자기 무너져도 별일 없을 것”
“스탈린이 사망한 뒤 러시아에 재앙이 오지 않았다. 전체주의가 변화하면서 마오쩌둥 사망 뒤 덩샤오핑이라는 지도자가 나왔다. 절대권력이 붕괴되면서 더 나은 세상과 지도자가 온다. 북한은 그 자체가 재앙이다. 북한은 지금 붕괴될 것도 없다. 김정일 체제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다. 김정일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정일이 망하면 혼란은 조금 오겠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진통일 뿐이다.”
결국 그의 주장은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려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고, 중국식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소련이든 동구권이든 경제적 문제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었다. 사회주의 경제는 붕괴하기 마련이다. 북한도 내부개혁 없이 외부 원조만으로 살 수 없다. 압박이 필요하다. 농업개혁, 경제개혁, 인권개선 등을 조건으로 내세워 압박해야 한다.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개혁·개방 의지가 없는 한 사막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체제를 변화시켜서 북한 인민들이 같이 살게 해야 한다.”
강씨의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미국은 반드시 필요한 나라다. 그는 “한국정부가 잘못하고 있고, 한반도가 외세에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미국은 큰 희망”이라며 “북한의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고, 미국의 관심도 크다”고 말했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통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남이든 북이든 민주국가인가 아닌가가 중요하고, 북한이 민주화·자유화되면 그 자체가 통일”이라고 말했다. 또 “시스템과 생각이 다른데, 북한이 민주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은 어렵다”며 “통일보다 민주화가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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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환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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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누리고 있는 자신의 행복이 북녘 땅에서도 펼쳐지기를 강철환씨는 소망한다고 밝혔다. 강창광 기자chan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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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환씨는 지난 1968년 평양시 중구역에서 태어났다. 조총련 교토지부 상공회 회장을 지낸 할아버지가 민족반역죄로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간 뒤, 9살 때인 77년부터 87년까지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생활했다.
92년 남한방송을 듣고 정권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재수감될 위기에 처하자 친구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해, 6개월만에 남쪽에 들어왔다.
이후 한양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들어가 3년여 근무한 뒤, 2000년 가을부터 <조선일보> 편집국 통한문제연구소 기자로 일하고 있다. 조선일보 섹션인 ‘NK리포트’ 등을 통해 북한 관련 기사를 써왔다.
2003년 6월에는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 인권단체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를 창립해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촉구해왔다. 지난 1월 전 북한 축구대표팀 윤명찬 감독의 장녀와 결혼했다.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가혹한 노동과 굶주림 등의 체험을 담은 ‘평양의 어항’이라는 책은 부시 대통령 등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2002년에는 이 책이 미국 LA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베스트 100’에 뽑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03년 ‘수용소의 노래’(시대정신)란 제목으로 출판됐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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