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왼쪽)과 정세현 8·15 민족대축전 남쪽준비위 상임고문이 17일 오후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8·15 대축전의 의미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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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 정세현 남쪽준비위 상임고문
‘북 파격 행보’ 아픈역사 공유 진정한 화해 길터 잠시 분단의 아픔을 잊고, 흥분된 심정으로 지켜본 8·15 대축전이었다. 이제 8·15는 남북 모두에게 해방의 공통된 기억으로 출발해, 말 그대로 ‘민족의 대축전’으로 함께 기리는 날이 됐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말처럼 남북은 이번 8·15를 계기로 ‘역사의 공유’를 시작했다. 북쪽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에서 시작해, 민족의 수난 현장인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변하는 백범기념관으로 이어진 남북 당국간 공동행사가 이를 상징한다. 이는 북쪽 한 대표의 말처럼 ‘북남관계 발전을 제동해 온 체제대결, 이념대결의 구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쪽 대표단이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출발하기 전인 17일 오후, 정동영 장관과 함께 ‘현장’을 지킨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전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과 정세현 남쪽준비위 상임고문(전 통일부장관)을 워커힐 호텔에서 만나 8·15의 3박4일을 정리해봤다. 통일은 미래형이 아닌 현재진행형 실감
경제공동체 건설위해 군비통제 나설때
남북정상 핵문제 치워두고 빨리 만나야 사회=해방 60돌을 맞아 열린 8·15 민족대축전이 남긴 성과와 의미를 평가해본다면... 정세현 상임고문(이하 정)=이번 행사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남북 민간과 당국이 함께 행사를 치르게 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60년 전 해방은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미완의 독립이었다. 통일은 제2의,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다. 남북은 지난 60년 동안 자기식대로 통일을 각자 추구해왔다. 이제는 같은 방향에서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아주 세부적인 행동계획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 이번 행사의 의의다. 임동원 이사장(이하 임)=말씀대로 이번 8·15 민족대축전은 남·북·해외 동포들, 남과 북의 당국이 함께 민족문제와 통일문제를 서로 모여서 논의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전환하고, 신뢰와 단합을 추구하고 있다. 6·15 시대에 들어서서 공동선언을 더욱 철저히 준수하고 이행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촉진하자고 남·북·해외가 모여 다짐했다는 데 이번 행사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6·15 민족통일대축전과 이번 행사는 서로 연관성이 있는, 하나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통일은 먼 훗날 이룰 수 있는 목표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남·북·해외 동포들 모두 통일은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사회=북쪽 대표단은 잇딴 파격행보를 보였고 국립현충원 방문이 대표적인데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습니까? 정=새로운 통일운동을 해나가기 위해선 냉전시대 고착됐던 여러가지 적대의식의 산물을 털어내고 가야 한다. 전쟁과 관련해 초보적인 수준에서라도 정리가 돼야 하는데, 그게 바로 북쪽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방문이었다. 북쪽에서 먼저 현충원 방문을 제안했고, 도착하던 날 바로 그곳부터 들러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물론 ‘참배’냐 ‘방문’이냐를 놓고 용어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립 현충원장의 구령에 맞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게 묵념을 했다. 결국 우리 민족사에 있어 분단과 관련된 가장 아픈 대목에 대해 북쪽이 일단 열린 자세로 접근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큰 의미가 있었고, 이건 좋게 봐줘야 한다. 노림수가 있다든지, 진정성이 의심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새로운 역사는 원래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과거의 꼬리이냐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냐는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전향적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다. 백범기념관 방문도 현충원 방문과 맥을 같이 한다. 통일을 위해서 남북이 갖춰야 할 의식 면에서 새로운 토대를 형성해 나가는 출발점이 이번 8·15 행사에서 열렸다. 상당히 높이 평가돼야 할 사건이고,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다. 북 ‘신라’ 껴안은 경우 방문
아름다운 우리유산 감탄
남북관계 정신적 자양분 될 것 임=(북쪽 대표단의 현충원 방문은)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민족상잔을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로 가는 큰 걸음을 내딛는 상징이었다. 북쪽 대표단은 또 김구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백범기념관 전시관도 방문했다. 그곳에는 김구 선생이 주도한 임시정부 활동의 모든 것이 잘 정리돼 있다. 남쪽은 상해임시정부를 북쪽은 항일무장투쟁을, 남북 서로가 늘 반쪽만 평가해 오지 않았나. 이번에 북쪽 대표단이 백범기념관을 진지하게 참관하한 것은, 서로 역사를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방문도 마찬가지다. 항일투쟁을 하다 옥중에서 고생하다 스러져간 순국선열의 발자취를 함께 보면서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것도 중요하다. 과거를 공유해야 미래도 공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회=임 이사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 북쪽이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요청해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는 걸로 아는데.... 임=그렇다.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하지 않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 하기 어렵다는 게 북쪽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정서로 볼 때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결국 북쪽이 양보를 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당시 서울에 가면 국립묘지(현충원)를 참배하고, 자신이 존경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도 둘러보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과거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쪽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방문을 바라보면서 그 때 생각이 되살아 났다. 사회=경주 방문은 어땠습니까? 임=북쪽 대표단이 경주 방문을 원했다. 신라 고도에 남아있는 모든 역사 유적들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참관했다. 밤에 도착해 안압지·첨성대·천마총을 밤늦도록 둘러봤다. 또 이튿날 아침엔 토함산과 석굴암, 불국사를 둘어보고 사찰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역사 유물과 문화 유산에 대해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였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굳이 따지자면 남쪽은 신라의 역사를, 북쪽은 고구려의 역사를 중시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정=예전엔 저항감 같은 것이 있었다. 지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 때 경주에서 문화 엑스포가 열렸는데, 북쪽 대표단은 경주 방문을 꺼려했었다. 그런 걸 다 뛰어넘은 것이다. 정치적 의미 부여보다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어떻게 보면 남북이 손을 잡고 세계로 뻗어가는 데 문화적 자산이다. 북쪽 대표단도 그런 뜻에서 경주를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1300년을 훌쩍 뛰어넘어 경주를 둘러보러 간 것은 남쪽과 문화 인프라를 공유하겠다는 북쪽의 의지로 봐야 한다. 거기엔 아무런 정치적 복선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남북관계에서 정치적인 앙금을 걷어내고, 순수한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 발전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나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는 과거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같이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북쪽의 의도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향후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상당히 좋은 정신적 자양분이 될 것이다. 임=북쪽 대표단이 공식적으로 경주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 9월 남쪽을 찾은 북쪽 대표단이 울산 산업단지를 방문할 때 불국사만 잠시 스쳐 지나간 일은 있다. 이번엔 북쪽에서 꼭 가고 싶어했다. 경주에 밤 9시에 도착해, 이튿날 아침 9시30분에 서울로 돌아왔다. 서너시간 밖에 못잤는데 밤늦게까지 둘러보고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보고싶은 곳을 다 둘러볼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사회=이번 행사를 계기로 앞으로 문화교류 분야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을지 않을까요? 정=지금까지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과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남북 교류·협력사업이 진행됐다. 농업협력위원회도 구성됐고, 보건·의료분야는 적십자사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협력 분야에서도 앞으로 교류가 확대돼 갈 것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경주 방문은 북쪽에서도 뭔가 방향을 잡으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임=경주를 방문했을 때 개성과 경주 사이의 협력 문제가 상당히 좋은 분위기 속에서 논의됐다. 북쪽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려는 모습이었다. 경주에서 세계 역사 도시 선정문제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가 10월에 열리는 데, 일본의 경우 나라가 될 것이라는 얘기인데 한반도에서는 경주와 개성이 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기로 했으며, 문화재관리청 쪽에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사회=이번 행사에서 남쪽은 ‘평화체제’를 강조한 반면, 북쪽은 유난히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했는데 우리민족끼리의 의미도 새롭게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임=‘우리민족끼리’는 6·15 정상회담 때부터 나왔고, 남북 공동선언에도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남쪽은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뜻이었고, 북쪽에서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도 잘못된 얘기가 아니다. 선열들의 투쟁이 해방에 기여하긴 했지만, 외세에 의해 해방돼 국토가 분단되고 동족상잔을 겪었다. 휴전과 냉전이 이어진 것도 우리 민족의 결정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좌우된 것이다. 앞으로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남북간 정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쪽은 외세에 의한 전쟁 가능성에 대해 남과 북이 함께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안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남·북·해외 동포 간에 전쟁을 반대하고 통일을 이루자는 공감대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통일은 누가 갖다주는 것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외세의 영향 받지 않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자주적으로 우리 민족끼리’ 통일해 나가자고 했을 때, 그 ‘자주’가 배타적인 것이 돼선 안되고 ‘열린 자주’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주변국가의 지지를 받아 주도적으로 이뤄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반드시 열린 자세여야 한다. 북쪽은 자주와 관련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는데,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침략을 많이 받은 역사적 경험에 비춰 주한미군은 통일 뒤에도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균형자·안정자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한미군은 통일 뒤에도 한반도에 주둔하는 게 민족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고, 당시 김정일 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 북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둔하는 것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우리민족끼리’는 배타적인 게 아니다. 정=‘우리민족끼리’란 말에 대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 거부감 있는 것 같다. 반미를 위한 것이고, 미군철수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너무 그렇게 좁은 뜻에서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지극히 당연한 얘기 아니냐. 외부의 힘을 빌어 통일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을 만들어 가자는 주장이다. 의존하지 말자는 것을 두고 ‘한미동맹 하지 말자, 미군 나가라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곡해할 필요는 없다. 통일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자는 것이지, 배타적이고 배외적인 주장은 아니다. 또 남북 협력과 상호 화해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끼리란 말 속에 남북의 ‘유무상통’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북쪽으로선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해 협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슬로건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북이 남쪽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지원을 많이 받아야 하는 입장임에 비춰볼 때, 스스로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우리민족끼리’란 말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국 지지 받아 통일 주도하자는
‘우리 민족끼리’ 란 말 곡해 말자 사회=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북쪽 대표단이 이번 행사를 높이 평가했다. 이번 행사를 보면 서로가 대회를 치르는 자세도 상당히 성숙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남쪽에 내려와 대형행사를 할 때 북쪽 대표단은 상당히 협조적이다. 쓸데없는 사건·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가령 ‘북쪽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행동거지에 대해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자제’시키도록 하려고 한다. 남북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에 ‘역풍’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면서 조심한다. 이번에도 그런 점에서 과거보다 훨씬 더 성숙된 자세로 행동했다고 본다. 접촉과 왕래라는 게 서로를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변화의 정도로 봐서 북이 훨씬 더 바람직한 쪽으로 바뀐 것 같다. 서로에 대해 익숙해지고 많은 걸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뭔가 딱딱하고 자극적이고, 가끔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불안하고, 자신들이 열세에 있다고 생각해 밀리지 않기 위해 공세적으로 나왔던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번 행사기간 동안엔 매우 편안해보였다.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지난 5년 동안 북쪽 사람들이 남한 지역에서 처신이나 언행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히 큰 변화다. 임=정말 많이 부드러워졌다. 비전투적이고, 비도발적이었다. 금강산 관광객을 빼고도 남북 왕래자가 10만명을 넘어섰고, 이산가족 상봉도 늘면서 변화가 생겼다. 앞으로도 접촉과 교류를 많이 하는 게 통일을 이뤄가는 지름길이란 생각이다. 사회=2001년 8·15 행사 때는 이른바 ‘방명록 사건’이 터지면서 임 이사장은 통일부장관에서 물러나고 이른바 ‘남남갈등’의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그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의 느낌이 듭니다. 임=그때 남쪽에서 300여명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는데, 흥분과 감격을 자제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돌출행동도 나오게 됐는데, 일부 보수언론에서 이를 확대 해석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 생각하면 불가피한 성장통 같은 게 아니었나 싶다. 앞으로는 더욱 나아질 것으로 본다. 정=그 사건 이후 오히려 북이 더 조심하는 분위기였고 더 협조적이 됐다. 사회=올 상반기 남북관계에 중요한 현안들이 많다. 이번 8·15 행사가 좋은 토양이 돼 앞으로 활기찬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는데 앞으로 과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임=6·15 정상회담 이후 지난 5년 동안 남북은 금강산 관광 활성화와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사업과 이산가족 상봉, 비무장지대에서 군사협력 등을 5대 중점사업으로 추진해왔다. 참여정부는 새로운 사업 시작했다기 보다는 이를 계승해 발전시켜왔다. 이들 5대사업은 끝난 게 아니라 겨우 시작 단계이므로, 앞으로 계속 확대·발전시켜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정치·군사적 신뢰 조성을 통한 군비통제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이제는 시작을 해야 한다. 또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본격적인 노력에 나가야. 3대 경협사업으로 시작은 한 상태지만, 앞으로는 철도 현대화와 전력·항만 개보수, 통신 등 각종 인프라와 관련해 협력함으로써 하나의 경제 공동체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두가지가 크게 볼 때 우리가 해나가야 할 과제다. 이런 것들을 해나가면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평화체제 구축이 선행하기는 어렵다. 이런 과정 자체가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과정인 셈이다. 역시 문제는 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로 모아진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다. 북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 국제적인 사찰까지 받은 뒤에는 인정될 수밖에 없는 국제법적 권리 아닌가. 미국은 이에 대해 유보적 자세 보이고 있는데, 이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쉽게 낙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핵 문제가 또 다시 나빠지더라도 남북관계는 크게 영향을 받지 말고, 오히려 남북관계가 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정=지난 5년은 경협을 중심으로 남북관계가 발전해왔다면, 이제는 교류협력의 제도화를 통해 경제공동체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이럴 때 남북이 거둘 수 있는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군사분야의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 경협 규모에 걸맞는 군사부분의 긴장완화와 관계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해방 60년, 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는 6·15 시대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이번 8·15 민족대축전을 통해 남북관계가 한단계 올라서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면, 이에 걸맞는 군사분야의 긴장완화 조치가 나와야 한다. 장성급 군사회담과 국방장관 회담 등을 통해 이와 관련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미국이 경직된 자세를 보이는 것도 문제지만, 북도 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좀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어. 북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협상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하려면 북도 조금 더 신축성 있게 나와야 한다. 그래야 남북 사이에서 군사분야 긴장완화 조치도 나올 수 있고, 경협에서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사회=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2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임=정상회담은 언제든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 문제 해결은 몇 년이 걸릴 지 모른다. 완전히 해결하기 까지는 10여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어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상당 기간 열리기 어려울 것이다. 덧붙여 북쪽에선 장소 문제도 예민한 문제일테데, 회담 장소 역시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만나서 무엇을 논의하느냐가 문제지 장소는 부차적인 문제다. 이런 몇가지 문제에서 정부가 생각을 달리해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정상회담은 빨리하면 할 수록 좋다 정=핵 문제 해결의 출구로 정상회담 상정하면 성사가 어렵다. 물론 정상회담을 핵 문제와 완전히 별개로 개최하기는 어렵다. 정상회담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결단을 촉구할 수도 있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북쪽의 전향적인 자세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핵 문제 해결을 정상회담의 조건화하는 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핵 문제만 불거지지 않았다면 1차 정상회담에선 교류·협력 문제를 주로 합의했으니, 정치·군사 문제를 협의하는 출발점으로 제2차 정상회담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2차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군사 문제를 초보적으로 논의하면서, 남북협력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아 핵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사회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정리 정인환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inhwa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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