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6자 회담 2단계 회의의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15일 오전 숙소인 북경반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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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주되 엄격한 조건 달자는 구상인듯
5주 만에 속개된 6자 회담이 경수로 문제로 멈춰 서 있다. 북한의 경수로 요구가 공식화한 상황에서, 미국 쪽 6자 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16일 경수로를 ‘논의를 시작도 못할 문제(넌스타터)’라고 못박았다. 양쪽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이 먼저 유연성을 보였다. 북한에 경수로를 가질 ‘기회의 창’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송민순 수석대표는 “북한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해, 북한의 요구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과는 다른 자세다. 그러나 그는 합의문에 ‘경수로’라는 말을 포함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했다. 미국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과 미국을 중재할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답을 못했다. 북-미를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이 있다’고만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핵의 평화적 이용을 두고도 ‘틈새’를 보였다. 게다가 우리의 중대 제안은 경수로가 안 된다고 해서 내놓은 것이다. 나서겠다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론 송 수석대표가 말하는 ‘기회의 창’이 북한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는 “우리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기초해 각측에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가 한걸음씩 후퇴해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또 ‘기회의 창’은 타결에 기초가 될 ‘개념’이라고 했다. 아직은 제안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개념’은 북한에 경수로라는 ‘기회의 창’을 주되, 미국과 일본 등이 만족할 수 있는 엄격한 조건 등을 담은 절차, 방법, 순서를 마련하자는 구상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대 제안을 통해 4차 6자 회담의 개최와 진행에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했다. 그러나 북한의 경수로 요구는 이런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게다가 미국은 중대 제안을 북한의 경수로 요구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해, 경수로와 중대 제안을 맞세웠다.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커 보이지 않는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평화적 핵 선언권 권리 주고 모든 북핵 포기약속 받아야
전문가들 해법은 북한의 경수로 요구의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의 확실한 담보를 받고 싶은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에너지 문제를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에서 ‘부시 행정부 외에 미국 의회의 안전보장 담보를 요구한 것’이라는 분석까지 평가가 조금씩 엇갈렸다. 또 경수로를 요구한 북한 쪽의 무리한 자세보다 ‘선언적 수준의 평화적 핵 이용권리’에 대해 명확한 뜻을 밝히지 않고 있는 미국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북, 왜 경수로 고수하나?=권만학 경희대 교수(국제관계학과)는 15일 북한의 경수로 요구에 대해 “여러 포석을 깐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협상용”이라고 평했다. 만약 북이 핵무기를 포기한다고 전략적 결단을 했다면, 경수로를 내걸어 ‘대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남쪽이 제안한) 직접 송전 이외에, 예컨대 화력발전소 같은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얻으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좀더 확실하게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정세현 민화협 상임의장은 “경수로는 평화적 핵 에너지 이용의 대표적 사례”라며 “북은 미국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면, 미국에 타결 의지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은 경수로 요구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북이 미국의 뭔가에 불만이 있다는 얘긴데, 미국의 입장을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주권국의 당연한 평화적 핵 이용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태도가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해법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선언적 수준에서 북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인정하고, 북은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식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선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리 행사는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으며, 핵 시설을 해체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한 뒤에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다만, 정세현 상임의장은 “합의에 이르려면 경수로 문제에 대한 좀더 명확한 담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자 회담의 공식 발표문에서는 북의 ‘모든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 포기와 평화적 핵 이용권리를 명기하고, 이면합의서를 통해 북이 의무를 이행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면 국제사회가 (신포든 다른 곳이든) 경수로 건설을 전향적으로 검토한다고 보장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성렬 국제조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와 핵문제에 합의했으나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의 비준 거부로 합의가 무산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며 “합의가 이뤄지려면 미국 의회의 보장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 박 교수는 “북한이 경수로 문제를 최종 요구라고 고수하면 중대 제안을 포함해 한국의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고, 한국과 중국이 그동안 해온 중재의 공간이 매우 위축될 수밖에 없어 한반도 평화정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제훈 이용인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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