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04 20:08 수정 : 2005.10.05 12:00

지난 1일 저녁 평양 5·1경기장에서 연인원 10만여명이 참여해 열린 공연 후반부에 남북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평양/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화려한 교예·흥겨운 연주 ‘강성한 나라’ 열망 ‘꿈틀’


<한겨레>는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2박3일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의 ‘광복 60년 기념 평양 문화유적 참관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이번 행사에는 동명왕릉, 보현사 등의 문화유산 관람과 만경대, 개선문, 주체사상탑 등 북한이 내세우는 주요 시설 방문도 있었지만, 핵심은 북한이 자랑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관람에 있었다. 취재진과 동행한 북한예술 전문가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의 관람기를 싣는다.

지난 1일 저녁 공연이 펼쳐진 평양 5·1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이 손을 흔들며 남쪽 참관단을 환영하고 있다. 평양/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인천공항에서 평양공항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미 국내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작고 낡은 고려항공을 탑승할 때의 불안한 마음은 부드러운 이착륙과 승무원들의 상큼한 표정 속에 말끔히 사라지고, 첫방문의 감흥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몸은 이미 평양으로 옮겨져 있었다. 평양공항에도 ‘아리랑 공연 기념 특별판매’라고 써붙인 ‘매대’(노점 판매대)를 제외하면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특별한 분위기는 없었다.

방문 첫날인 1일 저녁 7시30분쯤 평양 모란봉 아래쪽 능라도에 있는 5월1일경기장에 도착했다. 이 경기장은 지난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개·폐막식이 열렸던 곳으로, 15만석 규모의 대형 운동장이라고 한다. 그림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경기장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보다 체제선전 줄어


2등석 100달러 짜리 입장권을 받아들고 공연 시작 15분전쯤 경기장 본부석 쪽으로 입장하니 이미 대부분의 관객이 들어와 있었다. 2등석에서도 ‘주석단’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 배경대(카드섹션을 하는 곳)에서는 카드섹션을 하는 학생들이 각 학교가 속한 구역 이름을 형상하면서 마치 경주를 하듯이 ‘앞풀이’를 했다. ‘전체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전체를 위해’라는 집단주의의 실체를 시작부터 온 몸으로 느끼게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10대 학생들의 발랄한 장난끼는 감추어지지 않았다.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저녁 8시에 시작해서 9시20분까지 전 4장 13경의 작품이 하나의 장면처럼 빠르게 이어져 흘렀다. 북한 공연예술계가 자랑하는 흐름식 무대전환이 <아리랑> 공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실내극장에서 가극을 연출하듯이 대형 스타디움 공연을 펼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극적 흐름이 끊기지 않은채 다수 출연자들의 등·퇴장과 무대장치의 빠른 전환을 가능했던 것은 실내무대에서 막의 역할을 담당하는 ‘막깃발’의 탁월한 사용에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수십년간 축적된 북한 공연예술의 농익은 기술이 빛나는 대목이 아니었나 싶다.

공연의 시작 부분에서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주제곡으로 사용되고, 익숙한 <두만강 푸른 물에>라는 가요곡이 등장해 과연 북한 작품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제1장 2경 ‘조선의 별’ 이후부터는 북한 역사에 대한 자랑과 ‘선군8경’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가득 채워져, 남한 관객으로서는 정서적 공감대가 약화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었다.

화려한 공중 교예나 박력 있는 취주악단의 연주, 아름다운 율동이나 활력 있는 체조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스펙타클이 공연 내내 펼쳐졌다. 그럼에도 내용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 그 감흥이 줄어드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2000년의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의 직설적 체제선전에 비할 때 민족적 상징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작품의 표현방식이 변화한 것은, <아리랑> 공연이 보여 준 미래를 향한 작은 문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 안으로 좀더 들어가 보면 민족적 색채는 ‘북한식 산업화’ 열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리랑> 공연의 제4장 ‘통일아리랑’이나 종장 ‘강성부흥아리랑’은 북한 사회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집약해 표현하고 있다. 이 장은 평화와 통일, 그리고 자주를 나타내는 구호가 흘러 넘치지만, 무대세트로 등장하는 거대한 지구의는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북한 사회의 열망을 소리 없이 표현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제3장 4경 ‘흥하는 내 나라’나 5경 ‘더 높이 더 빨리’에서 나타나는 현대화(북한식 산업화)에 대한 열망과 연결되면서 현재의 북한 사회가 과거의 체제 일변도에서 민족 또는 산업화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 ‘강성한 나라’를 꿈꾸고 있음을 간접적이고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예술 망라 ‘북 21C 걸작’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북한이 ‘21세기의 대걸작’으로 내세우는 대표작이다. 공연 출연자들만 10만명에 이르는 규모도 그렇지만, 음악에서 무용, 연극, 미술, 영상, 교예, 체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예술 분야가 총동원되어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현단계 북한 공연예술계의 창작 역량을 국가적으로 결집한 결정체가 곧 <아리랑>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개별성과 다양성을 기본 특징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예술을 기준으로 보면 그러한 공연 형식은 성립할 수도 없고, 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집단주의적 가치를 신봉하고, 또 국가를 중심으로 예술사업이 펼쳐지는 북한 체제의 특성에서 그러한 대규모의 공연형식은 성립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북한 예술계가 보여 줄 수 있는 성과의 최대치에 해당하며, 동시에 21세기 북한 예술계의 현주소를 집약하여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3장1경 ‘울림폭포’만 새구성… 나머지는 세부표현만 수정

2002년과 달라진 점

북한에서는 이번 <아리랑> 공연을 2002년 <아리랑>의 ‘재형상’ 공연이라고 밝히고 있다. ‘재형상’이란 작품의 줄기는 바꾸지 않은 조건에서 일부 장면이나 세부 표현을 수정하는 정도의 개작을 말하는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장면 전체를 들어내고 새롭게 구성한 부분은 제3장 제1경 ‘울림폭포’ 부분 정도다. 그 외에는 서장 ‘아리랑’의 영상 화면에 고구려 성벽과 대동문의 이미지를 새롭게 끼워넣거나, 일부 장과 경의 편성과 제목을 수정한 것이 전부다. 2002년이라 하면 이른바 ‘7·1 경제관리 개선조처’로 알려진 북한 사회 변화의 분기점이 되는 해다. 그러한 변화의 흐름이 2005년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이번 공연에서 읽을 수 있었다.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두 인민배우 인터뷰

“두개 작품서 주연…지도에도 참가”

피바다가극단 조문규씨

아리랑 출연 조문규
피바닥가극단 인민배우 조문규(35)씨는 16년 동안 공연을 해온 전문 무용수이다. 무용으로 다져진 날씬한 몸매가 특징이며, 이번 <아리랑> 공연의 사실상 남자 주연 배우 역할을 했다.

-어디에 소속돼 있는가?

=피바다가극단 무용강사이다. 거기서 형상 지도를 맡아하고 있다.

-오늘은 아리랑에 직접 출연한 것 아닌가?

=이번 <아리랑>에선 두 개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다. 1장의 ‘조선의 별’에서 두만강을 넘어온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나오는데, 거기 출연하는 삼인조 가운데 꼭대기에 올라서서 손 흔드는 사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로 3장의 울림폭포 장면에서 주인공인 목동 배역을 맡아서 하고 있다. 지난번 2002년 <아리랑> 때는 ‘조선의 별’ 주인공 한 장면만 했다.

-출연도 하면서 지도에도 참가했나?

=여러 대오들의 지도도 함께 하고 있다.

-피바다가극단에 들어가는 자격은?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했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11살부터 9년을 공부하고 그 다음에 피바다가극단에 들어갔다.


“남과 이런 만남 자주 하다보면…”

여성취주악단 지휘 리혜경씨

아리랑 출연 리혜경
<아리랑> 공연을 막 마치고 돌아온 리혜경(25) 여성취주악단 주지휘수는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대규모 취주악단은 그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지휘봉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응원단으로 남쪽을 방문해, 비교적 낯이 익었다.

-이번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1장 ‘아리랑 민족’의 취주악단 공연에서 주지휘수를 맡았다. 주지휘수는 봉을 갖고 율동을 하며 취주악단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원래 소속은 어디인가?

=여성 취주악단이 따로 있다. 거기서 주지휘수 역할을 하고 있다.

-취주악단이 무용처럼 판을 구성하며 움직이는 게 인상적이다.

=연주하는 기술 그룹이 있고, 체조 창작가, 안무가가 따로 있다.

-2002년 <아리랑>에도 출연했나?

=그때도 주지휘수 역할을 했다.

-남쪽 참관단을 맞은 소감은?

=같은 민족을 만나 반갑다. 저희도 남쪽에 두차례 내려간 것처럼 이번엔 남쪽 사람들이 오지 않았나. 이런 만남이 자주 이루어지고, 그렇게 올라가고 내려오면 우리나라 통일도 금방 될 것 같다.

이용인 기자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