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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5 22:10 수정 : 2005.10.05 22:10

4일 오전 중앙대 김누리 교수(왼쪽 두번째) 연구실에서 김 교수와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의 배기정, 안성찬, 이노은 연구원(왼쪽부터)이 독일통일 15주년 기념 연쇄인터뷰를 결산하는 좌담을 갖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통일독일 15년] 통일 주역에게 듣는다 ④ 결산 좌담


독일통일 15주년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기획의 모태가 된 <통일 이후 동서독 사회문화 갈등연구> 라는 중앙대학교 한독문화연구소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제 인터뷰에 나선 연구자들과 이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은 김누리 교수(중앙대 독문학)가 끝나지 않은 독일 통일의 문제와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통일을 시야에 넣고 마무리 좌담을 했다. 좌담은 4일 오전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1시간 30여분에 걸쳐 진행됐다.

동독에 대한 무시·부정이 독일사회 갈등 원인
공통의 가치관·열린 자세가 통일 준비 첫걸음
동방정책 교훈삼아 자주 외교역량 더 넓혀야

김누리=3번에 걸쳐 실린 인터뷰에서 ‘통일의 주역들’이 15년이 지난 지금 독일 통일을 어떻게 되돌아보는지를 살펴보았다. 인터뷰를 하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노은= 볼프강 티어제 연방 하원의장의 균형잡힌 시각과 열정적인 태도는 강한 신뢰감을 주었다. 그는 모든 정책에서 동독인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는데 특히 동독뿐 아니라 서독도 함께 변해야한다는 지적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배기정= 동방정책을 만들었던 에곤 바와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우정이 인상 깊었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평생에 걸친 우정이 가능하다는 것, 또 이런 우정에서 역사가 탄생한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또 사민당의 동방정책이 정권교체 이후에도 계승되어 기민당 집권기에 통일이라는 결실을 맺게된 역사적 사실에서 옳은 정책이라면 정파의 이해를 넘어 일관되게 추진하는 독일정치의 성숙도를 보았다.

동독인 절반이상 옜동독 향수

=두사람이 통일과 관련해서 동서독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반면 폴커 브라운은 시인으로서 통일의 좀더 본질적인 문제를 짚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안성찬= 브라운은 시인이기 때문에 현실정치에 대한 발언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임에도 지난 몇 년간 일체의 인터뷰를 거부해왔다. 이번 인터뷰도 어렵게 성사되었다. 그는 민중의 시각에서 통일과정의 문제, 독일 역사의 문제, 동서독 민중들의 상황을 진단했다.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처지를 대변하려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이번 기획에는 세 명의 인터뷰만 실렸지만,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 연구팀이 인터뷰한 인사는 모두 스무 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들 모두가 독일 현대사의 일부라할 만한 중요한 인물들이다. 세 사람 이외의 인터뷰에서 의미 있는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자연과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서, 통일 이후 녹색당 대통령 후보로 추천되었던 옌스 라이히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동독 시민운동의 영욕을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동독의 시민운동가들은 현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동독의 개혁을 원했지만, 통일 때문에 그 꿈은 좌절되었다. 라이히는 동독 시민운동가들은 동독 민중들이 기존체제의 성문을 파괴하는데 필요한 말뚝같은 존재라고 했다. 성문은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아 금방 부서졌지만, 민중들은 말뚝을 내던지고 성문 안으로 달려들어갔다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는 그의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남북 함께 변하게 상대 장점 인정해야”
=요아힘 가욱(초대 슈타지 문서관리청장)을 꼭 소개하고 싶다. 그는 동독의 스탈린주의 과거청산을 둘러싼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가욱은 엄청난 정치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슈타지 (옛동독 비밀경찰) 비밀문서를 지켜냈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편에서 문서 공개를 관철시켰다.

=슈타지와 관련해서, 센세이셔널리즘에 젖어있는 서독의 보수언론들은 슈타지 문서를 이용해 동독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흠집내는 방식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감소시키려 하였다.

=헬무트 콜 총리처럼 권력있는 자들의 문서는 은폐됐으며, 이 과정에서 동독인들은 엄청난 심리적 상처를 입었다.

=동독 민주혁명의 성지가 된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크리스티안 퓌러 목사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독일의 뿌리 깊은 기독교 사회주의의 전통을 체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것 같다. “예수야말로 최초의 사회주의자다”, “통일은 세계관의 독재에서 자본의 독재로 넘어온 과정에 불과하다”라는 그의 인식은 현실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거부하는 기독교 사회주의자의 이상주의적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 기획을 하면서 느낀 건 통일에 대한 동서독의 인식차였던 것 같은데…

=서독인들은 대체로 통일문제에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세금을 조금 더 내는 것 이외에는 생활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동독인들은 생활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어 엄청난 충격을 느끼고 있다. 이 무관심과 충격 사이의 정서적 거리가 동·서독인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자연스레 동서독의 사회문화 갈등 문제로 넘어왔는데 티어제는 인터뷰에서 동서독 갈등의 핵심적인 원인을 경제문제에서 찾으면서, 사회문화 갈등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했다. 경제 문제가 해결되면 사회문화 갈등은 자연스레 해결된다고 보고 있는데,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지.

=티어제가 그렇게 일방적인 주장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현실 정치가로서 실업과 경기침체 등 당면한 경제적 문제를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전달된 것 같다. 통일은 정치·경제적 통합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문화적 통합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지표들이 동서독간의 사회문화 갈등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인 네 명 중 한 명이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지기를 바라고, 동독인 85%가 스스로 ‘이등국민’이라고 느끼고 있다. 최근 선거에서 동독지역당인 민사당과 서독 좌파가 연합한 ‘좌파연합’이 동독 지역에서 25%를 득표한 것은 동독인의 저항적 정체성이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동서독간에 이질감이 커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동독 영향받아 서독인 평등의식 향상

=갈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서독인들의 동독에 대한 인식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동독인들은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지역 주민이고 서독인들은 승자’라는 것이 서독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서독은 다 옳고 동독은 다 그르다, 동독은 쓸만한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갈등을 불러왔다. 이런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동독의 경제체제와 사회체제 변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동독인들이 느낀 공통적 정서는 ‘굴욕감’이다. 이것이 동독인들이 지닌 잠재적 능력과 가능성을 소멸시키고, 그 자리에 부정적 요소들이 피어나게 만들었다. 이게 사회문화 갈등의 핵심 원인이다.

=에곤 바의 지적처럼 서독인들이 동독인의 의식과 정서, 생활방식을 몰랐다는 것, 다시 말해 통일을 체제와 제도의 문제로만 보았지, 인간의 문제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이 동서독 갈등의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결국 서독인들이 동독인들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인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역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에서 독일 언론의 역할은 준비가 안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동독인들의 향수를 상품화시킨 면이 강하다. 그러나 동독인들의 정치교육을 위해 동독지역의 신생 공영 언론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독일통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통일은 국가 차원에서 민족국가의 복원을 의미하지만, 자본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 과정의 한 국면이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통일이 독일의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통일 이전 우파가 근소한 우위를 점하던 정치지형이 좌파의 우세로 전환된 것이다. 이번 총선의 결과도 이러한 진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민당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체로는 좌파 정치세력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패한 동독의 문화가 정치적 승자인 서독의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동독문화의 영향으로 서독인의 평등의식이 크게 높아진 점은 그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독일통일이 주는 의미를 짚어본다면?

=우리에게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아직 냉전과 분단시대의 논리에 젖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분법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상호방문과 방송시청 등을 통해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독일의 경우에도 통일된 후 양쪽 주민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북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사관을 마련하고 열린 태도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언론, 통일문제 관심 높여야

=독일통일은 첫 단추를 잘못 꿰 계속 잘못된 쪽으로 나갔다. 동독인들의 삶을 무시한 출발이 이후 불거진 여러 갈등의 원인이었다. 동독에도 평등의식, 공동체의식 등 좋은 가치들이 많았고, 윤리의식도 서독에 비해 높았다. 통일은 상대방의 좋은 가치를 상호 인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언론 분야를 연구하며 느낀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언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만 통일정책을 갖는 것이 아니다. 언론사도 나름의 통일정책을 가져야 한다. 또한 언론이 정치뿐 아니라 북한주민의 일상에 대해서도 더욱 자세히 보도해 예상되는 사회문화갈등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독일통일 15주년인 올해에 2년에 걸친 연구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어 뜻 깊었다. 최근 베이징 6자회담에서 가능성을 보였듯이, 우리의 자주적 외교역량을 더욱 넓혀야 한다. 냉전체제를 깨뜨린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보여주듯이 강대국 사이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통일이 동북아 평화의 모태가 되느냐, 새로운 분쟁의 화약고가 되느냐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정리/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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