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3 11:25
수정 : 2005.10.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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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돌 축하행사로 16일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첫선을 보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서 젊은이들이 집단체조를 선보이고 있다. 이날 공연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과 군의 간부들과 함께 참석해, 열광하는 출연자와 군중들에게 답례를 보내고 출연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고 이 전했다. 통신은 “백두산의 장쾌한 해돋이와 노래 ‘아리랑’의 선율에 맞춘 우아한 춤바다가 펼쳐졌다”고 공연모습을 묘사했다. 평양/신화통신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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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아리랑 공연 참관기는 한국방송PD연합회장과 춘천MBC 사장을 지냈고 현재는 배우학교 한별의 교장을 지낸 김승수씨가 보내온 글이다. 김씨는 통일부로부터 2005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북한지역 방문을 승인받고, 광복60돌 기념 평양문화유적 참관단의 일원으로 ‘아리랑’ 공연을 보고 돌아왔다. 김씨가 아리랑 공연과 평양 방문을 통해 본 것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편집자]
평양, 2005년 가을
‘아리랑’이 공연된 평양 능라도의 5·1 경기장은 1989년 임수경이 참가한 세계 청년학생축전의 개·폐막 행사장으로 우리에겐 알려져 있다.
10월 8일 토요일 저녁 7시 40분경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맞은편 배경대(카드 섹션자리)엔 세로로 평양시내 지명을 새긴 카드들, 물론 사람들이 손으로 각자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조정하는 카드들이 전광판처럼 화려하게 펼쳐져 있으면서 동시에 합창을 하듯 환영하였다.
좌우 끝엔 1945와 2005의 숫자가 대칭되어 있었다. 정각 8시가 되자 아리랑 노래와 함께 연인원 10만명의 어린이 청소년 처녀 군인들이 한복 학생복 군복 운동복 등을 입고 컴퓨터 그래픽처럼 나타나 대오를 만들었다. 이어 원을 만들고 뛰고 나르고 쌓고 튀어오르고 떨어지고 춤추고 노래하고 전투하고 외치고 울고 기뻐하고 엑스타시에 빠지며 수난의 민족사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김일성주의(그네들의 영어식 표현인 Kimilsungism을 필자가 붙인 한국어)에 의한 연출법으로 표현하였다.
배경대에선 카드섹션으로 그래픽을 보여주고 때론 대형스크린을 만들어 민족 수난사를 동영상과 특수효과로 보여 주는 초대형 화면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구호 및 매장면의 주제를 압축하여 글자로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가수 김정구 선생이 부른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은 일제 강점기였던 우리 민족의 수난기를 보여줄 때 주제음악으로 나와 반갑기도 했다. 아마도 이번 2005년 공연 때 추가하여 남녘 관객을 위한 팬서비스를 한 게 아닐까 생각하였다.
수난기가 지나고 새로운 출발기를 보여주며 계란과 소·닭의 탈을 쓰고 추는 집단 춤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선을 보는 듯 기계적이며 환상적이었으나, 군인들이 보여준 집단 전투장면은 현실적으로 다가와 섬뜩하였다.
유치원이거나 초등생 1,2학년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채우더니 2,3인씩 줄넘기를 하면서 동시에 단체 줄넘기를 하는 묘기, 사람 몸이 60도 각도로 공중으로 쏘아 올려진 뒤 포물선을 그리며 그물 위로 낙하하는 상상을 뛰어넘은 곡예(그네들 말은 교예), 흰 한복을 입은 여성들로 한반도와 제주도, 울릉도와 독도가 만들어지고 배경대엔 ‘우리는 하나, 풍속도 하나’가 떴다.
‘흥하는 내나라’, ‘더 높이 더 빨리’에서 보여준 5층 탑쌓기와 공중을 나르며 오토바이를 타고 낙하하는 장면, ‘통일 아리랑’에서 보여준 살풀이 장구소리를 듣고 10만명의 그래픽 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니라 창자 속까지 흔들리는 진동이었다.
평양의 텔레비전은 한 채널뿐이었다. 조선중앙TV에선 노래 시합이 나왔다. 노래는 전부 혁명가요 및 수령님 장군님뿐. 단조로운 TV. 호텔 로비에선 ‘아리랑’DVD만 연속 상영하였다. 노동신문과 TV, 즉 미디어는 한 방향의 이데올로기여서 너무 단조로웠다. BBC가 말한 편성의 원칙 중에 오락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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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아리랑 지난 1일 저녁 평양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을 관람한 남쪽 참관객들이 남북 단일기를 흔들고 있다. 평양/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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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날 아침 김일성주석 부자가 받은 선물들을 모아둔 국제친선전람관에 가서 희귀선물들을 많이 보았다. 그중엔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대통령과 정주영·김우중 등 한국의 정치가와 기업인들이 보낸 선물들도 있었다.
특히 스탈린이 1945년에 보낸 방탄기차 한량이 어떻게 여기까지 운반되었는지에 대해선 우리 모두가 궁금하여 물어 보았는데도 정확한 답변은 듣질 못했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진짜선물(?)은 김일성 주석을 실물 그대로 재현하여 백두산 밑자락에서 양복 차림의 노년의 미소 띈 모습으로 세워 놓은 것이다. 천지의 물결과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게 해놓을 정도로 정교하게 사실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역시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답게 ‘영원히’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는 죽어서도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살아 있는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식당에서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여성 복무원에게 반갑다고 말하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부끄러워하며 ‘제가 머리가 나빠서 무슨 말로 답해야할지 모르갔시오’라고 대답한 리송미 복무원,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 왔을 때 화동으로 그에게 꽃을 주었다는 탁경화 안내원, 9일이 한글날이라 식사하면서 한글 얘기를 한마디 꺼냈더니 바로 피, 언어, 지역, 문화가 중요하다면서 대화권을 주도한 민화협의 어느 동무, 우리를 안내한 여성 가이드들의 열정적 설명과 자부심과 자신감, 우리 식대로 산다는 그들,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자 결단내고 만다는 그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그들에게 물었다 언제쯤 통일이 될 것 같냐고. 바로 나온 대답이 우리 민족이 합심만 하면 통일의 날은 당겨진다는 것이었다. 떠나기 전날 통음을 하며 우리는 중얼거렸다. 통일을 위한 준비는 하되 바로 통일은 하지 말자. 이대로 좀 살아야할 것 같다. 서로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서로 더 필요해 질 때가 오지 않겠나. 무리하지 말자. 그네들이나 우리나 다 상처 받고 또 치유하고 그러지 말고 일단 서로 좀 알고 다니자.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자 꼭 결단을 내겠다는’ 그네들의 민족적 자긍심, 전 인민의 투철한 역사에 대한 정치의식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비벼지고 발효되어 화학적 휴전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였다.
김승수/배우학교 한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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