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30 18:57
수정 : 2005.10.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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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은 군 간부들 ‘머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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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 날라주고…술판 시중해주고…목욕탕서 때 밀어주고
논문 대필해주고…골프공 주워주고…자녀들 과외공부…
“(사진 담당인) 정훈병이 장성 가족 모임에 불려가 사진을 찍는 일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한 장성은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을 명문대에 다니다 입대한 병사에게 대신 쓰게 했다.”(김아무개씨, 육군본부 근무·2004년 전역)
“장군 두 명이 국문 논문을 들고 와 영문으로 번역해 달라고 해 한 달 동안 번역을 하느라 고생했다.”(유아무개씨, 한미연합사령부 근무·2004년 전역)
‘사병 때리는 장군’(<한겨레> 28일치 11면) 보도 이후, 군 고위 간부들이 사병(士兵)들을 사병(私兵)처럼 부려먹는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군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지휘관 가족들의 음식 준비와 청소, 빨래 등을 맡는 공관병이 대표적인 경우다. 지휘관의 운동을 돕는 ‘테니스병’이나 ‘골프병’, 목욕탕 관리를 전담하고 때를 밀어주는 ‘목욕탕병’, 지휘관 자녀의 과외공부를 시켜주는 ‘과외병’…. 군 편제에도 없는 병력 운용이 군 전역자들의 입을 통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명문대 출신 병사들이 ‘과외병’으로 동원되는 경우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는 “두어달 전 사단장을 아버지로 둔 학생한테서 ‘서울대 출신 병사들로부터 과목별로 과외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대한 김아무개씨도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 출신들이 장군 자식들 과외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몸으로 수발을 들어야 하는 일도 많다. 공병단 출신의 김아무개(29)씨는 “지휘관 친구인 민간인이 이사를 가는데, 중대원 20명이 군 트럭으로 온종일 이삿짐을 날랐다”며 “부대장이 한 달에 두 차례씩 부대 안에서 건설업자들과 술판을 벌이곤 했는데, 새벽 2~3시까지 온갖 시중을 들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 연대장을 ‘모셨다’는 윤아무개(29)씨는 “새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의 마지막 날, 연대장이 불러서 ‘타종식 구경을 가 딸아이가 먹을 밤을 까라’고 했다”며 “밤새 밤을 까는데 너무 서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연대장이 골프 연습을 하며 날린 공을 찾으러 부대 뒷산을 헤매다 날이 저물 때도 있었다”며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라고 말했다. 일부 장성은 골프를 잘 치는 병사를 불러 골프 과외를 받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병사들을 사적인 일에 동원하는 관행은 고위 간부들에만 그치지 않는다. 충북의 한 공군부대에서 최근 전역한 신아무개씨는 “부사관들과 위관급 장교들도 일과 뒤 테니스장 정리, 은행 심부름 등 온갖 개인 업무를 거리낌없이 시켰다”고 말했다. 2002년까지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한 성아무개(26)씨는 “소대별로 소대장의 당번병까지 있었는데 당번병들은 혼자 사는 소대장의 속옷까지 일일이 손빨래를 했고, 한 중대장의 당번병은 식사 때마다 5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중대장의 방으로 밥을 날랐다”고 전했다.
‘다시 한번만’이라는 예비역은 기자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공관병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말이 좋아 공관병이지 완전히 식모 아니냐. 전력 손실이 아닐 수 없고, 인권 유린이다. 국민의 혈세로 군대 유지하는데, 그 군인을 식모로 부려먹다니, 차제에 공관병, 당번병 등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혁 박주희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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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더했다
생선회 즐기는 간부 지시로 ‘횟집 칼질’ 배우기도
군 간부들의 사병 부려먹기가 현재보다 심각했던 과거에는 사병들 사이에서 “우리의 주적은 간부들”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1998년부터 2년 동안 한 대령의 당번병을 했던 권아무개(28)씨는 “선임 공관병은 회를 유난히 좋아하는 대령의 지시로 부대 바깥에 있는 횟집에서 회 뜨는 기술을 배워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 경기도 가평의 부대에서 ‘테니스병’으로 근무했던 안아무개(39)씨는 “대대장이 전용으로 쓰는 테니스장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려고 모든 장교들이 매달 1만원씩 공제했다”며 “겨울에는 테니스장 바닥이 얼어붙지 않고 윤기나게 하려고 취사반과 유류고에서 소금과 석유를 가져다 뿌리다가 취사병들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80년대에 강원도 원주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닌 이아무개(31)씨는 “6학년 때 해부 실습용 개구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아버지가 연대장인 친구가 개구리 수백 마리를 가져와서 학년 전체가 실습을 했다”며 “그 아버지가 병사들을 동원해 개구리를 잡아 와서 나눠줬다는 얘기를 듣고, 어린 마음에도 황당했다”고 말했다.
사단장 당번병 출신이라는 이아무개(35)씨는 “내가 하던 가장 중요한 일이 당시 대학교에 다니던 사단장 딸의 리포트를 써주는 일이었다”며 “나중에 그 사단장이 국방차관에까지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80년대 중반 육군사관학교에서 사병으로 복무한 임아무개(43)씨는 “가을에 길 위의 낙엽을 깨끗이 청소했는데, 교장 부인이 차를 타고 지나다가 ‘가을 길에 왜 낙엽이 없냐’고 하자 곧바로 병사들이 다시 나와 치웠던 낙엽을 길 위에 흩뿌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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