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훈련병들.군대는 병사들이 힘든 훈련을 견뎌낼 수 있도록 ‘신체건강한 사나이’ 라는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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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들 왜곡된 성의식 강요…일부 집단 성매매도 수시로 “사나이다워야”강조해 남성우월의식 주입
“자대 전입해서 신병환영식을 하는데, 고참들이 처음 묻는 질문이 ‘너 애인 있냐?’였고, 그 다음 질문이 ‘너 애인이랑 해봤냐’ ‘어떻게 했냐’는 거였어요.” 3월 육군에 입대한 권아무개(24) 일병이 전하는 신병환영식의 풍경은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법한 상황이다. 권 일병은 “내가 어떻게 여자친구를 만났는지, 여자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한테 오로지 성관계 대상으로 여자 친구를 묘사해야 하는 것이 불쾌했다”면서도 “신병이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선임병들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여자 친구를 포함한 모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비하하는 문화는 전역할 때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훈련소에서는 공포의 존재인 조교들이 밤마다 훈련병들의 긴장을 풀어준다는 명목으로 성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조교들이 자신의 성 경험을 과시하는 이야기를 하면, 훈련병들은 ‘남자다움’을 인정받기 위해 최대한 적나라하게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는다. 성 경험이 없거나 이러한 대화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지 못하면 무능력한 남자 취급을 받기 일쑤이다. 누군가 휴가를 다녀오면, 밖에서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는지, 또는 성매매 업소에 다녀왔는지가 주요 관심사가 된다. 부대원들끼리 함께 외박을 나가서 성매매를 하는 풍조도 일부 남아 있다. 전투경찰로 복무하고 지난달 전역한 유아무개(29)씨는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뒤로 부대원들이 집창촌은 잘 안 가지만 안마시술소 등 유사성행위 업소를 많이 다닌다”고 말했다. 유씨는 “부대에서 성매매 예방 교육을 하지만 ‘너희 마음 다 이해하지만 걸리면 인생 망치니까 조심해라’는 식이거나 언제 어디서 단속하니까 거긴 가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는 훈련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군인들이 지급받는 총은 거의 항상 여성의 몸에 비유된다. 총에 흙이라도 묻으면 ‘네 애인 몸이라고 생각하고 깨끗하게 간수하라’, 총을 잠시 다른 곳에 놔두면 ‘너는 네 여자를 아무 남자 손에 맡기냐’는 등의 말은 훈련소에서 장교, 부사관 등 간부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지휘관들은 힘들고 어려운 군 복무와 훈련을 이겨내라는 ‘배려’에서 병사들에게 수시로 ‘사나이’라는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많은 지휘관들이 처음 훈련소에 입소한 병사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여러분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대한민국 남자라서 군대에 왔다”는 것이다. 거꾸로 병사들에 대한 질책은 남성성에 대한 부정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목소리가 작거나, 행동이 절도 있지 못한 병사들은 ‘사나이답지 못하다’는 질책을 받기 일쑤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군대에 남성 우월의식을 퍼뜨린다. 국방홍보원이 병사들 정신교육을 위해 제작하는 군 영화에서도 여성은 남성중심적인 시선으로만 다뤄질 뿐이다.
군대에서 성평등 교육은 간부들을 대상으로 1년에 1번 꼴로 이뤄질 뿐 일반 병사들에게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는 “군대에서 끊임없이 주입되는 남성우월주의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결합돼 여성을 낮춰 보는 의식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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