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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2 15:29 수정 : 2005.11.02 15:41

지난 11월1일 열린 삼덕통상 개성공장 준공식.

[현장] 개성공단 제일 잘나가는 삼덕통상 북한 직원 1000명 고용 배경


북한 개성쪽 출입사업소(CIQ)를 5분 정도 지나면 벌건 황토빛 대지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몇 동의 공장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까지는 공장의 열기보다는, 개성공단 부지를 닦는 포크레인과 트럭들의 움직임이 더 분주하게 느껴진다. 북쪽 CIQ에서 개성공단까지 물리적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CIQ 코앞에 개성공단이 있다는 얘기가 더 현실감이 있어 보인다.

11월1일 오전 9시40분, 서울에서 2시간 조금 더 걸려 도착한 삼덕통상 개성공장 준공식장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새벽에 일어나 허겁지겁 서울 경복궁 주차장으로 집결하는 바람에 피곤했던 몸이 곳곳에 매단 풍선과 흥겹게 울리는 ‘반갑습니다~’라는 노래 앞에 스르르 풀어졌다. 버스 12대에 440명이라는, 개성공단 설립 이후 최대의 남쪽 손님들을 맞은 북쪽 사람들의 표정도 다소 상기돼 있었다. 안내원들 뿐만 아니라 호기심이 동한 북쪽 노동자들도 작업을 하다 짬짬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준공식을 엿보고 있었다.

#1. 똑소리 나는 우리은행 북쪽 여직원

준공식장 뒷편에는 우리은행 간이 ‘출장 환전소’가 설치돼 있었다.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바로 옆 건물에 우리은행 개성공단 출장소가 있는데, 거기 직원들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남쪽에서 올라와 상주하는 구무효 과장과 북쪽 직원 김명옥씨 등 두명이 호흡을 맞춰가며 바쁜 손놀림을 하고 있었다.

개성대학을 나온 김명옥씨는 북쪽 기업소에서 회계 일을 보다가 우리은행에 ‘채용’됐다고 한다. 구무효 과장은 최고 엘리트라며 김명옥씨를 연신 치켜세웠다. “개성공단에서도 우리은행에 근무하면 최고의 직장으로 쳐주지 않냐”고 묻자 눈웃음만 보낸다.

한참 낯을 익힌 뒤부터는 이야기를 제법 술술 풀어놓는다. 몇살이냐고 물으니 한번 맞춰보란다. “대략 22∼23살”이라고 하자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며칠전 환율보다 조금 비싼 것 같다고 하자 “매일 매일 환율이 바뀌고 있다. 비싸게 받으면 손님들을 다 뺏기는데 그럴 리가 있냐”며 똑소리나게 대응을 한다. “과장님하고 너무 친해 보인다”고 하자 “그런 보도 나가면 남쪽에 계신 과장님 부인이 싫어한다. 그러면 과장님이 다시 남쪽으로 쫓겨 내려간다”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다른 손님이 어깨에 달고 있는 김일성 주석 휘장에 관심을 보이자 김명옥씨는 ‘반사적으로’ “우리는 항상 김일성 주석을 모신다”고 대답했다. 다소 썰렁해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김명옥씨는 구 과장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구 과장이 별것 아니라는 듯 품넓게 씩 웃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익숙한 봉합이다.

#2. 북쪽 관계자들도 들뜬 삼덕통산 개성공장 준공식

부산에 본사를 둔 신발제조회사 삼덕통상은 부산, 개성공단, 중국 청도에서 ‘스타필드’라는 브랜드로 ‘건강 웰빙신발’을 만들어 남쪽에 판매하거나 수출하고 있다. 신발 뒷축을 20도 정도 올려 걸을 때 무릎이나 허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바른 보행자세를 유지하게 해준다는 게 삼덕통산 쪽의 설명이다.

어찌됐든 삼덕통산은 개성공단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업체로 꼽힌다.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3400여명의 북쪽 근로자 가운데 1000명이 삼덕통상에 근무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대지 2439평, 건평 2900평 규모로 재단, 재봉, 프레스, 제화 등 완제품 생산 시설을 갖춰놓았다. 그동안 반제품 공정 시설만 있었는데, 이번에 완제품 생산 공정까지 모두 준공한 것이다.

개성공장 생산능력은 중국에 있는 삼덕통산 청도공장의 2배를 훨씬 넘는다. 청도공장에는 재봉 9개 라인만 있는데 비해, 개성공장은 재봉 18개 라인과 제화 3개 라인 등 모든 공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삼덕통상은 현재 1천여명인 북쪽 근로자 수를 내년 3월까지 2천명으로 늘려 연간 180만켤레의 완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이번 준공식에는 남쪽의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해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과 권철현·안경률 한나라당 의원, 김동근 개성공단 관리위원장, 조명균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장 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북쪽 관계자들도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한철 3처장은 준공식 때부터 오후 5시쯤 행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남쪽 관계자들과 동행했다. 그는 서울로 돌아오기 전 북쪽 CIQ까지 나와 남쪽 손님을 배웅했다.

그는 삼덕통산 개성공장 3층 식당에서 열린 오찬 때 건배 제의를 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약간은 쑥스러운 듯 일어나더니 “개성공단을 통일의 상징으로 만듭시다, 축배!”라고 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오찬 때 술이 다소 과했는지 오후 동안 약간은 불콰한 얼굴로 기분좋게 웃고 다니기도 했다.

“개성공단에 대해 남쪽 사람들의 관심이 별로 크지 않다. 개성공단에 대한 남쪽 기자들 취재를 자유롭게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자가 지적하자 한철 차장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 만나면 얼굴을 트고, 두 번 만나면 말을 트고, 세 번 만나면 친구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일단 자주 봅시다”라고 대답했다. 서로 신뢰를 쌓아보자는 취지로 들렸다.

조명균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장은 “북쪽 관계자들이 준공식에 참여하고, 오찬까지 와서 남쪽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귀뜸했다. 북쪽 관계자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덕통상 관계자도 “옛날에 다른 공장에서 준공식을 할 때는 꽤 힘들었는데 우리는 북쪽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다”고 알려줬다.


지난 11월1일 열린 삼덕통상 개성공장 준공식.

#3. 남북경협의 ‘질적 비약’ 현장 둘러보기

준공식이 끝나고 삼덕통상 개성공장을 한바퀴 둘러 보았다. 440여명이나 되는 남쪽 사람들에게 북쪽 근로자들이 직접 일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북쪽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자유로웠다. 물론 시간 사정 등 때문에 ‘주마간산’식이었지만 북쪽 노동자들과 짬짬이 얘기를 할 수도 있었다. 올해 초 분위기가 ‘삼엄할’ 때 와 봤다는 한 남쪽 인사는 “격세지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11명의 삼덕통상 남쪽 직원들이 상주하면서 생산라인이나 교육장마다 배치돼 북쪽 노동자들에게 품질관리와 교육을 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북한과 합영을 한다고 해도 남쪽 직원들이 북쪽 공장에 근무한 적은 없었다. 임가공 사업의 경우에도 남쪽 기업들이 제품 생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오더’를 주면 북쪽에서 만들어 납품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량품이 나오면 중국에서 만나 다시 설명을 해주고, 북쪽 사람들이 그걸 다시 받고 공장에 지시하는 번거로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남북경협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말만 합영이지, 기업 운영권은 없다”고 불평할 만도 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개성공단의 경우에는 남북 경협이 질적으로 도약했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공장 1층에서 재단과 봉제를 관리하던 윤상현 삼덕통상 자재담당 차장은 “북쪽 노동자들이 일을 정말 잘한다. 5개월밖에 안됐는데 공장이 거의 정상화됐다”고 평가했다. 밑창을 재단하는 과정을 지켜본 남쪽의 한 기업가도 혀를 내둘렀다. 정확한 용어나 과정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대략 이런 얘기였다. 원단을 너무 여유있게 자르면 낭비하는 자재가 많아지고 너무 적게 자르면 불량품이 나오는데, 북쪽 노동자들이 정확하게 잘라낸다는 거였다.

#4. 에필로그

올해 초만해도 개성공단을 다녀온 사람들은 “저게 될까”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갔다온 사람들한테는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아직도 불편하고 개선될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의 ‘희망’에 방점을 찍는 것은 북쪽 노동자들의 태도 때문인 것 같다. 북쪽 노동자들의 또랑또랑한 눈빛, 열의에 찬 표정은 이번 준공식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개성공단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북쪽 노동자들이 ‘총화’를 한다길래 남쪽 기업들이 긴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회의를 열고 불량품 발생이나 작업 목표 미달에 대해 대책을 세우더랍니다. 그걸 지켜보고 할만 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는군요.” 개성/<한겨레> 정치부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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