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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2 14:22 수정 : 2005.12.02 14:32

개선문 근처의 건물에 있는 김일성 관련 구호./필진네트워크 좋은비


평양은 ’구호의 도시’이다. 서울은 셀 수 없을 만큼 요란한 간판이 시선을 붙잡지만, 낮의 평양은 간판이 별로 없다. 길거리 건물에 띄엄띄엄 ‘평양 남새상점’ ‘영광 리발소’ ‘창광 단고기집’ 등의 국영 가게 간판만 보인다.

밤에도 심각한 전력 사정으로 평양 중심가에 한개의 가로등도 켜지지 않으니, 당연히 네온사인도 없는 어둠의 도시가 된다. 그러니 낮에 평양을 다니다 보면 우중충한 건물에 쓰여있는 각종 구호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15년만에 간 평양에 가장 눈에 띈 구호는 김일성 관련 구호였다. 그 구호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대부분 돌에 새겨 붉은 글씨로 뚜렷하게 건물의 옥상이나 입구에 자리잡고 있었다.


개선문 근처의 건물에 있는 김일성 관련 구호/필진네트워크 좋은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물론 체제 유지를 위한 아버지의 음덕을 바라보는 아들의 바램이 담겨 있는 구호이지만, 정권을 놓으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감옥에 가는 우리의 ‘지도자’를 생각하면 참으로 다른 체제라는 생각이 든다.


길거리 구호./필진네트워크 좋은비

내친 김에 몇가지 구호를 더 보자. 군의 역할을 강조하는 구호, ‘선군정치의 위대한 생활력을 더욱 높이 발휘하자’, ‘선군혁명 총진군’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등도 많았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우리 장군님과 끝까지 뜻을 같이 하자’는 구호도 있었다


고려호텔 맞은편 거리./필진네트워크 좋은비

가장 긴 구호는 ’당창건 60돐에 즈음한 당 중앙위, 중앙 군사위원회의 공동 구호를 철저히 완수하자’ 는 등의 구호 였는데 너무 길어 제대로 기억을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우리 식대로'
'결사옹위, 결사 관철'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 만세'
'절세의 애국자 김일성 장군 만세' 등도 자주 보였다.

주체탑 근처의 건물 구호

이런 구호 홍수 속에 가장 인상적인 구호를 발견했다. 평양 교외의 한 민둥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구호였다.그 구호는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것이었다. 언뜻 현실이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자는 뜻의 구호라고 다가 왔지만, 그 의미가 심오한 것처럼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고려호텔 앞 지하도 나서는 모녀./필진네트워크 좋은비

길거리에 힘들게 걸어다니는 많은 북한 인민들의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 굳이 애써 관찰하려 하지 않아도 쉽게 느껴지는 그런 북한의 ’오늘’. 얼마나 오래된 그런 힘든 ’오늘’을, 보장할 수 없는 ’내일’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한 추수가 끝난 농촌의 황량한 논에는 ’우리시대 영웅처럼 살며 일하자’라는 구호도 있었다. 과연 그들에게 ’영웅’은 누굴이까?


류경호텔이 보이는 평양 시내/필진네트워크 좋은비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3박4일의 평양 생활은 시작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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