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2010년대 DMZ 근무 병사들 생활
저절로 감탄 나오는 절경 속에 대치하는 남북 병사
시야 확보 위해 풀 베고 불 내면 ‘펑펑’ 터지는 지뢰
대북·남 방송, 남북관계 부침 따라 중단·재개 반복
불규칙한 근무·작업으로 잠자는 시간 짧아 스트레스
과학화 경계시스템 도입 이후 근무시간 짧아졌지만
무너진 철책 세우기 등 비번에도 작업 투입은 여전
과자·음료수 싣고 DMZ 병사 찾아오는 ‘황금마차’
사람이 공간 완성…DMZ에 사는 사람에도 관심을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한겨레교육, 녹색연합은 지난 9월 20대를 대상으로 ‘DMZ 평화적 이용’ 교육프로그램을 꾸렸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 논의에 청년층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한겨레평화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DMZ 평화적 이용과 관련해, 사람(군인)·생태관광·정전체제(유엔사) 3가지 주제로 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비무장지대(DMZ)는 155마일(250km)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4km에 걸친 땅이다. 이제껏 DMZ는 분단의 공간, 생태 보배 같은 측면에서만 논의됐다. 사람 이야기는 빠져있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다. 하지만 DMZ에도 먹고 자고 생활하는 사람은 있다. DMZ 앞 철책에서 근무하는 일반전초(GOP) 군인들과 DMZ 내 감시초소(GP) 군인들이다. DMZ를 꾸준히 지켜보는 사람은 군인이 유일하다. DMZ에서 생활하는 남북의 병력은 2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규모의 병력이 대치하는 지역은 전 세계에서 DMZ가 유일할 것이라고 군 관계자는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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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DMZ. 육군본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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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밖의 관찰자의 시각이 아니라 ‘DMZ 생활자’인 군인들이 보고 겪은 DMZ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보안 현역 군인들의 인터뷰는 보안 절차상의 문제로 어려워,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DMZ에서 근무했던 6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실명을 밝히길 원하지 않아 기사에서는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우리가 몰랐던 DMZ 모습과, DMZ에 얽힌 남북관계 변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DMZ 화공작전, 폭죽처럼 터지는 지뢰
DMZ는 생태 보전 가치가 높은 곳이다. 병사들도 DMZ를 처음 본 순간을 떠올릴 땐 감탄사부터 쏟아냈다. 근무했던 시기와 관계없었다.
“캬~이렇게 좋은 곳이 있나.” 이병수(53·1980년대 GP근무)씨.
“너무 좋았다. 처음 보는 곤충류가 많았다.” 박형곤(28·2010년대 GP근무)씨.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DMZ 자연에서 눈을 돌리면 여기서 생활하는 군인들을 볼 수 있다. DMZ에서 근무하는 군인의 임무는 전방 경계 및 감시다. 높이 자란 풀은 눈 앞을 가린다. 시야를 확보하고자 풀을 베는 ‘불모지 작업’을 한다. 여기에 더해 1980년대까지는 불도 질렀다. 이른바 화공작전이다.
“지뢰 제거 작업을 한 뒤, (지뢰가) 없다고 판단되면 불도저로 풀을 밀어버린다”고 김철우(54·1980년대 GOP근무)씨는 말했다. 풀이 없으면 경계근무가 수월해진다.
불을 내면 땅에 묻힌 지뢰가 터지기도 한다. 남쪽에만 지뢰가 약 127만발, 북쪽에 약 80만발이 매설돼 총 200만발이 DMZ 땅속에 있다고 추정된다. 이는 추정일뿐, DMZ에 지뢰가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면적당 지뢰 매설 밀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은 분명하다. 비무장지대에 불을 낸 날 밤에 경계근무를 서면, 지뢰가 터져 “밤 내내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고 김철우씨는 말했다.
불은 국군만 내는 게 아니다. 북한군도 같은 이유로 불을 질렀다. 한유걸(46·2000년대 GOP근무)씨는 “봄만 되면 북한이 불을 많이 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등에 지는 펌프랑 물수건(연기 마시기 방지) 들고 GOP로 올라”갔다고 한다.
비무장지대지만 실상은 무장지대다. 이 아이러니 탓에 자연은 검게 그을린다. 지뢰와 불 탓에 멧돼지처럼 몸집이 큰 동물은 DMZ에서 살아가기 힘들다. 대신 고라니나 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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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홍보원 <국방TV> 유투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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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방향으로 각각 2km씩, 총 너비 4km다.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2km떨어진 곳을 북방한계선, 남쪽으로 2km 떨어진 곳을 남방한계선이라 한다. 남방한계선에는 GOP(General Outpost·일반전초)가 있다. 남방한계선을 따라 대개 휴전선(군사분계선)으로 잘못 알고 있는 철책이 있다. GOP는 철책선 특이사항 등을 24시간 감시한다. DMZ 내부인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에는 GP(Guard Post·경계초소)가 있다. GP 병사들은 군사분계선 일대를 24시간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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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동북단에 위치한 강원 고성 지피 모습. 이 곳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북한 지피와의 거리가 580m밖에 되지 않아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던 곳이다. 지난해 9·19군사합의에 따라 고성 지피에서 장비와 병력을 철수하고 지난해 11월7일을 마지막으로 비무장지대 경계 임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된 상태다. 고성/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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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블로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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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블로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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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블로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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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블로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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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대남방송, 남북관계의 바로미터
DMZ 근무 장병은 북한군을 마주보고 있다. 가까운 북한군 초소와는 수백m 거리다. 남북관계가 나쁠 때는 DMZ에서 서로 체제를 선전하는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이 끊이지 않았다. 남북은 3차례 방송 중단을 합의한 바 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과 2004년 6월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6·4합의’, 2018년 ‘4·27판문점선언’이다.
한유걸씨는 2004년 6월 남북 합의로 선전방송이 중단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한씨는 자정을 기점으로 선전방송을 중단하던 때를 떠올렸다. “자정 1분 전 모든 전선에서 동시에 소등을 하고 마지막 방송을 했다”며, 남북의 마지막 노래 선곡과 방송 멘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당시 국군은 애국가를, 북한군은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를 방송으로 내보냈다. 노래가 끝나자 멘트가 이어졌다. 한씨는 “북한은 평소에 ‘괴뢰군’이라 칭했던 우리 군에 ‘지금까지 수고하신 국군장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 기억이 난다. 우리도 북한군을 ‘인민군’이라 칭했다”고 설명했다.
2004년 멈춘 대북 방송은 DMZ 목합지뢰에 수색 장병들이 다치자 2015년 8월10일 재개됐다. 이후 2015년 8월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로 방송을 중단했으나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이후 전면 재개됐다. 현재는 지난해 판문점선언 이후 방송이 중단된 상태다.
과거 대북선전은 주로 남쪽의 기술적·문화적 우월함을 드러냈다. 김철우(54·1980년대 GOP근무)씨는 “북한에 보냈는데 (바람에 날려) 우리쪽으로 되돌아온 삐라 속에는 떡 보자기, 망사스타킹이 들어 있었다”며 “종이만 날리던 북한의 것(삐라)과는 달랐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2000년대 대북 확성기에서는 이효리의 ‘텐미닛’과 보아의 ‘넘버원’이 흘러나왔다. 당대의 최신가요였다. 북한을 향한 정확한 일기예보도 남쪽의 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좋은 소재였다. 한유걸씨는 “(대북방송 일기예보가) 강원도 평강군 평강읍 최저기온이 몇도라는 식으로까지 디테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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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북쪽을 향해 ‘오라 서울’이라 적힌 표지판 앞에서 병사가 근무를 하고 있다. 인터뷰 대상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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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한의 대남방송은 월북자들이 북한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늦은 밤까지 계속된 대남 방송은 병사들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최병길(25·2010년대 GOP근무자)씨는 “방송을 밤에 틀면 잠을 못 잔다”며 “(대남방송이)밤 내내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어플러그를 끼고 잤다”고 답했다.
스트레스 1순위 수면 부족
병사들의 잠자는 시간은 대남방송 외에도 여러 이유로 짧다. 인터뷰한 병사 출신들은 스트레스 원인 1순위로 수면부족을 꼽았다. 한유걸씨는 “후반 야간 근무 때 끊어서 자는 것이 힘들었다”며 수면부족으로 고생한 당시를 떠올렸다. GOP 근무 장병의 하루는 크게 주간 근무, 전반야, 후반야 3교대로 나눠졌다. 주간근무는 일출부터 일몰까지이고, 야간근무는 일몰부터 일출까지다. 야간근무는 절반으로 나눠 앞쪽을 전반야, 뒤쪽을 후반야라고 한다. 주말도 공휴일도 없이 1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박형곤(28·2010년대 GP근무)씨는 “하루 평균적으로 3~4시간 정도 잤다”고 말했다. 각종 작업이 있어 낮에 들어와 푹 잘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한유걸씨는 “수면 시간은 늘 부족하다면서 휴가 나가면 술 먹고 놀러 다니기보다 잠을 잤다”고 말했다.
경계과학화, 근무시간 줄어들어
DMZ 철책선에는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작동한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부족한 병력을 대체하고 빈틈없이 경계근무를 수행하기 위한 경계시스템이다. 철책에 하얀색 광그물(광망)을 씌우고, 중거리·근거리 감시카메라, 열영상 감시장비(TOD·물체의 적외선을 감지해 영상 정보로 변환하는 것), 레이더를 통해 남방한계선 철책을 감시한다. 광그물망에 침입 움직임이 감지되면 신호가 울리고 카메라가 영상을 찍어 지휘 통제실과 소초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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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중부전선 한 부대에서 병사들이 CCTV로 전방을 감시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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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서부전선 휴전선 남쪽에서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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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도 센서는 있었다. 김철우(54·1980년대 GOP근무)씨는 “철책에 가는 선들이 있다. 선을 건드리면 상황실과 초소에 다 들릴 만큼 경보음이 울렸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철책 위에 둥그런 철망”이 있는데, “그 위에 줄을 쳐 놓는다”며 “그 줄이 떨어져 있으면 누군가 쳐 들어왔다는 신호”라고 과학화 이전의 센서를 설명했다. 줄 떨어짐 유무로 판단하다보니 즉각적인 대응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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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상황실에서 철책선을 볼 수 있게 됐다. 병사가 직접 철책선에 서 있지 않아도 실시간 감시가 가능해졌다. 이는 근무 시간 감소로 연결된다. 기존에는 대대급 부대의 40여개 감시초소에 장병들이 투입돼 보초를 섰다면, 지금은 6개 초소에만 병력이 투입된다. 과학화 이후 변화를 묻는 질문에 장형준(24·2010년대 GOP근무)씨는 “근무 시간이 짧아지다 보니 몸도 편해지고 개인적인 시간도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 정비 시간(일종의 휴식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비번은 작업에 1순위로 동원되기 때문이다. 철책이 무너지면 수리해야 했다.
철책선을 감시하는 장비는 발전했다. 하지만 철책 자체는 1980년대와 달라진 것이 없다. 최병길(25·2010년대 GOP근무)씨는 “철책이 노후화돼 지지대를 박고 시멘트 붓고 쇠줄로 당기며 최대한 안 넘어가게 해야 한다. (철책은) 녹슨 데가 많고 청소가 어렵다”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복지, 이동식 편의점 황금마차의 추억
GP와 GOP는 부대 특성상 PX(군 매점)가 없다. 대신 황금마차라 불리는 차량용 이동식 매점을 이용한다. 황금마차란 이름은 차량이 개나리색인 데서 유래했다. 황금마차는 일반 PX보다 규모가 작지만 과자, 음료수, 화장품, 비누 등 다양한 100여가지 물품을 취급한다. 황금마차 방문 주기는 부대나 날씨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유걸(가명·2000년대 GOP근무자·46)씨는 “황금마차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부대는 한두 달에 한 번 왔다”고 했다. 병사에게 황금마차는 그동안 필요했던 것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과학화 경계시스팀 도입 이후 황금마차도 사라지고 있다. 육군이 소초들을 마트 PX가 있는 중대 이상 단위로 통폐합하면서 황금마차의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금마차는 대부분 퇴역 절차를 밟아 가고 있다.
DMZ도 사람이 사는 공간
DMZ는 60여년간 변함 없이 고립돼 있다.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 전, 시대와 상관없이 DMZ를 거쳐가는 병사의 경험과 생각도 비슷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만나본 이들은 제각각의 DMZ 기억을 떠올렸다. 공간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사람도 공간을 완성시킨다. 공간은 사람으로 채워진다. 이렇듯 고립돼 있는 DMZ는 생활하는 군인들에게 매번 새로움을 안겨주며 60여년간 숨쉬고 있다.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 DMZ는 분단의 장, 전쟁의 흔적, 생태 보고 등으로만 언급된다. 이제는 DMZ에 사는 사람에도 관심을 돌리고, DMZ를 사람이 사는 공간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이주영·서용원·이하은·유지운·이유정 교육생
nura@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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