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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8 20:01 수정 : 2006.01.08 20:01

북한 함경남도 신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건설 현장에 남아 있던 인력 57명이 8일 오후 한겨레호편으로 모두 철수해, 속초항에 도착하고 있다. 속초/연합뉴스

지난달초 방북한 케도 대표단 사업종료 방침 전달
북, 미국에 손실 보상 요구등 청산과정 논란 예상


대북 직접송전을 핵심으로 한 지난해 7월의 대북 ‘중대 제안’이 신포 경수로의 사망선고를 남쪽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면, 이번 신포 경수로 현장의 인력 철수는 그 집행절차에 들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년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의 일시중단 결정으로, 경수로는 사실상 뇌사 상태였다.

장선섭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단장은 8일 오후 현장 잔류인력 57명과 함께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 선박편으로 속초항에 도착한 직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철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인원 철수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해 12월7∼8일 케도 대표단이 방북해 집행이사회(11월21∼22일)의 사업 종료 방침을 전했고, 북쪽은 케도 인력의 현장 잔류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쪽도 경수로 건설사업이 사실상 종료됐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북쪽의 인력 철수 동의가 원만한 사업 종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북쪽은 지난해 11월28일 외무성 대변인 발언과 12월19일 <조선중앙통신> ‘상보’ 등을 통해 “막대한 정치경제적 손실”에 따른 보상을 미국에 요구할 것임을 거듭 주장했다.

북쪽의 건설 현장 장비·자재 반출 불허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6자회담 논의 진척 상황과 맞물려, 경수로 사업 청산 과정에서 복잡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투입 비용 및 청산 비용= 경수로 사업은 지금껏 15억6200만달러를 들여 34.54%의 종합공정율을 보여왔다. 케도 집행이사회가 2003년 12월1일 공사 잠정 중단을 공식 결정한 뒤 진척은 없다. 총공사비 46억달러 가운데 70%(원화기준)를 책임지기로 한 한국이 11억3700만 달러(1조3655억원), 22%를 엔화 기준으로 대기로 한 일본이 4억700만 달러를 부담했다. 유럽연합도 일부 부담했고, 미국은 사업비를 내지 않는 대신 중유를 지원했다.

장선섭 단장은 1억5천만∼2억 달러 규모라는 청산비용 추정치에 대해, “(주계약자인)한국전력이 대략 그 정도 될 것이라고 본 것”이라며 “클레임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변수가 많아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청산 절차 협의와 새로운 불씨 살리기= 경수로 건설공사는 66개 사업자가 참여해 114개의 계약을 맺은 복잡한 사업이다. 자칫 청산과정에서 위약금 소송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케도는 이미 투입된 사업비에서도 최대한 회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신포 건설 현장 조성에 들어간 돈은 어쩔 수 없지만, 제작 공정이 50%를 넘어선 원자로 설비 및 터빈발전기 등은 ‘재활용 방안’을 궁리해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케도의 청산 협의 결과가 북핵 문제 해결 및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할 ‘씨앗’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국가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제네바 합의의 산물…2차 북핵위기로 치명타
케도 경수로 11년 역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의 신포 경수로 건설사업은 1994년 10월21일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물이었다. 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가열된 ‘제1차 북핵 위기’의 핵심인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 등 ‘흑연 감속 원자로 및 관련시설’을 동결하고 이를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대신, 1000 메가와트급 한국형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한 게 제네바 기본합의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95년 12월 케도-북한간 경수로 공급협정이 체결되자, 북한은 이듬해 4월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폐연료봉 봉인작업을 시작했다. 이런 연유로 97년 8월19일 북한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에서 경수로 착공식이 열렸을 때, 언론은 ‘신포의 작은 통일’, ‘남과 북의 대역사’ 등의 제목으로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애초 일정이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02년 8월3일 착수한 신포 경수로 제1호기 최초 콘크리트 타설 공사는 사업 본격화의 한 획을 긋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과 2달여 뒤인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했고, 이때 북쪽이 ‘고농축우라늄 핵개발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의 발표가 이어졌다. ‘제2차 북핵위기’다. 미국이 북한의 제네바 기본합의 파기를 이유로 대북 중유공급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이 2003년 1월10일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대응하면서 제네바 합의는 사문화됐다. 미국의 중단 요구에도 케도 집행이사회는 2003년 11월 경수로 사업의 일시 중단에 이어 두차례 연명했지만, 경수로 중단을 전제로 한 한국의 ‘중대제안’에 이어 마침내 지난해 11월 경수로 사업의 사실상 종료에 합의했다.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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