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0 22:57
수정 : 2005.10.11 00:07
|
북관대첩비는 21일께 한국에 온 뒤 북으로 갈 예정이다.
|
한―일 12일 인도문서 서명
‘항일의 혼’이 밴 북관대첩비가 일본에 강탈된 지 꼭 100년 만에 겨레의 품으로 돌아온다.
외교통상부와 문화재청은 10일 “한-일 두 나라는 12일 북관대첩비 인도문서 서명식을 치르고 비 철거에 필요한 기술적 작업을 거쳐 이달 20일을 전후해 한국으로 반환해 올 것”이라고 밝혔다. 북관대첩비를 보관해온 야스쿠니신사 쪽은 지난 3일 이사회를 열어 이 비의 반환을 최종 결정했다. 이어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 팀이 파견돼 9일부터 비석 해체작업 들어갔다. 정부는 이 비의 한국 운송 직전 일본에서 민관 합동으로 전통의례인 ‘고유제’(告由祭)를 치를 예정이다.
북관대첩비는 복원작업을 마무리한 뒤 경복궁 등 남쪽에서 일정 기간 전시 등 행사를 치른 뒤, 남북 협의를 거쳐 이 비가 원래 있던 북쪽으로 넘겨질 예정이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북평사였던 정문부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공을 기려 숙종 때 함북 길주 임명(현 함북 김책시 임명동)에 민관 합작으로 세운 전공비다. 높이 187㎝, 너비 66㎝ 비에 새겨진 1500글자에 당시 의병의 활동상이 상세히 담겨 있다. 이 비는 러-일 전쟁 때인 1905년 일본군 미요시 중장이 일본으로 가져가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해 왔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한-일 관계의 권위있는 연구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1978년 이 비를 우연히 발견한 뒤 박정희 정부가 나서 반환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올 3월 한·일 불교복지협의회가 베이징에서 북의 조선불교도연맹과 만나 이 비의 북한 반환에 합의했고, 이어 6월 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이 비의 반환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공식 합의한 뒤 반환 움직임에 탄력이 붙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
북관대첩비 반환 의미
남―북―일 힘 모아 ‘전쟁의 상흔’씻다
‘전쟁과 갈등에서 화해와 상생으로.’
북관대첩비의 탄생에서 일제의 강탈, 100년 만의 귀환에 이르는 과정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다.
북관대첩비는 무엇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비에는 1905년 러-일 전쟁의 와중에 일본 군인에게 강탈당한 약소국 조선의 슬픔이 배어 있다. 북관대첩비는 그렇게 100년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 한구석에 있었다.
그러다 남과 북, 한국과 일본의 민간 및 당국이 서로를 배려하는 협의를거듭한 끝에 남한을 거쳐 원래 이 비가 있던 곳인 북한으로 돌아가게 된다. 남과 북, 일본의 3각 협력은 북관대첩비의 반환 그 자체에 못지않게 의미가 깊다. 외교통상부는 이를 계기로 “한-일 두 나라의 우호관계 증진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북관대첩비의 국내 반환 과정 그 자체가 남북간에 교류·협력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10일 평가했다.
반환 경위=100년 전인 1905년 러-일 전쟁의 와중에 일본군 미요시 중장이 강탈해 간 북관대첩비를 조선 사람이 다시 봤다는 공식 기록은 그로부터 73년이 흐른 1978년부터다. 한국사 연구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이를 우연히 발견한 뒤 정문부 장군의 후손인 해주 정씨 문중이 신사 쪽에 반환을 요청하고, 박정희 정부까지 나섰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1909년 일본 유학생이던 조소앙 선생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이 비를 보고는 <대한흥학보>에 ‘북관대첩비 사건의 소감’이라는 글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렀다. 지지부진하던 반환 노력에 탄력이 붙은 건 올 들어서다. 3월28일 한·일불교복지협의회는 베이징에서 조선불교도연맹과 만나 북관대첩비의 북한 반환에 관한 합의문을 채택한다. 이어 주한일본대사관 등과 접촉한 결과 5월20일 ‘남북 당국간 합의 뒤 한국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반환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그리고 6월23일 서울에서 열린 15차 장관급 회담에서 남북 당국은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한 실무적 조처를 취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그 뒤 외교통상부가 나서 일본 외교당국 및 야스쿠니신사 쪽과 협의를 거듭해 지난 3일 야스쿠니신사 이사회의 최종 반환 결정이 이뤄졌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문화재청에 딸린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팀이 9일부터 비석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문화재청 쪽은 15일 야스쿠니신사에서 비석을 해체하고 전통의식인 ‘고유제’를 지낸 뒤 4~7일 남짓 해체한 비석을 묶는 작업을 거쳐 19~21일 사이 항공편으로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정문 옆에서 또 한번 고유제를 치른다. 이어 박물관 전시동 으뜸홀에 비석을 두고 28일 새 박물관 개관식 때 노무현 대통령 등 정부 인사와 일반인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행사를 치른다. 한주 남짓 일반에 공개한 뒤에는 경복궁 고궁박물관 앞 잔디밭에 옮겨놓고 새로 만든 지붕돌과 받침돌을 끼우는 복원 공사를 한다. 새로 단장한 북관대첩비의 공식 제막식은 복원이 끝나는 11월 중순께 경복궁 뜰에서 할 예정인데, 을사늑약 100년인 11월17일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문화재청은 이후 북한 문화재 당국자와 북관대첩비를 북으로 보내는 협상을 벌이게 된다. 북관대첩비가 남쪽에 얼마나 머물지는 이 협상의 경과에 달려 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북쪽과 협의를 해봐야 한다”고 전제한 뒤, “6개월에서 1년 정도 경복궁 안에서 전시한 뒤에 문화재청 관계자가 비석을 경의선 도로를 통해 직접 운반해 평양 역사박물관에 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노형석 기자 nomad@hani.co.kr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