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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 김우식비서장.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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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인사·민정수석 교체로 진화시도…책임론 불씨 여전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단추를 꿸 수가 없다.’서양 속담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꿴 뒤 그 자리에서 거울을 보고 바로잡지 못하면 나머지 단추들도 줄줄이 잘못 꿰게 마련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어색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몸을 불편하게 어색함에도 아랑곳하지 않다가는, 한마디로 “스타일 구긴다.”
참여정부의 세번째 교육부총리 인선에서 빚어진 인사논란은 잘못 꿴 단추를 연상시킨다. 인사주체와 일부 보수언론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와 여론은 ‘이기준씨의 교육부총리 임명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인사를 검증하는 청와대 인사수석이 교육부총리 임명을 옹호하고 나선 데 이어, 청와대 비서실장과 총리가 적극 지원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은 이제 산업이 되어야 한다”며 여론의 화살을 맞고 있는 신임 교육부총리를 보호하기 위해, 논란의 최전선에서 엄호를 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를 둘러싼 의혹은 점점 커져 나갔다. 총장 재임시 사외이사 관련 이중잣대, 재산형성 의혹, 아들의 이중국적과 병역기피 의혹에 이어 이중국적자인 아들이 외국인 신분으로 연세대에 정원외 특례입학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결국 이 부총리는 상처를 못견디고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이기준씨와 관련한 도덕성 의혹들은 “모두 과거의 일로, 해명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설명했고, 재산에 관해서는 “집 한 채 있는 정도이고, 청렴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기준씨는 끝내 부총리에서 낙마했다. 물러나고 망가진 것은 부총리에 임명되었던 이기준씨만이 아니라, 거센 비판여론에 맞서 이기준씨를 교육부총리에 앉히고자 했던 최고통치권자의 권위와 이를 보좌하는 청와대 인사시스템이다. 이기준씨 인사 파문을 수습하기 위한 청와대의 인사와 후속책을 살펴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노대통령, 두 수석 경질로 사태 수습할 수 있나?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도덕성 의혹으로 5일 만에 낙마한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의 핵심 맴버인 박정규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 노 대통령은 또 같이 사표를 낸 김우식 비서실장, 이병완 홍보수석, 문재인 시민사회수석, 김병준 정책실장 등 4명의 사표는 반려했다. 청와대가 이 전 부총리 파문과 관련해 민정·인사수석의 교체로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하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 전부총리를 발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해찬 국무총리의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어 사태의 끝은 아직 걷잡을 수 없는 상태다.
세상이 다 아는 비리의혹 청와대만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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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교육계 열망을 무너뜨렸다”(전교조), “서울대 총장 재직 때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인사를 새 교육부총리에 임명한 것은 참여정부의 인사치고 매우 실망스러운 일”(한국교총), “도덕적 하자가 있는 인물을 교육부총리에 임명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이 전 총장에 대한 부총리 임명은 철회돼야 한다”(참여연대)는 등의 반응이 그것이다.
이어 신문과 방송은 이 부총리의 과거행적과 관련해 서울대 총장 재직시절 판공비 과다사용 내역, LG그룹의 사외이사 근무 등의 개인 비리혐의와 두 아들의 병역기피의혹을 앞다퉈 보도하며 사퇴압력이 증폭됐다. 사퇴 당일인 8일에는 아들의 연세대 화공과 특례입학 의혹, 기업(엘지) 입사과정, 부동산관련 문제 등 여러 의혹이 꼬리를 물고 불거지면서 이 전 부총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런 파문의 한 가운데에 있던 청와대는 이 전 부총리 임명 초기에 “판공비 문제는 과거 일이고 장남 병역문제는 공익근무를 마친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판단에 따라 발탁한 것”이라며 “임명을 재고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도 “대학은 바로 산업이고, 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 전부총리 적격성 논란을 종식시키려 했다. 청와대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이 전 부총리는 잇따라 터진 자신과 두 아들의 비리의혹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중의 인사검증 시스템 상부에서 뭉갰나?
평소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인사와 관련해 “인사수석실이 1심, 민정수석실은 2심, 대통령이 3심”이라며 인사검증시스템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2중, 3중의 철저한 인사검증을 통해 투명한 인사를 하겠다던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이 과정에서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언론과 세상에 이미 다 알려진 이 전 부총리의 개인 비리혐의를 청와대만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알고도 묵살한 것일까?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2중, 3중으로 물샐 틈 없이 검증한다는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은 이 전 부총리의 인선과정에서 상부의 뭉게기로 철저히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 실무진들은 상부에 이 전 부총리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상세히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해찬 총리와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주축으로 참여하는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에서는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의 지적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가 이 전 부총리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인사를 강행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과 이 총리, 김 비서실장 등 정권 수뇌부가 ‘안이하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총리와 비서실장 등의 책임론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 “강력 추천 ‘실세 총리’도 책임져야”
우리당 “차떼기 발언에 대한 정치적 보복”
정치권에서는 이 전 부총리 파문에 대한 총리의 책임론을 놓고 한바탕 입씨름을 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10일 “강력 추천에 책임총리는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라는 논평을 통해 이 총리를 공격했다. 전 대변인은 “이 총리가 이 전 부총리를 강력 추천했고 실세총리의 강력추천에 ‘강력검증’은 생략되다시피했다”며 “평소 ‘똑떨어지는’ 이총리라면 책임총리로서 무한대의 책임 역시 똑떨어지게 져야 마땅하다”고 논평했다.
전 대변인은 또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린 것은 책임총리답지도 않고 실세 총리답지도 않다”며 “검증의 문제가 있다면 누를 끼친 이들이 물러가는데 정작 추천한 장본인은 자리를 지킨다면 너무도 궁색하지 않은가”라고 이 총리 사퇴를 에둘러 압박했다.
한나라당의 이 총리에 대한 공세에 열린우리당은 적극적인 감싸기에 나섰다. 김현미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사퇴가 능사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는 것이 우리당의 공식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총리는 보고를 받고 제청했던 것밖에 없고, 여태까지 조기에 낙마했던 장관들은 많지만 총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모든 문제를 ‘사퇴 하라’며 정쟁거리로 삼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김대변인은 또 "노무현 대통령이 충분히 사과하고 관련자들이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해찬 총리를 야당이 문제 삼는 것은 지난해 이 총리의 (차떼기) 발언에 대한 보복의 차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한나라당을 공박했다.
민주노동당·시민단체 “김우식 실장 사표반려 부적절”
이해찬 총리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는 김우식 실장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10일 논평에서 “국민들이 이기준 부총리 임명 등 일련의 사태에 분노한 것은 단순히 인사 검증의 실무적 차원 문제가 아니다”며 “그 핵심은 강남 부자중심의 교육정책에 앞장서온 김우식 실장 체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은 또 “노무현정부 개혁후퇴의 몸통은 김우식 비서실장이다”며 “참여정부가 김우식 실장 중심의 대통령 비서실을 전면 개편함은 물론, 교육계를 장악해온 김우식 실장 인맥을 이번 기회에 청산하지 않는다면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김 비서실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어 “김 실장은 인사추천위원회 위원장이자 비서실을 총괄하는 비서실장으로서 추천과 검증 과정에 대한 도의적, 행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정치적 책임 역시 다른 수석에 비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의 선별적 사표 수리 방침이 일부에서 제기하듯 보수세력에 대한 고려 때문이라면 더더욱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이것으로 마무리”…여진 계속될까
새해들어 “경제살리기에 온힘을 쏟겠다”고 하는 등 유화적 몸짓으로 지지율이 상승했던 노무현 정부는 이 전 부총리 사건으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사건 초반 미온적이던 청와대가 이 전부총리의 문제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정리하고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을 교체하는 선에서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은 방치할 경우 정권 차원의 도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사 파문의 핵심당사자로 지목된 총리와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가라앉지 않을 경우 집권 3기를 맞는 현 정부의 집권기반 자체가 현저히 흔들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13일로 예정된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전에는 이 전부총리와 관련한 사태를 깨끗이 매듭짓고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총리와 김 비서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가라앉지 않을 경우 후속조처가 내려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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