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1 11:22
수정 : 2005.01.01 11:22
|
천막을 걷기 전, 꼼꼼히 물건을 정리하는 농성단원 /김남일 기자
|
[현장]단식농성단 26일 만에 해산…“1월말 다시 시작”
“2004년 12월 31일, 오늘을 기억하자. 수구세력과의 타협으로 적당히 개혁하려는 자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려는 자들, 그리하여 이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되돌려 세우려는 자들을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 이 배신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성명서를 읽어내려가는 목소리가 날선 비수가 되어 국회의사당을 향했다. 시계바늘이 하나로 모아지는 2004년 세밑 끝자락. 31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은 누구보다도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 26일간 단식을 한 농성단에게 따뜻한 미음이 전해졌다. 한 컵 가득 /김남일 기자
|
|
|
|
|
국회를 향한 비수, “배신자들을 잊지 않으리”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26일간의 길거리 단식농성을 벌여온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농성단 1천여명은 이날 밤 10시부터 “정치모리배들의 야합과 배신”으로 무산된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뒤로 하고 “2005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다짐”하는 2004년의 마지막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천막은 걷히게 될 터였다.
뒤늦게 불이 켜진 국회 본회의장에선 국가보안법은 미뤄둔 채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초치기’를 하는 수험생의 절박함이었다. 싸우던 자들은 어느덧 친구가 됐다. 시간은 없는데 해놓은 것이 없는 자들의 마지막 필살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밖. 2004년을 뚫고 2005년으로 내달리는 차들은 농성단을 지나 국회 앞으로 빠르게 빠져 나갔다. 종로 보신각엔 2004년을 서둘러 잊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제야의 종’을 국가보안법에 대한 ‘조종’으로 듣고 싶어 했던 단식농성단은, 그러나 1시간 남짓 남은 2004년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듯했다. 오히려 2004년을 ‘기억’하려고 했다.
지난 12월6일 300명으로 시작한 단식농성은 금세 1천명으로 늘어났다. 단식으로 약해진 몸들은 12월의 추위에 쉽게 쓰러졌고, 어렵게 일어나야 했다. 피를 쏟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한겨울, 하나의 목적을 위해 밥을 굶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연인원 2천명이 밥을 굶었다.
전국서 모인 연인원 2천명의 염원 한 달 뒤로 미뤄
단식농성단 해단식이 진행되는 무대 뒤로 영하의 추위에도 얼지 않으며 1천여 단식농성단의 생명을 이어온 100여개의 생수통이 가득 쌓여 있었다. ‘생명수’였다. 26일간 18.9ℓ짜리 생수통 500여개가 비워졌다. 보안법 폐지에 목말라하던 이들은 물로 목을 적셨지만 ‘배불리’ 마실 수는 없었다. “하루 20여통의 생수를 마셨는데 ‘단식 전문가’들 말로는 단식자수에 비해 너무 적게 마셨다고 하더군요.” 한 단식농성단 관계자가 웃으며 말했지만, 물조차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던 속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한켠에선 농성단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의지를 시험하는 추위를 이겨냈던 천막이 하나둘씩 걷히기 시작했다. 천막을 밝히던 노란 백열전구들이 꺼졌다. 천막을 받치던 나무기둥들은 집회장 곳곳에서 불꽃을 날리는 드럼통 난로 속으로 들어가 또다시 추위를 막아내기 위해 타올랐다.
그러나 천막의 철거는 싸움의 끝이 아니었다. “1월 말이 되면 이 자리에 새로운 천막들이 다시 쳐질 겁니다.” 바닥에 깔렸던 매트리스를 둘둘 말아 노끈으로 꼼꼼하게 묶던 김재윤(34)씨가 언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때가 되면 다시 깔릴 매트리스들입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1천명의 단식농성단은 지역으로 돌아가 더 큰 힘으로 뭉쳐 다시 모일 것입니다. 그 때를 준비해야죠.” ‘준비하는 자’들은 달랐다. 바닥에 떨어진 못 하나가 다시 연장함으로 들어갔다.
|
▲ 두달여 동안 농성단이 머물렀던 천막이 걷였다. 1월 말이 되면 이곳에 또다시 천막이 쳐질 것이다. /김남일 기자
|
|
|
|
|
준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이별…“우리 손으로 폐지한다”
자정이 다가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알리는 구호는 한층 크고 명확해졌다.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는 ‘국가보안법 폐지된다’로, ‘우리 손으로 폐지된다’로 바뀌었다. 국회의 손에 보안법 폐지를 맡길 수 없음을 절절히 느낀 사람들의 자연스런 ‘학습효과’였다. 기억의 힘이었다.
“추위에 얼어죽지 않은 씨앗은 봄이 오면 아름다운 싹을 틔웁니다. 우리의 싸움은 오는 2월 찬란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임시국회가 열리는 2월에 보안법의 생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울렸다.
2004년에서 2005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한 달 가까이 곡기를 끊었던 단식농성단에게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미음이 전해졌다.
“건강 회복하십시오.” “갑자기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미음을 건내는 손은 미음을 받는 손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2005년이 시작됐다.
<한겨레> 사회부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