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0 19:46
수정 : 2019.09.2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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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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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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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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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시작된 ‘조국 검증’ 공방은 계절이 바뀌면서 여러 대치 전선으로 분화했다. 그중 가장 위태롭고도 격한 싸움은 ‘집권세력 대 검찰’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터질 화약고 같다. 검찰총장이 자신을 임명한 세력과 갈등을 빚는 일 자체가 드문데다, 이번엔 판이 커질 대로 커졌다. 청와대와 윤석열 총장 사이의 신뢰 관계는 이미 박살이 났다.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공식적인 지휘·소통 창구인 법무부 장관은 수사 대상이어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다.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양쪽 모두 패자로 남을 수도 있다.
검찰의 수사 의도는 현시점의 변수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검찰 수사 타이밍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일단 수사가 시작됐으니 당분간 ‘검찰의 시간’이다. 말 그대로 칼자루를 검찰이 쥐고 있다. 집권세력이 가진 인사권, 조직·제도 개편, 개혁 입법 등의 무기는 방향이 옳더라도 둔하고 더딜 수밖에 없다. 여당과 법무부가 ‘수사 방해’ 비판을 우려해 이런 권한 행사를 조국 장관 수사 이후로 미뤄둔 것만 봐도 그렇다.
반면 검찰의 칼은 단기간에 빠르고 날카롭다. 검찰이 필요에 따라 흘리는 피의사실에 언론이 분주하게 반응한다. 여야는 보도 내용을 보고 매일 아우성이다. 조만간 예상되는 조 장관 부인 소환 조사, 이후 구속영장 청구, 법원의 영장심사 등은 다시 온 나라의 시선을 잡아끌 사안이다. 그다음 검찰은 조 장관을 직접 조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테고, 결국 조 장관을 기소하는 수순으로 간다고 보는 이들도 꽤 많다.
곧 다가올 이런 시나리오의 주요 장면에서 여론은 또 요동치고 엇갈릴 것이다. “부인이 구속되면 사퇴해야 한다” “구속이나 기소가 곧 유죄는 아니다” “장관 자리 내놓고 떳떳하게 조사받아야 한다” “정치적 수사에 굴복해선 안 된다. 그게 검찰의 노림수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아무튼 조 장관이 직접 실행한 확실한 범죄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면(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우리가 다음주부터 지켜봐야 할 예고된 풍경들이다.
이런 장기 대치를 끝내는 일은 정치의 몫이지만, 정치는 언제나 이를 검찰에 맡겨왔다. 여야는 처지에 따라 순번을 바꿔가며 고발장을 써 들고 검찰로 내달렸다. 이번엔 조 장관이지만, 다음엔 패스트트랙 사태 때 고발당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순서다. 양손에 떡을 들었으니 검찰은 두려운 게 없다.
‘조국 파문’만 하더라도 수많은 이들이 지난 한달여 동안 그 속에 담긴 정치적, 사회적 의미와 문제를 분석하고 성토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것은 법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청와대나 여당은 그런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사태를 수습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전체 민심을 돌봐야 할 이들이 지지층의 의견을 너무 살핀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지금껏 이뤄놓은 정부의 성과는 무엇인가. 남북관계가 좋아졌다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간판급 성과는 적폐청산이다. 그 적폐청산을 대부분 검찰이 했다. ‘다스는 엠비(MB)의 것’이라는 사실도 검찰이 밝혔다. 두 전직 대통령보다 처벌이 어렵다던 전직 대법원장도 못 피했다.
조 장관은 민정수석 때 현 검찰 체제를 유지하며 적폐청산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검찰의 힘이 너무 세졌다는 경고에도 특수부 확대를 받아들이며 적폐 수사를 적극 지지했다. 당시엔 그게 당연했다. 적폐 수사를 이끌었던 윤석열 검사를 총장 후보로 가장 열심히 밀었던 사람도 당시 조 수석이었다.
검찰을 활용한 적폐청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니, 정부가 이제 사냥개를 삶겠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래야 한다. 검찰개혁은 현 정부 최우선 공약이었다. 그런데 출전한 선수가 같다. 윤석열과 발맞췄던 적폐청산 대표선수 조국이 이번엔 무대를 바꿔 검찰개혁의 아이콘이 되려고 한다. 못할 것도 없지만 잦은 등판으로 선수의 약점이 너무 많이 노출됐다. 토사구팽 하기엔 상대가 꽤나 사나운 맹수라서 모두가 길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이루려는 목표를 새로 설정했다면, 선수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과감히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검찰개혁은 개인전이 아닌 정교한 작전과 팀워크가 필요한 단체전에 가깝다. 아프지만 경기를 이대로 방치하지 말고 멈춰 세워 판을 갈아엎고, 종목도 바꾸고, 룰도 바꿔야 한다. 선출된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석진환 정치팀장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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