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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9 17:29 수정 : 2005.08.19 17:31

과학향기

유리 진열장에 나란히 놓여진 선글라스들, 판매 시간을 기다리며 몸단장이 한창이다. 고급 유리장에 따로 진열된 해외 명품 브랜드의 선글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프랑스 디자이너가 만들어준 몸이야. 이 매끈하고 멋진 모습을 봐. 세계적인 유행 상품이지. 헐리우드의 스타들도 나를 좋아해.”

어디에선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글라스가 눈만 보호하면 되지, 생김새가 무슨 소용이람.”


갑자기 조용하던 진열장 안이 시끄러워지며 선글라스들이 저마다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선글라스라면 역시 패션 아니야? 눈 보호라니 나는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봐.”

“모르는 소리 하지마. 우리 선글라스는 원래 군인들의 눈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거야. 1936년 미군에서 바슈롬사에 의뢰해 만든 녹색 레이반이 시초야. 강한 햇빛을 받으며 장시간 비행으로 두통과 구토증에 시달리던 미군 대서양 횡단 조종사들을 위한 만들어진 보안경이지.”

“선글라스를 쓴다고 두통이 나아?”

“자외선 때문에 생기는 병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 특히 눈은 태양광선에 아주 약하지. 햇볕에 장시간 눈이 노출되면 강한 빛이 각막 상피세포를 손상시켜 각막염이 생기거나 익상편(翼狀片, Pterygium)이 발생해. 각막뿐이 아니야. 눈 속 깊은 곳에 침투해 백내장 같은 질환도 일으켜. 골프선수나 농부들이 백내장에 많이 걸리는 것도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야. 선글라스나 모자 없이 햇빛에 노출될 경우 백내장 발생 위험이 3배나 높다는 통계도 있어. 선글라스를 쓰는 것만으로도 예방 효과가 있다는 얘기지.”

고가의 수입 선글라스가 자신만만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선글라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나처럼 완벽한 외모와 완벽한 기능을 갖춘 선글라스를 찾는 거야.”

토종 선글라스가 수입 선글라스를 나무라며 말했다.

“외국 선글라스는 외국 사람의 얼굴 골격에 맞게 만들어져서 한국인의 얼굴형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멋스럽다고 해도 골격에 안 맞으면 빛을 제대로 차단 못하니 소용이 없어. 눈 전체를 감쌀 수 있도록 테가 크고, 렌즈도 큰 것이 좋아.”

잔뜩 멋을 부린 테에, 렌즈 색이 짙은 패션 선글라스가 외쳤다.

“그렇다면 크고 각진 테에 렌즈도 크고, 색깔도 진한 내가 최고겠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선글라스는 가시광선은 투과하고 자외선은 차단하는 게 본래 기능인데, 렌즈 색이 너무 진하면 가시광선 투과율도 낮아져 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공이 크게 열리게 되지. 그 결과 자외선이 더 많이 눈 안으로 들어오는 역효과가 있어. 렌즈 색이 어두우면 색 구별을 방해하고 시력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지. 거울에 비춰봐서 눈동자가 보일 정도의 색이 적당해. 게다가 요즘은 색은 옅어도 렌즈 안쪽에 자외선 차단물질을 발라 자외선 차단 기능이 탁월한 제품도 나오고 있으니 색깔과 기능을 그대로 연결하는 건 곤란해.”

실망한 패션 선글라스를 제쳐두고, 선글라스들은 최고의 선글라스를 뽑아 보자며 다시 분주해졌다. UV 차단 마크, 400nm까지 자외선 흡수 표시 등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것이 최우선. 그 다음 기준은 렌즈 컬러 농도가 75~80% 정도일 것이었다. 불량 렌즈를 가려내기 위해 흰 종이 위에 렌즈를 비춰 색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햇빛에 비춰 봤을 때 균열이나 기포가 없는지를 가려냈다. 색이 고르지 않으면 빛이 번져 보이고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외선을 90% 이상 차단하고 렌즈의 질이 우수한 선글라스들을 모아놓으니 이번에는 색이 문제였다. 빨강, 노랑, 갈색, 초록, 파랑, 보라 각양각색의 선글라스들이 색깔로 우열을 따지자고 들었다.

“나이가 많거나 각막염 등 안 질환이 있어 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 갈색 계통이, 흐린 날이나 야간에는 노란색 계열이 좋고, 햇빛이 강렬한 야외라면 녹색이 좋겠지. 회색 렌즈는 원래의 자연 색과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니 색깔로 우열을 가리긴 힘들겠어.”

“무슨 소리, 파란색 선글라스는 제외해야 해. 색깔 구별 능력을 떨어뜨리고, 눈을 피로하니까. 녹색 렌즈와 해변이나 등산할 때는 좋겠지만, 운전할 때는 신호등 색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니까 곤란하지.”

색깔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선글라스들 사이에서 편광 렌즈를 사용한 선글라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따져봐도 역시 나를 따라올 선글라스는 없을 겁니다. 제가 바로 그 유명한 편광 선글라스죠.”

편광 선글라스를 처음 보는 선글라스도 있었다.

“저를 잘 모르는 분들도 있는 것 같으니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빛은 원래 여러 방향으로 진동하는 파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편광은 이중 특정한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파장입니다. 물체 표면에서 반사하는 빛은 표면과 같은 방향으로 진동하게 되죠. 호수 같이 넓은 물 표면에서 반사되는 것이 대표적인 편광이죠. 이런 편광은 특히 눈을 부시게 합니다. 우리 편광렌즈를 사용하면 편광과 비편광을 모두 효과적으로 차단해 눈부심 없이 밝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선글라스들이 편광 선글라스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때 조용히 있던 일반 선글라스 하나가 반론을 폈다.

“편광 선글라스가 최고 기술에 만능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호수나 강처럼 넓은 면적의 물이 있는 곳에서는 확실히 효과가 뛰어납니다. 물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을 차단되고 물 속에서 나오는 빛은 들어오기 때문에 물 속을 볼 수 있죠. 따라서 낚시나 수상 스포츠의 경우에 효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편광 렌즈는 렌즈를 2장~3장을 겹쳐서 붙이는 원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칫 하면 어지럼증이나 눈의 피로가 생기기 쉬워요. 특히 달리기나 테니스, 스키처럼 몸을 많이 움직일 때 착용하면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지죠. 그러니 만능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을까요?”

자신을 만능이라고 생각해왔던 편광 선글라스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긴 대화를 나눈 선글라스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눈을 보호하며 뜨거운 여름 태양을 마음껏 즐길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과학향기 편집부)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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