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4 16:52
수정 : 2005.09.14 16:52
과학향기
미국을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는 엄청난 규모의 직접적인 피해와 함께 우리에겐 아직 낯선 총격전으로 더욱 세간의 이목을 끈다. 경찰력이 붕괴된 상황에서 약탈자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다는 것은 총기 소지가 합법화되어있는 미국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서는 우리나라도 총기사고로부터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러시아 등지에서 온 선원들이 권총을 밀수입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종종 일어나고, 또 군경이 소지한 총을 탈취당하는 일도 발생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우리나라 영화에서조차 권총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친절한 금자씨>나 <달콤한 인생>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아무튼 총은 멀리 할 수록, 눈에 띄지 않을 수록 좋은 것이지만, 그 파괴력과는 상관없이 작동 매카니즘이나 제원(諸元)의 미학에 매력을 느끼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엔 총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50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과녁을 맞히는 권총과 600미터 이상 떨어진 표적을 맞히는 군용소총, 또 30킬로미터 밖의 목표물에 명중하는 대포와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목표물까지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은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앞의 셋은 탄환에 자체적인 추진력이 없지만 미사일은 스스로 추력을 지니고 먼 거리를 날아간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게다가 미사일에 항로를 계산하는 컴퓨터를 탑재할 경우에는 적의 레이더망을 피해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리며 목표물까지 도달하는 순항미사일도 가능하다. 이렇게 자체적인 추진력을 지닌 비행체는 흔히 로켓이라고 하며, 총이나 대포의 탄환과는 다르게 분류된다.
반면에 총포의 탄환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발사 시에 얻은 추진력의 관성으로 자유낙하 비행을 하게 된다. 즉 추진력이 다 소진되면 중력에 의해 밑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탄환의 궤적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이 바로 탄도학(彈道學)이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탄도학의 발달 과정에서 탄생한 일종의 부산물이었다. 복잡한 계산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서 전자식 계산기를 만든 것이 바로 오늘날 컴퓨터의 원형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총포보다 로켓이 먼저 등장했다. 12세기경부터 화살 꼬리에 화약통을 붙여 발사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로켓 무기가 중국에서 이용된 것. 반면 서양에선 13세기경 총의 원시적 형태인 핸드 캐넌(hand cannon)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총신 안에 화약을 넣고 터뜨리면 그 폭발력으로 탄환이 날아가는 것으로, 오늘날의 총포와 같은 원리이다. 총포는 로켓과 달리 별도의 발사장치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처음에 손으로 일일이 불씨를 붙여야 했던 점화장치를 기계적으로 편리하게 개량한 화승총은 15세기경에 서양에서 등장하여 전 세계로 널리 퍼져서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군들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19세기 들어서는 산업혁명의 위력에 힘입어 총포의 획기적인 개량이 이루어졌다. 오늘날과 같은 뇌관식 격발장치나 총의 뒤쪽에서 탄환을 장전하는 방식 등은 이 시기에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총은 어떤 모습일까? SF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광선총은 현실이 될까?
오늘날의 총은 수백 년 전에 비하면 비교조차 안 될 만큼 발전했지만 기본적으로 화약의 폭발력이라는 화학에너지를 이용해 탄환을 발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원리로 탄환을 발사하여 기존의 총보다 수천 배 이상 강력한 위력을 보이는 새로운 방식의 총도 이미 개발돼 있다. ‘레일건(rail gun)’ 이 바로 그것.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액션영화 <이레이저>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총도 바로 이 레일건의 일종이다.
레일건은 기차 레일처럼 나란히 놓은 두 줄의 전선 사이에 전도체를 넣고 전선에 강한 전류를 흘려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하면 전선과 수직 방향으로 강력한 반발력 - 흔히 '로렌츠의 힘' 이라고 알려져 있다 - 이 생겨서 탄환 역할을 하는 전도체가 엄청난 속도로 튕겨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속도는 기존의 화약식 총포보다도 월등히 빨라서 그 위력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파괴적이다. 어떤 실험 결과에 따르면 10미터 두께의 초합금 장갑도 순식간에 관통해 버린다고 한다.
레일건은 이미 1970년대 초부터 군사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나 영화 <이레이저>에서처럼 개인화기로 개발되지는 못했다. 너무나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 수 없고, 또한 커다란 군함 한 척 유지비에 해당하는 비용이 소요돼 경제적으로도 수지가 안 맞기 때문이다. 그밖에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레일건은 앞으로도 소형화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 대신 우주공간에서의 물자 수송 등 평화적인 이용 방법에서는 실용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 레일건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여전히 재래식 총포보다는 강력한 '코일건(coil gun)'이라는 무기도 연구되고 있다. 코일건도 레일건과 마찬가지로 전자기력의 원리를 이용한 것인데, 탄환에 직접 전류를 흘리지 않아도 되고 레일건보다 마모가 덜하다는 이점 등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레일건과 같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실용화가 늦어지고 있다.
SF영화에 나오는 화려한 광선총들도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다 에너지 보존법칙이나 작용-반작용의 원리 등등 자연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으로 획기적인 발명이나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런 ‘꿈의 무기’들은 당분간 현실에서는 접하기 힘들 것이다. (글: 박상준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