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향기
2030년 어느 날 아침, 김 과장의 하루는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항공우주산업에 종사하는 김 과장은 어제 저녁, ‘한국인 최초의 화성인 탄생’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동료들과 거나하게 술을 한잔 했다. 병원에서 술을 가급적 줄이라고 권고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 과장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적외선과 바닥에 숨겨진 체중계가 신장과 몸무게를 측정한다. 그리고 거울 속의 얼굴 인식 카메라가 홍체 인식을 통해 “김 과장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변기 양쪽에 손잡이를 잡으니 혈당, 알코올수치, 체지방 등이 자동으로 인식되어 정면 유리 모니터에 출력된다. 이 손잡이에는 바늘 없는 주사기가 달려있는데, 압축 질소를 불어 피부에 아주 작은 구멍이 열리게 한 다음 약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통증이 거의 없다. “김 과장님, 과음하셨네요. 의사선생님께 한 번 혼나셔야 겠어요.”라는 아리따운 아가씨의 말이 나온다. 볼 일(?)을 보고 난 다음은 세면 시간이다. 요즘에는 양치할 때 박테리아를 이용한 구강 청정제를 흔히 사용한다. 이 박테리아는 잇몸 질환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막는 역할을 한다. 치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집집마다 화장실 거울 한쪽을 자랑스럽게 차지했던 자외선 칫솔 살균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양치를 하고 나니 우리 친절한 아가씨가 다시 말을 건넨다. “감기기운이 조금 있으시네요. 요즘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낮으니 외투를 준비 하시는 게 좋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면대에 내장되어 있는 검사기가 양치를 통해 배출되는 침을 분석하는데, 이를 통해 구강암이나 알츠하이머, 감기 등 대략 10가지 병을 진단 가능하다. 이렇게 수집된 김 과장의 모든 데이터는 곧바로 지정된 병원으로 보내진다. 김 과장이 샤워를 하는 동안 병원에서는 화장실에 있는 로봇 약사에게 처방을 지시한다. 이 로봇 약사는 RFID 기술을 통해 지정된 약통에서 필요한 약제를 꺼내 김 과장을 위한 하루 분의 약을 만들어낸다.캐비닛을 열어보니, 피부 보습제와 스킨 외에 다양한 것들이 보인다. 분해형 반창고는 기존의 반창고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녹는 성질이 있어서 반창고를 뗄 때 고통이 없다. 미세한 피브리노겐 단백질 섬유를 이용했기 때문인데, 이 물질은 공기 중에서 잘 녹는 성질 이외에도 피부의 봉합을 돕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 바르던 자외선 차단제도 이제는 먹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하단에는 로봇 약사가 만들어논 약봉지가 눈에 보인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나오기 전에 의사 선생님의 당부와 오늘 조제한 약에 대한 설명, 간단한 운동 비디오와 함께 김 과장의 생체리듬에 맞는 상쾌한 음악이 거울에 내장된 모니터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오늘 하루도 김 과장의 하루는 이렇게 화장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첨단 화장실을 집에 설치해 놓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나 신축 건물에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가 되어 버렸다. 유비쿼터스와 RFID를 통해 한 차원 높아진 생활 수준, 나노기술과 유전자공학의 발전을 통해 이루어진 생명의 연장의 꿈 등은 30년 전부터 우리 윗세대가 야심차게 진행해왔던 미래 기술이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이 ‘주치의 화장실’로 완성된 것이다. 이 점을 김 과장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2030년의 또 하루를 시작한다. (과학향기 편집부)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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