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향기
“으라차차차...” 체내 유전자 중에도 씨름하는 유전자가 있다. 바로 스모(SUMO) 유전자가 주인공. 세포 속에 존재하는 스모유전자는 10년 전 독일의 멜코이어 박사가 처음 발견해 낸 유전자로 Small Ubiquitin-like MOdifier의 머리글자 S.U.M.O.를 따서 명명한 것이다. 스모유전자는 체내 세포활동에 관여하는 각종 단백질에 달라붙어서 그 기능을 변화시키는데, 알파벳 약칭으로 우연히 붙여진 ‘스모’라는 이름을 빗대어 ‘씨름하는 유전자’란 별명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토종박사가 이 스모유전자가 암발생 주요 억제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국내 토종박사인 장연규 국립암센터 발암원 연구과장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생물학 저널인 분자세포(Molecular Cell) 9월호 표지논문으로 이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아도 스모유전자가 없으면 염색체가 불안정해져 결국 암발생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사실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넘기 힘든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게놈프로젝트 등으로 글리벡과 같은 표적항암제도 나왔지만 암발생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암발생 기전을 완벽하게 알아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정상 염색체가 불안정화되는 원인 규명 현재까지 알려진 암발생 원인으로는 유전물질을 공격하여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방사선, 다양한 화학물질, 그리고 체내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 등이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어도 유전자 집합체인 염색체의 불안정화가 암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염색체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각 염색체에 붙어있는 특수구조물인 동원체 등의 안정화가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박사는 염색체의 안정화에 스모유전자가 관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스모 유전자의 작용 기작은 이렇다. 보통의 염색체를 보면 염색체 조절인자인 ‘Swi6’라는 단백질이 염색체와 연결된 동원체에 달라붙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스모유전자가 Swi6라는 단백질에 달라붙으면 Swi6는 활성화되어 염색체에 연결된 동원체를 마치 물막이 공사를 한 것처럼 단단하게 형성해주고 보호해 준다. 만약 스모유전자가 없거나 이 유전자를 염색체에 건네주는 효소가 부족할 경우 Swi6가 제 기능을 못해 물막이 벽은 무너지고 동원체의 구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결국 실타래처럼 가지런히 얽혀있어야 할 염색체가 풀리게 된다. 이럴 경우 세포분열 과정에서 세포 속에 있는 염색체 분리가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아 세포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이런 불안정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세포들은 분열할 때 그대로 죽거나 살아도 암세포로 돌변할 수 있다. 우리 몸은 성장을 멈춰도 머리카락, 정자, 적혈구 등 거의 평생 세포분열을 하는 신체부위가 있다. 또한 다 자란 신체 부위도 손상되면 세포분열을 통해 회복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풀려있는 불안정한 염색체를 갖고 있는 세포가 분열을 한다면 그 세포는 암세포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스모유전자 없으면 실타래처럼 엮인 염색체 풀려 실제로 염색체가 풀려있는 모습은 암세포 내에서 흔히 발견되는 염색체의 형태다. 결국 스모유전자가 24시간 씨름(?)을 하며 Swi6를 통해 암 발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염색체는 이런 기작을 통해 외부의 위해한 자극으로부터 보호되는 것이다. 장 박사는 이 같은 사실을 사람 염색체와 매우 비슷한 맥주효모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실험에서 스모유전자가 건재한 정상 효모세포 군집은 거의 모두 붉은 색(안정화)을 나타낸 것과 달리, 스모유전자를 완전 제거한 스모결집세포 군집은 흰색과 분홍색(불안정화)을 나타냈다. 장 박사팀은 앞으로 실제 암환자와 정상인의 세포를 이용한 추가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암의 초기발생단계를 직접 차단할 수 있는 표적을 제공하여, 향후 항암제나 암예방 약물 등의 개발로 연결된다면 암정복은 물론 염색체 불안정에 따른 각종 만성병의 치료 약제 개발 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후 연구응용 항암제 나온다 장 박사는 “앞으로 본 연구를 통해 구축된 약물탐색 시스템을 기반으로 염색체 안정화 과정을 제어할 수 있는 약물을 발굴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부작용 없는 새로운 표적항암제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10년 후 쯤에 이번 연구를 응용한 항암제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대 분자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장 박사는 대학원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십 년 동안 DNA회복 기작과 염색체 구조안정화 기작 연구를 위해 분열형 효모를 실험모델로 고집해 온 국내토종 과학자다. (글: 서현교 – 과학칼럼리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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