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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4 17:24 수정 : 2005.11.04 17:24

11월 4일 과학향기

과학향기

‘쿵쿵따~쿵쿵따~’ 한때 TV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끝말잇기’가 한창 인기를 끌었었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랫동안 계속 할 수 있는 까닭에 어린 아이와 산책을 나온 젊은 부모나 대화가 끊어져서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을 걱정하는 연인들에게 특히 인기였다. 항간에는 그야말로 끊이지 않는 ‘끝말잇기’를 위해 금칙어를 두기도 했는데 리튬, 스트론튬, 세슘, 프란슘, 칼륨, 마그네슘 등 주기율표의 왼쪽에 있는 원소들이 끝말잇기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철, 구리, 아연, 주석, 금, 은, 수은, 백금, 납 등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금속은 대부분 우리 이름을 갖고 있는데 어찌하여 앞서 언급한 원소들은 우리 이름을 얻지 못해 이런 설움을 받는 걸까? 특히 알루미늄은 우리 생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왜 이들 무리에 섞여 있는 걸까?

지각 질량의 약 8%를 차지하는 알루미늄은 산소(48%)와 규소(28%)에 이어 지구상에 세 번째로 많은 원소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원소 상태로 존재하지 않고 산소나 규소와 결합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탓에 그동안 쉽게 발견되지 않았었다. 알루미늄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808년으로 아직 2백년이 되지 않았으며, 상업적으로 이용된 것도 150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젊은’ 금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역사 속에서도 알루미늄은 우리 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금속은 물론 ‘철’이지만, 비철금속 중에서는 구리, 주석, 납을 비롯해 수천 년 동안 써 왔던 그 어떤 금속보다도 ‘젊은’ 알루미늄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알루미늄이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자. 알루미늄이 없으면 여객기도 없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하였을 때 이미 그들은 알루미늄으로 엔진을 만들었는데 12마력 4기통 엔진의 무게가 30파운드에 불과했다. 또 알루미늄은 비강도, 신뢰성, 경제성 등의 측면에서 여객기의 재료로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는 만큼, 오늘날 여객기 무게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보잉 747 점보 여객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75톤의 알루미늄이 필요하며 현재 세계의 하늘을 누비는 여객기는 약 5,300대에 이른다.


부엌도 알루미늄이 없어서는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주방기구의 반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열손실률이 7%에 불과해 나머지 93%의 에너지는 조리하는 음식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알루미늄 솥으로 조리할 때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철로 된 솥을 사용할 때 필요한 에너지의 25%만 있으면 된다.

알루미늄은 우주 개척에도 필수적인 금속이다. 우주 로켓이 발사될 때는 꽁무니에서 엄청난 양의 하얀 구름이 내뿜어져 나오는데 이것은 로켓의 연료에 들어 있는 알루미늄 가루가 타면서 발생하는 알루미나라는 물질로, 쉽게 말하면 산화알루미늄 가루라고 할 수 있다. 알루미늄은 여느 금속처럼 가루로 만들면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여 폭발성을 지니는데 다른 금속보다 가볍기 때문에 단위 무게 당 발산하는 에너지가 크다. 때문에 알루미늄 가루는 로켓의 연료로 사용되며 열을 내는 폭탄에 쓰이기도 한다.

알루미늄은 약하지만 알루미늄 합금인 두랄미늄은 무척 강하다. 또 운동에너지를 흡수한다. 자동차가 충돌하면 충격의 상당 부분을 알루미늄 차체가 흡수해서 승객을 보호한다. 같은 성질을 이용하여 내진 설계된 건물의 건축재로도 쓰인다. 또 알루미늄은 녹슬지 않기 때문에 건물의 유지도 쉽게 해 준다.

불과 150년 동안에 알루미늄은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금속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이름을 갖지 못한 알루미늄은 여전히 ‘끝말잇기’에서는 금칙어다. 승부욕에 앞서서 “알루미늄”을 외치는 순간, 놀이는 끝나고 만다. (글 : 이정모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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