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04 13:39
수정 : 2005.02.0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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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정 화면이 없는 것은 단점이지만, 깔끔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은 매력적이다. 가격은 512MB 제품이 12만5400원, 1GB 제품은 18만9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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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이 없으니 오답도 없고, 오답이 없으니 모든 것이 정답이다. 뜬금없이 웬 인생 타령이냐고? 애플 www.apple.co.kr의 ‘아이팟 셔플’(iPOD Shuffle)은 이렇게 말한다. “삶이란 정해진 것이 없는 것. 불확실한 것을 즐겨라!”(Life is random. Enjoy uncertainty!)
이미 다들 알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설명을 하자면, 아이팟 셔플은 사람이 아니다. 매킨토시, 아니 그보다는 누군가 한 입 먹고 남긴 사과 로고로 유명한 애플컴퓨터에서 얼마 전 선보인 MP3 플레이어 이름이다. 우리네 인생으로 치면 정말 하룻강아지쯤에 해당되는 녀석이다. 그런 물건이 세상에 나오면서 자신의 존재와 효용가치를 널리 알리겠다고 달고 나온 말들이 위와 같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이 물건을 조금만 살펴보면 왜 그렇게 철학적인 말까지 동원했는지 금방 이해가 간다. 흔히 MP3 플레이어라고 하면 좋아하는 음악을 미리 담아두고, 듣고 싶은 걸 선택해서 감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아이팟 셔플은 과감히 그 기본을 버렸다.
MP3 플레이어라면 대부분 있게 마련인 액정 화면이 없으니 듣고 싶은 음악을 바로 고를 수가 없다. 이퀄라이저, 음성녹음, 구간반복, 메뉴 설정 등 기본적인 부가 기능 역시 ‘당연하게’ 없다. 오직 전원을 켜고 2가지 재생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스위치와 재생, 일시정지, 볼륨 조정, 앞으로 또는 뒤로 곡을 이동할 수 있는 버튼만 달려 있다.
그러니 저장돼 있는 음악들 가운데 아이팟 셔플이 무작위(Random)로 선택해 주거나, 재생 목록에 있는 곡들을 순서대로 재생하면서 들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섞여 있는(Shuffle) 음악들 가운데 제비 뽑듯 아무거나 골라 들려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셔플이다.
PC에 연결해 음악을 옮길 때는 아이튠즈(iTunes)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아이튠즈에서 음악을 아이팟 셔플로 담을 때도 자동 채우기(Auto Fill) 기능을 선택하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음악 중에서 아무거나 자동으로 골라 담는다. 좋은 말로 하면 모든 걸 다 알아서 하는 셈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제멋대로인 MP3 플레이어인 셈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기능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팟 셔플은 아주 매력 없는 물건이다. 아마 애플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물건을 만들어 내놓았다면 대부분 외면했으리라. 그런데 아이팟 셔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만큼이나, 그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스며 있는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디자인,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순백의 색상, 그리고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
아이팟 셔플은 99달러인 512MB와 149달러인 1GB의 플래시 메모리를 내장한 2가지 모델이 있다. 국내에선 관세와 부가세가 붙어 각각 12만5400원, 18만9200원에 2월부터 판매된다. 그래도 단순히 메모리 용량만 본다면 다른 제품들에 비해 많게는 반이나 싼 셈이다. 액정도 없고, 부가 기능도 없고, 음악을 마음대로 골라 들을 수 없게 했으니 싸게 팔겠다는 뜻이다.
그 대신, 음악을 듣는 방법은 아이팟 셔플에 맞게 바꿔야 한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은 우리도 할 수 있다. 가격만 싸고 제멋대로인 MP3 플레이어가 아니라, 중요한 자료를 담아 들고 다니면서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제법 넉넉한 용량의 휴대용 USB 저장장치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이팟 셔플은 다른 MP3 플레이어처럼 휴대용 디스크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쁘니까 사지 말고, 싸니까 사자고 하기엔 아이팟 셔플의 장·단점은 너무 극과 극이다. 정해진 것도 없고, 불확실한 것을 즐기라고 하지만 삶이란 선택(Life is choice)할 수 있기에 즐겨볼 만한 것이 아닐까. 음악조차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못마땅하다면 칼로 무 자르듯 아이팟 셔플을 외면하면 그만이다. 혹시라도 불확실한 방법으로 음악을 듣는 즐거움에 빠져볼 생각이 있다면 아이팟 셔플이 정답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각자의 몫이고, 그것 역시 삶의 한 부분이다. 김달훈/ 객원기자 bergkam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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