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30 11:59
수정 : 2019.05.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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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팀이 상온에서 기압만으로 얼음을 형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또 3차원 팔면체 얼음 결정을 2차원 날개 모양으로 변형시켜 얼음의 형상 변화 원리를 규명했다. 사진은 얼음 결정의 성장 형상 변화를 관찰한 이미지이다. 표준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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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과학연 연구팀 상온 결빙 기술 개발
영상의 물을 1만 기압으로 압축해 얼려
3차원 팔면체를 2차원 날개모양 변환도
1만가지 얼음결정 형성 규명 가능해져
냉동육 식감 감소·항공기 결빙사고 등
얼음으로 인한 손실·사고 예방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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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팀이 상온에서 기압만으로 얼음을 형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또 3차원 팔면체 얼음 결정을 2차원 날개 모양으로 변형시켜 얼음의 형상 변화 원리를 규명했다. 사진은 얼음 결정의 성장 형상 변화를 관찰한 이미지이다. 표준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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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31일 ‘할로윈데이’에 미국 아메리칸 이글항공 4184편이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시카고 오헤어공항으로 가던 중 추락해 탑승인원 68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사후 조사에서 이 프랑스제 최신형 항공기는 상공의 한랭전선 때문에 생긴 결빙으로 항공기 날개가 제어되지 않아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상공을 운항중인 항공기는 승객들이 직접 느끼는 난기류보다 착빙이 더 위험하다.(
참고: 난기류 때문에 비행기 타기가 무섭다고요?) 얼음 결정의 성장속도와 형태를 조절하는 제어기술은 비행기 안전에 필수적이다.
국내 연구진이 영상의 상온에서 순수하게 압력만으로 얼음 결정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3차원 모양의 얼음을 2차원으로 변형시키는 등 얼음 형상의 변화 원리도 밝혀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융합물성측정센터 극한연구팀은 30일 “물을 1만 기압 이상 압축해 얼음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또 압력 조건을 제어해 3차원 팔면체의 얼음을 2차원 날개모양으로 변화시키면서 얼음의 형태 변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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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융합물성측정센터의 이윤희(오른쪽) 책임연구원과 이근우(왼쪽) 책임연구원이 얼음성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초고속카메라를 조정하고 있다. 표준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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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성과의 의의는 온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음의 크기나 형태 및 성장하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얼음 결정 모양은 육각판, 기둥, 뿔 등 1만 가지 이상이다. 이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온도에 의존해 만든 얼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가령 쇠고기 등을 대기압에서 영하 18도 이하로 냉동시키면 바늘처럼 뾰족한 육각형 얼음결정이 생겨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킨다.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의 육질과 맛이 냉장육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고압으로 냉동시키면 뾰족하지 않은 다른 형태의 얼음 결정이 생겨 육질을 보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초당 대기압의 500만배까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 장치를 개발해 고압에서 얼음을 성장시켰다. 한 쌍의 다이아몬드 모루(앤빌)로 눌러서 고압을 형성하는 기존 기술에 고속 액츄에이션 기술을 결합한 연구팀 고유의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일상의 온도에서 물을 압축해 고압 얼음을 만들고, 나아가 동적인 압력 조작을 통해 3차원의 팔면체 얼음을 2차원 날개모양으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런 과정을 온도나 농도를 조절해가며 실험했기 때문에 열과 입자의 전달 속도 한계로 결정의 빠른 성장을 관찰할 수 없었던 반면 압력은 일정하게 높였다 줄였다 할 수 있어 물 분자의 결정화 과정을 상세히 순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윤희 표준연 책임연구원은 “고압 냉동기술을 활용하면 식품의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얼음결정과 냉동공정을 만들 수 있다. 더욱이 고압에서는 살균처리가 가능해 제품의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고 고압을 이용해 단백질을 변형시키면 의약품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근우 표준연 책임연구원은 “마리아나 해구처럼 고압 저온의 심해에서 사는 물고기, 툰드라의 혹한 추위에서 사는 생명체 등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화성에서는 탐사활동을 위해 방사능과 가혹한 온도를 견디는 얼음집이 제시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지구나 외계 행성의 극한 환경에 존재하는 물 또는 얼음의 형태를 예측하는 방법을 찾는 수단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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