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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0 16:25 수정 : 2019.10.11 09:28

영화 트렌센던스의 한 장면.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권오성의 세상을 바꾼 데이터]
신경과학 권위자 크리스토프 코흐
신간에서 설명하는 ‘의식이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의식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없는가

영화 트렌센던스의 한 장면.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조니 뎁이 주연한 영화 <트랜센던스>는 과격한 반-과학단체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이 연인의 도움으로 의식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고, 사람이 디지털 존재로 거듭났을 때 어떤 일이 빚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짜여져 있다. 영화는 주로 빛과 같은 컴퓨터 연산 속도의 날개를 단 사이버 인간이 점차 신과 같은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전 단계인 ‘인간 의식의 데이터화가 가능한가’부터 사실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가’, ‘과학이 인간의 마음을 다룰 수 있는가’ 등과 같은 심오한 물음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여러 흥미로운 논의들이 연달아 나와 소개하고자 한다.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디엔에이(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등과 함께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뇌와 뉴런에 대해 연구하는 신경과학적 접근을 해 온 학자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이 후원한 앨런 뇌과학 연구소(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의 소장을 현재 맡고 있다. 그는 지난달 <생명 그 자체의 감각>(The Feeling of Life Itself)이라는 새 책을 출간하며 <사이언스 살롱>(Science Salon)과 인터뷰를 통해 이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사이언스 살롱>은 유사과학을 낱낱히 파헤쳐온 과학 잡지 <스켑틱>(Skeptic)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이다.

고대인은 인간의 의식이 심장이나 간에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가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 의식이 뇌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신경과학 권위자인 코흐 역시 흥미로운 예로 이를 뒷받침한다. 예컨대 치명적인 뇌 질환 탓에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끊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경우다. 이런 수술을 받으면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의식이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 관측된다고 한다. 서로 독립된 좌뇌와 우뇌가 각각 다른 의식을 갖고 서로를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둘은 ‘아니, 내 몸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어’라고 여긴다. 이렇듯 물리적 기관인 뇌에 가해지는 작용은 우리의 마음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의식’은 뇌의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알려졌다시피 여러 사건과 실험을 통해 신경과학자들은 이미 뇌의 각 부분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해박한 신경과학자인 코흐는 <네이처>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가 어떤 현실을 경험하는지와 직접 연관이 있는 부위를 후측 피질(피질은 뉴런으로 이뤄진 뇌의 가장 바깥쪽 부위를 말하며, 후측은 머리 뒤쪽이다)로 좁힐 수 있지만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코흐가 새 책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의식이란 이런 물리적인 위치보다 더 개념적인 문제다. 우리가 ‘의식의 뉴런’을 찾아냈다 한들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의식의 뉴런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현재 우리의 과학 수준에서 이런 형태일 것이다. 과학자는 외부 관찰 또는 실험을 통해 특정 뉴런이 어떤 사람의 의식 활동을 할 때 치명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증명은 단지 외부의 관찰에 불과하다. 물리적 뉴런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의식의 뉴런을 찾는다 해도 알 수 없다. 이는 의식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반쪽 답에 불과할 것이다.

코흐가 책을 통해 설명하려는 의식이란 그 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었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시스템이 의식이라는 현상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만족스러운 과학적 이론은 무엇이 될 것인가’이다. 완전히 그 답에 도달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코흐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책 제목 <생명 그 자체의 감각>에 핵심이 담겨 있다. 코흐는 의식이란 뇌가 지각하는 모든 “경험 그 자체”와 같다고 본 것이다.

햇살 좋은 가을 날 공원 벤치에 앉아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 그 모든 정보를 뇌의 각종 부문을 통해 받아들이면서 나타나는 총체적이고 복잡한 기제가 의식이란 뜻이다. 즉 의식이란 내재적이고(대상에 대한 경험은 경험의 주인에게만 속해 있는 주관적인 것이다), 구조화 되어 있으며(공원, 벤치, 나뭇잎 등 지각된 정보는 서로 연결돼 있다), 종합적이다(경험은 총체적이기 때문에 정보를 각각 분리해서 의식을 새로 구성할 순 없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이런 정보들을 인과관계로 연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의식이 된다고 보았다. 이 이론을 ‘정보 통합 이론’(IIT·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이라 한다.

다소 모호한데 인간의 의식을 설명하는 라이벌 이론과 비교를 해보면 좀 더 명확하다. 라이벌 이론은 ‘전역 작업 공간’(GNW·global neuronal workspace) 이론이다. 코흐는 신경과학 분야에서 의식을 설명하는 중요 이론은 정보 통합 이론과 전역 작업 공간 둘뿐으로 본다. 어떤 일을 ‘무의식적으로 한다’라는 말이 있다. 별 신경쓰지 않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 따위 말이다. 전역 작업 공간 이론은 의식의 이런 특징과 잘 맞아 떨어진다. 즉 우리 뇌 속에 일종의 ‘무대’ 같은 것이 있다고 보고, 이 무대를 통해 의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기억이나 행동 등은 모두 우리 뇌 안에 있지만 늘 그것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전역 작업 공간 이론은 그것이 무대에 올랐을 때 그것을 ‘의식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인간의 의식이란 어떤 정보를 무대 위에 올려 뇌 속의 여러 다른 시스템에 전역적으로 방송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두 이론 사이 차이는 ‘인간 같이 의식을 지닌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입해 보면 분명히 나타난다. ‘전역 작업 공간’의 경우 답은 “그렇다”가 될 것이다. 이 이론에서 의식이란 특정 정보나 기능을 전체 시스템에 방송할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 한두 가지 일에만 전문적인(바둑을 잘 두는 알파고처럼) 인공지능이 여러 인지 기능과 기억 등을 갖추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인간처럼 자기 의식을 갖게 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정보 통합 이론’에서 답은 “아니다”이다. 이 이론에서 의식은 어떤 기능을 갖춘다고 형성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인과관계로 구성하는 총체적인 경험이 바로 의식이기 때문에 지금의 인공지능은 아무리 연산력이 더 높아지고 다른 기능이 붙는다 해서 이런 의식이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소한 코흐의 생각은 그렇다.

코흐는 이것을 ‘블랙홀’에 대한 비유로 설명한다. 어떤 뛰어난 물리학자가 은하계 중심에 있는 블랙홀을 완전히 설명하는 물리 법칙을 수학 공식으로 자신 책상의 종이 위에 써내려갔다고 하자. 그것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그는 공식을 완성하는 순간 자신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이란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공식을 쓴 종이일 뿐이다.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지게 되리란 우려도 마찬가지란 것이 코흐의 설명이다. 아무리 우리 의식의 공식을 완벽히 베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지라도 그것은 그 서술에 불과하다. 결코 ‘블랙홀’이 될 순 없다는 것이다.

*2편에 이어집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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