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2 17:02
수정 : 2019.10.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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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초상화 Justus Sutterman, Portrait of Galilei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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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의 세상을 바꾼 데이터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화 할 수 있을까 2편
“의식의 문제는 현대 과학의 한계”
과학에 의식을 포함하자는 고프의 범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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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초상화 Justus Sutterman, Portrait of Galilei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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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로 전환할 수 있을까 ①’에서 새 책을 낸 신경과학 분야 권위자인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 박사의 의식에 대한 이론을 중심으로 인간 의식에 대한 최근 논의에 대해 소개드렸다. 코흐 박사의 핵심 논지는 그의 책 제목처럼 의식이란 <생명 그 자체의 감각>(The Feeling of Life Itself)이란 것이다. 그에게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지능’(intelligence)과 ‘의식’(consciousness)을 서로 착오한 데에서 비롯된 만용이다. 퀴즈쇼나 바둑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기계는 있을 수 있다. 놀랍게 똑똑한 지능을 갖춘 기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계의 능력이 아무리 올라가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다 해서 의식이 생기진 않는다. 의식이란 경험에서 우러나는 내재적인 자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설명은 ‘의식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란 개념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의식의 어려운 문제란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가 처음 제기했다. 이는 ‘어떤 생명체들이 무엇을 느끼는 의식이란 것을 형성하는 특질이란 대체 무엇이냐’ 하는 문제다. 끓는 물에 사람의 손을 넣는 것과 온도기를 넣는 것은 다르다. 손은 엄청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물질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둘 사이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의식의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의식의 쉬운 문제’도 있을 것이다. 차머스는 쉬운 문제를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로 보았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 가속도는 중력가속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것을 느낄 때 그 감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우리 뇌를 관찰하면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손을 움직일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말을 할 때 어떤 뉴런이 번쩍하는지 등이다. 차머스는 하지만 이런 외적인 관찰로는 단지 뇌의 어떤 부분과 감각의 어디가 연결되어 있는지에 쉬운 설명을 할 뿐 우리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진짜 문제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앞서 끓는 물에 손을 넣는 것과 온도기를 넣는 것의 차이를 예로 들었는데, 손을 넣으면 피부에 어떤 영향이 있고 신경에 어떤 충격이 전달되는지 등은 쉽게 밝힐 수 있지만 이런 방법으로 그 인간이 느끼는 고통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의식의 어려운 문제’란 것에 의구심을 품는 학자들이 있다. 철학자 대니얼 대닛(Daniel Dennett)이나 신경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안(Stanislas Dehaene) 같은 이들이다. 이들에게 의식이란 일종의 ‘환상’이다. 우리의 신경 역시 우주를 관통하는 물리 법칙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일종의 기계에 불과하다. 의식이란 그 기계가 작동하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갖는 일련의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의식을 위한 별도의 법칙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최근 이에 완전히 반대되는 사고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단순히 인간의 의식을 위한 별도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정도가 아니다. 인간뿐 아니라 온도계도, 돌도, 세상의 모든 것이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고다. 만물에는 마음이 있다는 범심론(panpsychism)이다. 철학자 필립 고프(Philip Goff)는 지난 7월 <갈릴레오의 오류>(Galileo’s Error)라는 책을 내고 대범한 주장을 펼친다. 우리 과학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그것은 ‘의식’이라는 것이다. 전위적인 과학 단체 <엣지>(Edge)와 고프의 인터뷰에 의하면 현대 과학과 그것의 파생물인 기술은 모두 갈릴레오식 사고의 산물이다. 갈릴레오식 사고란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수학이라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 만이 과학의 세계에 해당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새로운 과학은 인류 역사에 혁명을 가져왔다. 이런 정량적 세계 해석은 굉장히 잘 들어맞아서 우리는 인간을 달에 보내고, 맞춤형 아기를 만들어내고, 인간을 뛰어 넘는 지능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현대 과학에게도 인간의 의식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고프는 풀지 못하는 이유가 현대 과학의 태생적 한계에 있다고 보았다. 즉 온전히 정량적 세계로 한정된 갈릴레오의 과학을 넘어 의식의 세계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과학이 필요하단 것이다. 그는 과학의 후기갈릴레오(Post-Galilean) 시대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시기의 과학은 관측으로 수치화하고 수학의 언어로 법칙을 구축할 수 있는 사물의 외부 세계뿐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내부의 의식 세계까지 자신의 영역에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물에는 뉴턴과 아인슈타인 식의 물리 법칙뿐 아니라 아직 설명되지 못한 내재적인 의식의 영역이 있으리란 것이 그의 추론이다.
그의 대범한 범심론이 과학을 신대륙으로 이끌지는 미지수이다. 그 조차도 만물에 내재하는 의식의 과학이란 어떤 형태가 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신경학자 크리스토프 코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런 주장을 점차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 의식의 데이터화는 인간 과학의 ‘의식’화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가능할지 모른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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