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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1 18:25 수정 : 2005.01.21 18:25

(상) 유해물질 작업장 르포

독한 황산·펄펄끓는 아연에 쇳덩이 넣고빼고

21일 오후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의 한 도금공장. 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쉴새없이 풍겨나오는 작업장에 들어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지독한 황산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따끔거리는 눈을 비벼봤지만 어두컴컴한 작업장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화학약품과 물이 뒤범벅된 작업장 바닥은 장마철 비포장 길처럼 질척거렸고, 덜컹이며 돌아가는 기계 사이엔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의 외국인노동자 세 사람이 바삐 움직였다. 볼트와 너트 등 기계부품을 도금하는 1층짜리 건물 30여평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5명. 한국인은 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다.

고무장갑 하나만 달랑 낀 이들은 황산이 담긴 통에서 금속 덩어리를 끌어올려 섭씨 400도가 넘는, 펄펄 끓는 아연 용광로에 담갔다 빼내는 위험천만한 작업을 반복했다.

▲ 21일 오후 유독가스가 뿌옇게 찬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 한 도금 공장에서 일하는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가 아연도금을 한 금속통을 힘겹게 들어올리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큰 눈을 껌벅이며 “눈~ 아파요, 잠잘 때도 밥 먹을 때도 황산 냄새가 나요”라고 말했다. 그의 소망은 역시 “돈 많이 벌어서 빨리 고향에 가는 것”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 단속을 피해 다녀야 하는 이들은 체포와 강제출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외출을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공장 근처에서 5~6평짜리 쪽방을 얻어 함께 생활하는 이들은 “늦은밤과 새벽을 이용해 공장에 드나든다”고 털어놨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면서 105만원을 번다는 파키스탄 노동자는 “재활용품 분류하는 야외 작업장에서 일했지만 단속이 심해져 어쩔 수 없이 무섭고 힘든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같은날 오전 경기 광주시 한 가구공장 담벼락. 베트남에서 왔다는 쯔롱(28)과 느그웬(29)은 작업복 깃을 올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과 머리에는 밀가루처럼 뽀얗게 톱밥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침 8시부터 11시간 동안 일하고 90만원을 받는 이들은 “남양주 피혁공장에서 일하다 자꾸 코피가 나고 피부병이 생겨 10개월 전 이곳으로 옮겼다”며 “여기서는 가슴이 자꾸 답답해져 엑스레이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애처로운 눈길을 던졌다. 2년 전 한국에 온 이들은 갖가지 제조공장에서 일했지만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아본 일이 없다고 했다.

노동부가 노말헥산 중독 사건 뒤 발표한 자료를 보면, 노말헥산 등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업체와 소음·분진 등이 심해 유해물질 취급업체로 분류된 업체는 2003년 말까지 모두 3만3598곳으로 나와 있다. 이 가운데 유해물질 노출정도가 기준값을 넘어선 곳은 무려 6547곳으로 조사돼 해당 사업장 5곳 가운데 1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각종 직업병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최재욱 교수팀이 2003년 벌인 시화·반월공단 외국인 노동자 고용 사업장 195곳의 안전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왜 어떻게 ‘죽음’에 내몰리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전체 사업장 절반이 넘는 54.4%(106곳)가 건강진단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반·특수 건강진단을 모두 실시한 사업장은 53곳(27%)이었다. 또 특수건강 진단을 한 사업장의 유해인자는 소음이 49.1%(26곳), 분진 32.7%(17곳), 화학물질 34%(18곳), 중금속 26.4%(14곳) 차례로 나타났다.

고려대의료원 안산병원 산업의학센터 박종태(44)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되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만성노출에 의한 각종 중독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산업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으면, 이들은 재앙에 가까운 질병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흥·안산/김기성 기자 rpqkfk@hani.co.kr


외국인산재 절반 절단사고

▲ 21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 주최 기자회견이 열려 참석자들이 타이 여성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의 정확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박티아르의 손가락은 여섯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박티아르(40)는 2002년 3월 경남 창원의 ㅈ공업에 출근한 첫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후 5시50분께 프레스 기계가 오른손을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는 “뼈가 으스러져 손가락이 종잇장처럼 돼 잘라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손가락 네 개를 잃었다.

전자감응식 안전장치도 설치하지 않은 회사가 산재 처리를 하지 않자 외국인 노동자단체의 도움으로 산재 신청을 해야 했다. 회사에 민사소송도 제기했지만 2년을 끌었다. 일도 할 수 없었다. 상담소 등지에서 생활하며 버티던 그는 지난해 9월 45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고 쓸쓸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경남외국인상담소 48% 차지
회사 산재신청 꺼려 실제는 더 심각

21일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가 2001년 초~2004년 9월 상담소를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산재·의료 상담 117건을 분석해 최근 낸 자료를 보면, 산재를 당한 노동자의 절반이 손가락 등의 절단 피해를 입었고, 3명 가운데 1명은 일한 지 한달도 안 돼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0~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의 표상이었던 ‘잘린 손가락’이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의 상징이 돼버린 셈이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 74명 가운데 36명(48.6%)이 손가락·손등·손목 등을 잘렸고, 찰과상(18.5%), 골절(12.1%) 등이 뒤를 이었다. 절단 피해를 입은 노동자 3명 가운데 2명은 프레스 기계를 다루다가 사고를 당했다. 상담소의 우삼열 실장은 “프레스 업체들이 전자감응식 등의 안전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키고 있지만 임금이 다른 업종보다 10% 정도 높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업체의 절반 이상이 안전교육을 하지 않고 있으며, 달마다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노동자는 8%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취업한 지 한달도 안 돼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28.3%에 이르고, 1~3개월과 3~6개월 사이에 산재를 당한 노동자도 각각 8.2%, 22.9%에 이른 것도 충분한 안전교육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투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산재로 승인을 받은 37명 가운데 회사가 스스로 산재 신청을 한 외국인 노동자는 1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상담소가 개입해 승인을 받았다. 우 실장은 “산재로 입원 치료를 받으면 회사에서 치료비만 줄 뿐 법에 따라 줘야 할 평소 임금의 70%도 주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손가락이 잘리는 정도는 업체에서 아예 산재 처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지난해 국정감사 때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에게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1~6월 산재 승인을 받은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가운데 절단은 87건으로 감김·삠(협착), 떨어짐(추락) 등보다 적지만 실제로는 절단사고가 광범위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박명혜 보좌관은 “손가락 절단 등은 대부분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아 은폐되고 있다”며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는 아주 심각하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산재로 숨진 외국인 노동자는 235명, 부상자와 질병자는 7419명이나 됐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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