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갯벌에서 한 여성 어민이 갈퀴로 동죽을 캐고 있다. 강추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새만금 갯벌에는 많은 맨손어민들이 나와 생명줄인 조개채집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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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계화리 어민들의 겨울나기 “돈 캐러 가세.” 지난달 31일 오전 썰물이 되자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어민들이 네댓명씩 짝을 지어 경운기에 올라탔다. 새만금 갯벌에 백합 조개를 채취하러 가는 길이다. 매운 갯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만 내놓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꽁꽁 동여맨 모습이 이슬람 전사 같았다. 두 아들 대학보낸 백합조개도 몇해몇달 반짝하더니
두 철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
다른 어산물 모두 사라진 뒤에도 마지막 남아준
주민 400명 명줄인데…
고압펌프로 바닥 훑는 저인망배만 드문드문
갯벌엔 불안이 감돈다 “이제 끝인가…” 고운 모래가 많이 섞여 제법 단단한 갯벌 여기저기에는 여성 어민들이 쪼그리고 앉아 갈퀴로 가무락조개를 캐는 모습이 보였다. 경운기는 30분쯤 덜컹거리며 갯벌을 달린 뒤 일행을 내려놓았다. 나뭇가지와 폐 그물로 지핀 모닥불로 몸을 녹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흩어져 ‘그레질’에 바쁘다. 경운기 타고 따달따달 갯벌로 그레는 사다리 모양의 전통적인 대합잡이 도구다. 그레의 밑바닥엔 폭 50㎝ 가량의 쇳날이 달려있어 어민들은 갯벌에 금을 긋듯이 뒷걸음질을 치며 그레를 끈다. 뻘 깊숙이 박혀있던 백합이 쇳날과 부딪히는 순간을 경험많은 어민은 놓치지 않는다. 예민한 부리로 갯벌 여기저기를 찌르며 조개나 게를 찾아내는 도요새와 비슷하다. 어민들은 백합이 그레와 마주치면 ‘딸깍’하는 맑고 큰 소리가 나고 동죽은 ‘벅’하는 둔한 소리를 낸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도 어민들은 연신 백합을 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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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 갯벌에서 24년째 맨손어업을 해 온 추귀례(48·여)씨는 조개 잡는 ‘기술자’로 통한다. “백합을 잡아 아들 둘을 대학공부 시켰다”는 그는 한달에 200만~3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물때만 맞으면 밤중에도 갯벌로 나간다. 그에게 바다는 “별 게 다 있는 곳간”이요 “젤로 행복한 직장”이다. 은금례(60·여)씨도 올 여름까지 보통 월 100만원, 못 잡아도 80만원의 수익을 백합으로 올렸다. 그는 “하루 대여섯 시간 일해 4만~5만원을 버는데,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렇게 벌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여성들 몫이던 조개잡이에 남성들이 끼어드는 것이 요즘 새로운 현상이다. 새만금 방조제가 거의 막히면서 남성들이 주로 하는 어선어업이 쇠퇴한 데다 수입이 꾸준한 갯일의 가치가 불경기에 더욱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흔히 생합이라고 부르는 백합은 귀한 조개다. 어민들은 백합을 잡으면서 “이건 (㎏에) 4500원짜리, 저건 5천원짜리”라고 할 만큼 하나하나가 제법 돈이 된다. 백합은 새만금 어민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국 백합 생산량의 약 80%가 새만금 갯벌에서 나온다. 백합의 주산지인 계화리 어민 약 400명이 백합에 “목을 매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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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교육과 생계를 이어가는 든든한 뒷받침이 돼 온 백합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다른 어산물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몇 년간은 백합이 전보다 많이 나오고 있다. 계화리 어민 박영만(42)씨는 “4호 방조제가 막히면서 해류와 갯벌 지형이 급변하고 염도가 바뀌었는데도 백합이 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어민은 최근 어린 백합이 급증한 것을 들어 멸종을 앞둔 백합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올 겨울 백합 채취량은 지난 여름보다 3분의 1 이하로 떨어져, 어민들이 “이제 끝인가”하며 불안해 한다. 불법어업 ‘펌프배’ 개펄 싹쓸이 방조제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새만금에는 자포자기식 어업이 횡행하고 있다. 계화포구에는 20여척의 소형기선저인망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이 배들에는 불법으로 개조한 고압펌프가 실려 있었다. 고압의 바닷물을 갯벌바닥이 1~2m 깊이로 패이도록 뿜어 떠오른 개불과 어린 백합 등을 그물로 건지는 무자비한 어법이다. 이런 펌프배를 막기 위해 다른 어민들은 갯벌에 쇠말뚝을 박아놓아 갈등이 일기도 한다. 펌프배를 타는 한 어민은 “해선 안되는 어업인줄 안다”며 “어차피 사라질 바다에서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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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 어민처럼 일인당 300만~800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황금갯벌’을 내놓은 맨손어업 어민들은 새만금에 2만여명이나 된다. 겨울 백합은 뻘 깊이 숨어있어 그레질이 더 힘들다는 이화분(65·여)씨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새만금이 다 막히면 우린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어.” 부안/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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