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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바키타돌고래는 민어과 생선인 토토아바 그물에 걸려 사라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만 바다 위에 떠오른 바키타돌고래. 시셰퍼드 미국/로비 뉴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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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셰퍼드’ 캠페인 현장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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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바키타돌고래는 민어과 생선인 토토아바 그물에 걸려 사라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만 바다 위에 떠오른 바키타돌고래. 시셰퍼드 미국/로비 뉴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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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의 바키타돌고래 보전 활동에 국내에서 활발한 글·디자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한민 작가가 지난 1~4월 참가했다. 내년 출범을 목표로 시셰퍼드 한국 지부를 준비하는 그가 글을 보내왔다.
해외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키타’(
Phocoena sinus)라는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스페인어로 ‘작은 소’를 뜻하는 이름처럼 몸길이가 1.5m를 넘지 않는 이 작고 통통한 이 돌고래는, 멕시코의 캘리포니아만 북부에만 서식하는 토착종으로 다른 돌고래보다 사회성이 낮아 여간해서는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996년부터 심각한 멸종위기 동물로 분류되었다가 급기야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해양 포유류’라는 안타까운 타이틀이 주어진 바키타. 이제 서른 마리도 채 남지 않은 멸종위기 중의 위기종을 한번 구해보겠다고 나선 환경단체 시셰퍼드(Sea Shepherd)의 선박에서, 나는 3개월간 자원봉사 선원으로 활동했다.
이 배의 승무원 중 아시아인은 내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받는 질문의 팔할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인이 어쩌다가 이렇게 먼 곳까지 왔어요?” 시셰퍼드의 인사 담당자도 지난 40년간 이 단체를 거쳐간 온갖 나라 사람들 중 한국인 지원자는 처음이었다고 하니 신기할 법도 하다. 이번 질문자는 <시엔엔>(CNN)에서 온 기자다. 우리의 바키타 살리기 캠페인은 <뉴욕 타임스> <알자지라>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세계 유수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여러 차례 반복으로 이미 준비가 된 대답을 읊는다.
“일단 그물부터 없애고 보자”
“알다시피 과학자들이 20년 전부터 경고했다, 보호구역에 밀어꾼들이 쳐놓는 그물 때문에 바키타가 죽어간다고. 모두 말만 할 때, 시셰퍼드가 ‘직접행동’ 단체답게 두 팔 걷고 뛰어들었다. 일단 그물부터 제거하고 보자! 그 행동력에 마음이 움직여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내가 봐도 너무 일반적인 대답이다. 기자의 표정도 만족스럽지 않다. 질문의 방점은 한국인에 찍혀 있었다. 국제 환경단체라고는 해도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미주 지역 사람들 일색인데 웬 한국인이냐는 속뜻. 나는 부연설명을 했다.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 ‘바키타’
한약재로 쓰이는 민어과 생선인
‘토토아바' 잡는 그물에 죽어나간다
군사용 돌고래 훈련시켜 생포 계획도
‘샘 사이먼 호’ 탑승해 그물 수거했다
회수한 것만 20㎞, 축구장 190개 길이
바다사자, 가오리 사체도 떠오른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을까?
“밀어꾼들의 표적은 바키타가 아니다. 그들은 ‘토토아바’라고 하는 민어과의 큰 생선을 노린다. 토토아바 역시 어획이 금지된 멸종위기종이지만, 그 부레가 중국과 홍콩에서 한약재로 거래된다. 품질이 좋은 것은 킬로그램당 2만달러에 이를 정도라 ‘바다의 코카인’이라고도 불린다. 토토아바 사냥으로 한밑천 잡으려는 어부들의 그물에 바키타까지 혼획을 당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환경문제, 특히 해양 환경문제는 국경을 초월한다. 나는 중국이나 홍콩에 살지도 않고 토토아바 부레를 산 적도 없지만,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최소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편에 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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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셰퍼드 샘 사이먼호에 탑승한 김한민 작가가 그물 수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시셰퍼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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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이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엉뚱하게도 초·중·고 시절 생활기록부가 떠올랐다. 특기할 사항이 없던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매 담임마다 똑같이 언급하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이 학생은 책임감이 강한 편이다.” 왜 그런 평가가 나왔는지 짐작이 간다. 청소 하나는 정말 꾸준히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보통 애들이 딴전을 피우며 놀 때 나는 성의껏 바닥을 쓸었다. 그러다가 내 인생의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방과 후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은 마음에 딱 하루만 도망을 치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땡땡이’도 쳐본 놈이 잘 친다더니, 하필 줄행랑 도중에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과 딱 마주쳐 혼쭐이 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요령을 피워서 될 놈은 아니구나! 또, 나는 청소로부터 도망가지 못할 팔자구나.
그러던 내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멕시코 바다의 청소부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청소차, 아니 ‘청소선’은 샘 사이먼(Sam Simon)호로, 미국의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 <심슨스>의 제작자 샘 사이먼의 기부로 구입한, 길이 55m, 폭 9m의 700t급 내연기선이다. 세계 약 15개국에서 온 스물일곱명의 선원들이 탑승해 있다. 우리의 임무는 이곳 바다의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장 무자비한 쓰레기, 그물을. 새것이든, 헌것(이른바 ‘유령그물’)이든 이 그물 때문에 바키타를 비롯해 고래, 돌고래, 바다사자, 가오리 등 온갖 바다생물이 무차별하게 죽어나가고 있다.
나는 바다뿐만이 아니라, 배 내부의 청소도 자진해서 도맡았다. 적성에도 맞고 청소시간만큼은 머리를 비울 수 있어서 자원한 것뿐인데, 의도치 않게 동료들로부터 “궂은일도 마다치 않는 사람”이라는 신망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일석삼조였다. 물론 청소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 정식 직함은 ‘쿼터마스터’(갑판수)였다. 함교(조종실)에서 선장과 항해사를 보조해 당직을 서고, 레이더를 통해 바키타 보호구역 내의 불법 어업 행위를 발견하여 멕시코 해경과 연락을 취하고, 지역 야생동물에 관한 기록을 하는 역할이다. 그러다 그물이 발견되면 갑판에서 회수 및 분리 작업을 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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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채 떠오른 바키타돌고래. 시셰퍼드 미국/로비 뉴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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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키타돌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 중 하나다. 물 위로 떠오른 바키타돌고래 사체. 시셰퍼드 미국/로비 뉴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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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사이먼호 자원봉사자들의 일상은 어부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그물 속 생선이 아닌 그물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매일 그물과 씨름하고 몸에서는 생선 냄새가 가실 날이 없다. 그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견되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주말도 없는 교대근무 체제다. 자기 집에서는 늦잠을 자던 이들도 이 배의 분위기 속에서는 예외 없이 부지런해진다. 나도 매일 아침 세시 반에 일어나야 했는데, 동료들은 일출을 볼 수 있는 황금시간대 당직이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유일한 ‘휴가’는 폭풍이 올 때뿐이다. 풍향계가 30노트 이상을 찍기 시작하면 우리는 센 바람을 가려줄 적당한 곶을 찾아 닻을 내리고 쉰다. 이런 날씨라면 밀어꾼들도 활동할 수 없다. 단, 주방에 소속된 선원들은 폭풍이 와도 못 쉰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어떻게든 요리를 해내야 하니, 가장 힘든 부서가 아닐까 싶다. 배의 모든 음식은 완전 채식, 즉 ‘비건’으로 제공된다. 한 동물을 살리면서 다른 동물을 먹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공감대가 있다. 생선은 물론 치즈, 달걀, 꿀도 안 먹지만 솜씨가 훌륭한 베테랑 주방장 덕분에 3개월의 선상생활 중 한 번도 식사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닻을 내리는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마음 한쪽이 편치 않다. 지금 이 순간도 바닷속 어딘가에서 바키타 한 마리가 유령그물에 걸려 죽어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방치하면 어부들도 죽는다
그래도 매일같이 부지런히 청소한 덕분일까? 캘리포니아만의 바키타 보호구역 안이 조금은 깨끗해진 것 같기도 하다. 샘 사이먼호가 회수한 그물만 해도 일렬로 늘어놓으면 약 20킬로미터. 축구장 190개에 달하는 길이다. 시셰퍼드의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 즉 3~4년 전만 해도 배가 가는 곳마다 그물로 덮여 있어서 종종 프로펠러와 뒤엉킨 그물을 끊어내느라 잠수사들이 애를 먹곤 했는데, 확실히 전보다는 그물을 발견하는 빈도가 줄긴 했다. 그러나 밀어꾼들은 여전히 해경과 우리의 감시가 느슨해지는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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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코카인’이라고 불리는 토토아바. 중국에서 한약재로 쓰이면서 고가에 거래된다. 시셰퍼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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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아바 그물에는 바다사자도 희생된다. 부패해 떠오른 바다사자들. 시셰퍼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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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셰퍼드가 떠나면 또다시 이곳이 ‘그물밭’이 되리라는 것을. 그렇다고 우리가 영원히 여기 머물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한 풀뿌리 운동이 벌어지고, 환경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나 자기 고장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내가 만나본 멕시코 어부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한쪽으로는 자국의 수산자원과 종 다양성 보호를 위해, 다른 한쪽으로는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에 보호구역 내의 그물 어획을 금지시키고 어부들을 위한 보상 프로그램을 실시하긴 했으나, 멕시코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관료주의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는 것. 불법행위 단속이 헐거워 구속돼도 처벌이 흐지부지되거나 뇌물수수가 빈번해 법을 준수하는 ‘착한 어부’들만 손해 보는 구조다. 진짜 어부는 멸종위기종을 잡지 않는다고, 우리가 문제의 원인은 아니라고 어부들은 입을 모아 항변한다.
파고들수록 문제는 복잡해진다. 큰돈이 오가다 보니 카르텔(마약 범죄조직)까지 개입해 중간 브로커들이 어부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밀어 행위를 조직한다. 어부 입장에서는 큰돈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무언의 압력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가 붙잡혀도 처벌은 ‘피라미’들이 받을 뿐 ‘몸통’은 건재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수산자원의 보고인 이 지역의 어획고가 격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키타돌고래의 보호를 차치하고라도, 이곳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되고 수많은 어부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소노라 북서생물조사센터 팀이 인근 지역 어민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과반수가 관광업 등 다른 직업군으로 바꿀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 작은 돌고래를 둘러싸고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취재차 우리 배에 탑승했던 멕시코의 한 일간지 기자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바키타 이슈에는 멕시코의 모든 문제가 함축되어 있어서 만약 이걸 풀 수 있다면 ‘멕시코라는 문제’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물론 이는 멕시코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만큼 과학과 기술과 지식의 진보를 이뤄냈다고 자랑하는 인류가 이 작은 돌고래조차 살리지 못한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양쯔강돌고래의 멸종도 알고도 막지 못했는데 바키타마저 놓친다면 그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다급해진 국제바키타보존팀(CIRVA)은 최후의 방법을 추진 중이다. 미국 해군이 보유한 군사작전용 돌고래를 훈련시켜 바키타를 찾아내고 생포해 인공적인 환경에서라도 보호하겠다고 발표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프로젝트라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생포 계획이 오는 10월로 예정되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과거 폴리네시아인들은 ‘카푸’(금기)라는 제도를 두어 카푸 기간 함부로 어획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고 한다. 물론 과격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테러’를 자행했다고 가정하자. 당연히 당장 체포되거나, 총을 쏴서라도 저지될 것이다. 수백만년의 진화를 거쳐 탄생한 자연유산이, 화가들이 남긴 문화유산보다 덜 소중할 이유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한번 자문해보자. 지구인, 아니 지구 생명체 모두의 운명이 걸린 바다와 산림을 멋대로 파괴하고 사익을 챙기는 행동이야말로 과격하지 않은가?
사체로 발견된 어미와 새끼
배에 탑승한 지 석달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 아침, 제보를 받았다. 바키타 두 마리가, 불행히도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 젊은 암컷 한 마리와 난산한 새끼다. 아, 이제 서른 마리도 채 안 남은 것인가? 초조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좌절스러운 마음에 나는 독일에서 온 동료 선원 카롤리나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넌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 그녀는 대답했다. “나에겐 희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냐.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지 그게 문제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부터 딱 십년 전,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만명의 자원봉사자 중 한명으로 미끌거리는 돌의 기름을 닦던 그때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변화의 편에 서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 그럼으로써 서서히 변화 그 자체가 되어가는 것.
김한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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