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13 21:22
수정 : 2017.08.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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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의 반달가슴곰 야생적응훈련장에서 야생에 적응해가는 반달가슴곰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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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종복원 위해 방사된 3살 반달곰
인간이 정해준 ‘금단의 선’ 벗어나
90㎞ 떨어진 김천까지 2차례 외출
활동성 너무 강한 죄로 자유 박탈
“안전 없는 복원사업 중단” 주장에
“이동자유 인정해 석방” 목소리도
복원 추진 정부·국립공원공단 곤혹
“야생서 위험없는 안전 요구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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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의 반달가슴곰 야생적응훈련장에서 야생에 적응해가는 반달가슴곰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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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 바깥 세상이 궁금했던 한 어린 반달가슴곰의 모험에 지리산 반달가슴곰 종복원사업을 시행하는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2015년 1월 지리산 국립공원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중국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지리산에 방사된 3살 된 수컷 반달곰 KM-53이 그 주인공이다. 이 곰은 국립공원공단이 지도에 그어놓은 경계선을 두차례나 넘어 허락되지 않은 지역인 경북 김천 수도산까지 이동했다가 자유를 잃고 갇힌 몸이 됐다.
그가 지리산에서 90㎞ 떨어진 수도산까지 이동하는 동안 이동경로 지역 주민들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시민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 복원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또 다른 환경단체는 “새로운 삶터를 찾아나선 반달곰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석방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2004년부터 본격 시작된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자평하던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난감하게 됐다.
조사를 위해 수도산에서 KM-53을 처음 포획했을 때 “반달가슴곰 서식지의 자연적 확대 가능성이 확인됐다”며 반기며 지리산에 다시 풀어줬던 환경부와 공단은 두 번째는 ‘회수’라는 표현으로 잡아들여 지리산 야생적응훈련장에 가뒀다. 곰 복원사업이 오래 진행돼 지역주민들의 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밀렵 위협이 없는 지리산과 달리 KM-53이 이동한 지역에서는 곰의 안전은 물론 인간과의 마찰도 우려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립공원공단의 ‘반달가슴곰 종복원 매뉴얼’은 방사 곰의 회수 조처는 사람에게 위협이 되거나 야생적응 가능성이 없는 개체를 격리할 목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KM-53이 누구에게 위협이 됐을까? 이 곰은 지난 6월 수도산에서 숲가꾸기 작업자들의 눈에 한번 띄었을 뿐 지난달 두번째 이동 과정에서는 인적이 드문 시간대에 산줄기를 따라 이동해 사람과 아예 마주치지 않았다.
90㎞가 넘는 거리를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이동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야생적응성은 이야기할 것도 없다. 포유류 전문가인 한성용 박사(한국수달연구센터 소장)는 “KM-53이 수도산까지 간 것은 지리산에 서식하는 어느 반달곰보다도 야생에 잘 적응했고 활동적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갇히게 됐으니 곰한테는 참 억울할 일”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KM-53을 회수하고 나서야 “향후 이동경로 관련 지자체와 함께 서식지 안정화, 주민 홍보활동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리산 반달곰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야생성이 강화되면서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는 곰들이 나올 것은 당연한데도 복원사업 14년 동안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다. 2011년 작성된 환경부의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변경계획’은 2020년까지 지리산에 반달곰을 자체 생존이 가능한 50마리까지 증식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을 뿐 증식 목표 달성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환경부는 심지어 지리산의 생태환경을 고려한 반달곰 적정 개체수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다. 노희경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적정 개체수가 얼마인지는 현재 종복원기술원에서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지리산국립공원이 넓지만 탐방로로 잘게 쪼개져 서식 여건이 썩 좋다고 할 수 없다”며 “KM-53은 탐방로를 폐쇄해 조각난 서식지를 합치는 등 곰 서식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최소존속개체수 목표에 초점을 맞춰 곰들이 지리산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두는 식으로 관리한 것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반달곰 복원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27개 노선 197㎞였던 지리산국립공원의 탐방로는 현재 52개 노선 총연장 233.7㎞로 늘어나며 곰 서식지를 더욱 잘게 나눠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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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4일 경북 김천 수도산 숲가꾸기 작업현장에 나타난 지리산 방사 반달가슴곰 KM-53. 생명의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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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선을 넘어간 것이 KM-53 혼자만일까? 국립공원공단이 지리산에 서식한다고 밝힌 반달가슴곰 47마리 가운데 실제 무선발신기가 정상 작동하는 개체는 20마리에 불과하다. 위치추적이 되지 않는 나머지 곰들 가운데 곰관리경계선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넘나드는 개체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종복원기술원 반달곰 관리 담당 김정진 팀장은 “곰들의 야생성이 강해지면서 발신기 부착과 교체를 위한 포획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곰의 모근을 채취해 유전자 분석을 할 수 있는 헤어트랩이나 무인카메라 등을 이용해 정확한 위치는 아니라도 서식 유무는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치추적이 불가능한 개체들의 행방을 모두 찾아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는 반론도 있다. 발신기 정비를 위해 곰의 포획과 방사를 반복하는 것이 곰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달곰 복원사업 초기 국립공원공단 반달곰관리팀을 이끈 한상훈 박사(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는 “사람에게 혹시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47마리를 다 추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민 사이에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큰 수컷을 포함한 10마리 내외의 대표적 개체와 수도산에 간 개체처럼 멀리 분산하는 개체들만 자료 확보를 위해 추적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반달곰 복원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일부의 요구는 야생생물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근본 문제를 건드린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윤주옥 실행위원장은 “지리산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달곰이 새끼를 가졌을 때는 조심해야 되지만 그렇게 위험한 존재는 아니고 영리해서 먼저 피한다고 한다. 이런 경험담이 반달곰의 특성이다. 안전문제 때문에 KM-53을 가둬야 한다면 종복원 사업은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성용 박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옛날 우리에게는 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지금도 곰이 많아 누구도 혼자 산에 잘 가지 않는다. 산은 조심해야 할 곳이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 곰을 복원하면서 곰이 없는 상태의 안전개념을 요구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자연적응훈련장에 가둔 KM-53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17일 열리는 반달곰 복원사업 워크숍 참석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개체가 못 가진 모험심을 지녔던 탓에 자유를 빼앗긴 반달곰이 다시 자연 속에 풀려나게 될지, 보호시설에 계속 갇혀 사는 운명을 맞을지 주목된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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