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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5 16:06 수정 : 2018.04.05 19:12

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아파트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장의 모습.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한국,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2위
동시에 폐기물 재활용률도 세계 2위
시민들 ‘피로감’ 고려해 제품 생산자와
공공이 쓰레기 부담 분담하는 정책 필요

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아파트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장의 모습.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1.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사는 ㄱ(34)씨는 지난달 31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집하장을 찾았다가 관리소 쪽으로부터 “비닐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돌아와 기사를 검색해보니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은 폐기물 관리법 위반으로 과태료 대상’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비닐 쓰레기를 재활용으로 버릴 수도 없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서도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연립주택에 사는 ㄴ(37)씨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말 1층에 사는 ㄴ씨의 집 앞 쓰레기 수거장에는 재활용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보통은 금요일에 수거해 가는데 어째서인지 이번 금요일에는 재활용을 하나도 수거해가지 않았다”며 “기사를 찾아보니 ‘재활용 대란’이라고 하더라. 월요일에 수거해가기까지 집 앞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어 무척 불쾌했다. 종량제 봉투를 사서 쓰고 재활용까지 분리해 버리는 입장에서 (쓰레기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인이 쓰레기 배출에 대해 느끼는 피로감은 어느 정도일까요? 종량제와 분리수거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국인의 쓰레기 배출 부담은 외국과 견주면 상당한 수준입니다. 한국은 1995년부터 전국 단위로 종량제를 실시했고, 2013년부터는 음식물 쓰레기마저 별도로 분리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정확히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요.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 시행 이전에는 환경부가 건물면적과 재산세 등을 과표로 쓰레기 처리 수수료를 징수했습니다. 하지만 시행 이후 ‘오염자 부담 원칙’ 또는 ‘배출자 부담 원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 드라이브를 걸게 됐습니다.

사실 이렇게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당시에도, 지금도 흔치 않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 환경자원연구부장인 오길종 연구관은 5일 “종량제는 당시의 상황과 우리 국민의 의식 등을 고려한 정책”이라며 “전국 단위로 종량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닐 포장의 과다사용, 좁은 국토에 견주어 많은 인구 등 한국과 사정이 가장 비슷한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방식의 ‘쓰레기 유료화’ 정책을 시행중입니다. 다만 일본은 이를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시행하고 있고, 대도시는 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도쿄 23구와 오사카 요코하마 등은 아직 종량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생활 9년차에 접어든 일본인 ㄷ(43)씨는 “내가 살았던 곳은 쓰레기 처리 비용을 주민세에 포함시켰다. 한국에 와서 돈을 주고 지정 봉투를 사서 쓰는게 낯설긴 했지만, 일본에 견줘 상대적으로 주민세가 싼 편이라 부당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쓰레기 배출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후진국인 미국의 상황은 더 안 좋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지자체 단위로 버린 만큼 돈을 내야 하는 ‘쓰레기 계량부담제(PAYT, pay as you throw)’를 시행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대다수의 대도시는 이런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뉴욕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ㄹ(26)씨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종량제는 물론 분리수거의 개념도 익숙하지 않았다”며 “(미국에선)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시는 지난 2월 쓰레기 계량부담제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폐자원의 에너지 변신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10일 오전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30회 국제환경기술전'에서 관람객들이 한국환경자원공사 부스에서 폐자원이 고형연료제품(RDF/RPF)으로 변신한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민간에 맡긴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공공에서 맡아야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아파트의 경우엔 쓰레기 배출에 대한 주민들의 피로감이 더 큽니다. 단지 별로 다르지만, 대개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가운데 특정한 날을 정해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합니다. 상시 배출을 하기엔 집하장의 크기가 충분치 않고, 쌓아 두면 보기에 좋지 않으며, 악취도 난다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야근을 하다가 쓰레기를 버리러 가야 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집니다. 서울 양평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ㅁ(37)씨는 “솔직히 분리수거를 하는 게 꽤 큰 스트레스다. 우리 단지의 경우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일주일에 18시간 동안에만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데 이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야근을 하다말고 퇴근한 적이 있다”며 “그렇지 않은 단지도 있겠지만, 우리 단지의 경우 재활용을 분리수거하는 동안 관리인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은 개별 업체와의 계약이나 단지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민간의 영역이지만, 국민 다수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정부가 살펴봐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비닐 쓰레기 수거 거부 사태의 본질 역시 아파트 거주 인구가 50%를 웃도는 한국만의 고유한 주거 상황과 맞물려 있습니다. 단독 주택의 재활용 쓰레기를 지자체에서 수거해 처리하는 것과 달리 아파트 단지들은 민간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재활용품을 팔고 있습니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폐기물 처리 업체들은 그동안 페트병, 폐지, 고철 등 다양한 재활용품을 팔아 이익을 얻었는데, 시장 상황이 급변하면서 비닐과 플라스틱의 채산성이 떨어지니 수거를 그만둔 것”이라며 “그동안 폐비닐의 90%는 열병합발전소 등에서 사용하는 고형연료(SRF)를 만드는 데 쓰였는데,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정부가 고형연료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자 판로가 막힌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아파트도 재활용 쓰레기 처리를 지자체 등 공공 기관에 맡기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시민 부담을 공적으로 나누면서 ‘쓰레기 피로감’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시민에게 전가하는 ‘쓰레기 피로감’, 생산자도 분담해야

한국인의 ‘쓰레기 피로감’은 통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지만, 폐기물 재활용률 또한 세계 2위 수준입니다. (▶관련 기사 :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한국이 세계 2위인 거 아셨나요) <경향신문>이 인용한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폐기물 재활용률은 59%로, 65%인 독일 다음입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많이 쓰는만큼 또 열심히 분리해 버리고 있다는 얘깁니다.

문제는 플라스틱을 사는 데도 버리는 데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로 먹거리마저 인터넷으로 사는 직장인 ㅂ(37)씨는 “장을 한 번 보면 김장 비닐 봉투로 한가득 재활용품이 쌓인다”며 “특히 냉장 배송의 경우 스티로폼이나 보냉제가 잔뜩 나오는데 그걸 처치하느라 또 시간이 든다. 시간이 모자라 배송을 시키는데, 과대포장으로 인한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또 시간이 드는 각박한 삶의 패턴이 반복된다”고 밝혔습니다.

신수연 녹색연합사회팀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현재 소비자들로선 선택지가 없다. 소비자들의 인식을 개선해 플라스틱 따위의 사용을 줄이고 분리배출을 하도록 한다 해도, 제품 생산과 유통 단계에서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기업의 변화를 끌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명예연구원인 이희선 박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은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종량제는 매우 성공적인 정책이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고 본다”면서도 “유료화의 큰 줄기를 뒤흔드는 건 힘들겠지만 쓰레기 배출에 따른 피로감을 연구하고 이를 중심으로 정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 온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생산자에게 폐기물 처리 책임을 물리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방향의 대표적인 정책이 생산자재활용책임제(EPR)인데요. 지난 2일 환경부는 상품 생산자에게 돈을 거둬 재활용업체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수거 후 잔재물 소각 비용을 생활폐기물 수준(t당 4만∼5만 원)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이 계획이 생산자재활용책임제를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산자재활용책임제를 가장 잘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독일에선 생산자들이 미리 재활용이 쉬은 포장 제품을 만들어 내놓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페트(PET)병으로,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몸통은 물론 뚜껑까지단일 재질로 만든다고 합니다. 중국이 용기·뚜껑·라벨 재질이 제각각인 한국 폐기물 수입은 꺼려하면서도 독일 폐기물은 쉽게 받아주는 이유입니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이제는 생산자에게 책임을 두는 쪽으로 강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며 “생산과 유통단계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하고, 재질 개선과 함께 소비자가 분리 배출용인지 눈에 잘 보이도록 표시를 강제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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