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이 보이는 유리 안에서 같은 곳을 오가며 정형 행동을 보이던 퓨마. 오월드 사육사는 “한정된 공간에 있다 보니 동물원에 있는 개체들은 이런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 박다해 기자
2010년 태어나 2013년 대전오월드로 온 ‘뽀롱이’
“사람 안전 최우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성급한 대응”이란 비난여론 계속돼
동물원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 남겨
동물권단체 “동물원 개체 수 조절하고 새 설립허가 말아야”
관람객이 보이는 유리 안에서 같은 곳을 오가며 정형 행동을 보이던 퓨마. 오월드 사육사는 “한정된 공간에 있다 보니 동물원에 있는 개체들은 이런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 박다해 기자
“어제 뉴스에 나온 그 퓨마야.”, “사납게 생겼네.”
19일 오후 대전 중구 사정동 대전오월드는 가을 소풍을 나온 아이들과 가족들로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일부 관람객들은 퓨마 방사장 앞에 서서 삼삼오오 구경했습니다. 전날 있었던 퓨마 뽀롱이 사살 사건 때문인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 섞인 대화가 오갔습니다.
이때 퓨마 한 마리가 우물이 있는 보조 방사장에 모습을 보인 뒤 목을 잠깐 축입니다. 사살된 뽀롱이의 새끼로 아들 ‘황후’ 아니면 딸 ‘해라’로 추정됩니다. 목을 축인 퓨마는 관람객과 맞닿아 있는 유리 앞에서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오갑니다. 한 언론에서 어미를 잃은 것이 원인이라고 봤지만, 사실 갑자기 나타난 특이현상이라기보단 한정된 공간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정형 행동입니다. 관람객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니던 퓨마는 이내 주 방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잠들어있던 다른 가족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 버립니다. 대전오월드에는 뽀롱이 가족 퓨마 세 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야행성인 퓨마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고 합니다.
■ 2013년 서울에서 대전으로 온 엄마 퓨마 ‘뽀롱이’
대전오월드의 퓨마 우리는 주 방사장과 보조 방사장이 철제다리로 연결돼있는 형태입니다. 주 방사장의 크기는 639제곱미터(㎡), 약 193평이고 보조 방사장은 그 절반가량입니다. 숲 속에 살고 나무타기도 잘하는 퓨마의 특성을 고려한 듯 곳곳에 통나무 다리도 놓여 있습니다.
2010년 8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암컷 퓨마 ‘뽀롱이’가 이곳에 온 건 2013년 2월입니다. 같은 어미로부터 태어난 퓨마끼리 근친교배를 하면 열성 유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서울대공원과 맞교환했습니다. 대전에서 자라는 6년 동안 ‘뽀롱이’가 별다른 이상행동을 하는 일은 없었다는 게 오월드 쪽의 설명입니다.
18일 저녁 사살된 ‘뽀롱이’가 떠난 뒤 현재 이곳에 남은 퓨마는 3마리, 아빠인 ‘금강’(2001년생)과 아들 ‘황후’(2014년생), 딸 ‘해라’(2014년생)입니다. 퓨마, 재규어 등 중형 육식동물을 담당하는 오월드의 한 사육사는 “아들, 딸 퓨마 둘 다 성수(다 자란 짐승)다 보니 어미를 그리워하거나 우울해 하는 등 특이점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평소처럼 밥도 잘 먹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보조 방사장에서 정형행동을 보이는 점에 대해선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그는 “방사장이 수천평 되지 않는 이상 야생보다 한정된 사육공간에 있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을 순 없다”며 “(퓨마뿐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개체치고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 개체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대전오월드에는 138종 940마리의 동물이 있습니다.
대전오월드의 퓨마 방사장 모습. 철제다리를 중심으로 주 방사장과 보조 방사장이 나뉘어 있다. 사진 박다해 기자
그렇다면 ‘뽀롱이’는 정말 사살이 최선이었을까요. 사육사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사육사는 “퓨마가 동물원 우리 안에서 자랐으니 (상대적으로) 순치가 잘 돼 있는 편”이라면서도 “우리 밖에선 맹수로 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퓨마는 캐나다 북부부터 남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돼 사는데,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덮쳐서 죽는 사고도 일어날뿐더러 100㎏이 넘는 ‘과나코’란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정도의 맹수란 설명입니다.
동물이 탈출했을 때 ‘탈출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단지 그 매뉴얼도 오롯이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돼있을 따름입니다. 사육사는 “동물원별로 탈출 대응 매뉴얼은 거의 다 구비돼 있다. 최초 발견부터 관람객 대피, 119나 경찰서, 군부대의 도움 요청, 상황에 따른 조치까지 명시돼있다”며 “관람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 생포냐 사살이냐를 결정한다. 변수가 워낙 많아서 어떤 방법이 우선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대전오월드를 운영하는 대전도시공사의 설명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사살할 생각은 아니었다. 재마취도 시도하려 했으나 사정거리가 멀었다. 생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기울였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피아 구분도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매뉴얼에 따라 마지막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공사 관계자는 “사살한 것에 대해 비난하시는 것도 감당하고, 저희가 책임질 일이 있다면 그것도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는데 ‘시민 안전’이란 큰 원칙을 넘어서면서까지 보호할 순 없었다”고도 말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판단을 내린 결과란 설명입니다.
2016년 5월28일 미국 신시내티동물원에서 한 어린이가 울타리 밑 해자로 떨어지자, 고릴라 하람베는 10분 뒤에 사살됐다. 유튜브 갈무리
■ 도심 내려온 퓨마 생포한 캐나다 vs 고릴라 ‘하람베’ 총살한 신시내티동물원
그럼에도 “사살은 과했다”는 시민들의 비판이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우리에서 탈출을 하고도 별다른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은 채 동물원 내부에 머물러 있었는데도 사살을 선택한 건 너무 성급한 결정 아니었냐는 겁니다. (▶관련 기사: 원내서 발견됐는데…퓨마의 안타까운 죽음)
뽀롱이 사살 사건을 3년 전 캐나다 빅토리아 지역에서 있던 퓨마 생포 사건과 견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2015년 주민들이 거주하던 빅토리아 도심으로 내려온 퓨마는 마취총을 맞고 생포됐다가 다시 야생으로 방사됐습니다. 당시 상황을 전한 <씨티브이뉴스>를 보면, 야생환경보호 책임자였던 피터 파웰은 “퓨마를 진정시킬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사살보다) 마취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며 “인근 야생에 살던 퓨마가 도심으로 내려오면, 그들은 겁을 먹고 탈출구를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를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캐나다와 한국의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2016년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발생한 고릴라 ‘하람베’ 총살 사건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시 하람베는 자신의 우리 안으로 3살짜리 어린아이가 떨어지자 천천히 다가가 아이의 허리춤을 잡고 10여미터 끌고 가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비슷한 행동이 두어번 반복되자 결국 동물원은 하람베를 사살합니다. 아이가 떨어진 지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관람객들에겐 하람베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하람베 역시 다른 동물의 침범으로 놀라고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람베가 아이를 끌고 간 것도 “고릴라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라며 “땅에 앉아있는 걸 싫어하는 새끼가 어른 몸에 붙어있으려고 할 때, 어른 고릴라는 이렇게 새끼를 데리고 다닌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도 “고릴라가 아이를 감싸 안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관련기사: 사살당하기 전 10분, 하람베 마음은…) 당시 미국에서도 동물원의 결정을 비판하는 청원과 서명운동이 벌어졌습니다.
19일 대전오월드 방사장에 있는 퓨마 두 마리. 사진 박다해 기자
■ 초점은 ‘동물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으로
결국 ‘뽀롱이’의 사살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동물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던지게 합니다. 앞서 하람베 사건 당시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가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질문해야 할 것은 왜 하람베가 거기 있었느냐는 것이다. 신시내티동물원장은 동물원이 인간에게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동물에게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고 비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살 이후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원을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동물원에가지않기’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뽀롱이 사살 이후) ‘동물원에가지않기’ 캠페인에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동물운동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와 비슷한 걸 보고 굉장히 많이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멸종위기종 보존을 위해서라도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예전에는 그런 기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고 반박했습니다.
“멸종위기종을 보존한다는 건 그 나라의 토종 동물을 보존해야 하는데 많은 동물원들은 쉽게 볼 수 없는, 신기한 외국산 동물들을 데려다 놨잖아요. 그건 관람의 목적이죠. 관람료를 받고 있는 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멸종위기종을 보존한다는 공익은 지금은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멸종위기종을 복원해서 방사하는 곳도 아니잖아요.”
박 대표는 △새로운 동물원을 허가하지 말 것 △북극곰, 코끼리, 돌고래, 침팬지 등 전시부적합 동물을 수입하지 않고 가능하면 국외의 좋은 환경으로 돌려보낼 것 △현재 있는 동물에 대해서도 개체 수를 적절하게 조절할 것 △돌려보내기 어려운 동물은 사육환경을 대폭 개선할 것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동물원이 자꾸만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린 뒤 다른 동물원과 거래하거나 도살장에 보낸다. 심지어 일반인과 몰래 밀거래도 한다. 2015년 서울대공원에 전시되던 흑염소와 사슴이 도축장으로 매각됐다가 일부 구조돼 다른 동물원으로 분산 이송된 사태가 있었다”며 “이런 동물원이 정말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대전오월드 쪽은 “직원 교육부터 시설물 보완까지 전체적으로 점검해서 보완에 나설 것”이라며 “저희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사고인 만큼 반면교사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한 달 동안 폐쇄를 한다거나 ‘뽀롱이’ 사체를 박제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금강유역환경청의 행정처분은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인 데다 박제 역시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추가로 퓨마를 구입하는 등의 계획도 아직 없습니다. 대전도시공사 관계자는 “일단 현재 상황 수습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전/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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